팬아트를 모티프로 만든 ‘파묘’ 스페셜 포스터. / 쇼박스
팬아트를 모티프로 만든 ‘파묘’ 스페셜 포스터. / 쇼박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마니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오컬트 장르, 전통적으로 극장가 비수기로 꼽히는 설 연휴 직후 개봉. 올해 첫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는 어떻게 한계를 딛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다.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Forum) 섹션 공식 초청작으로,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 등을 연출한 장재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최민식‧김고은‧유해진‧이도현 등이 출연했다. 

◇ 장르적 한계 넘어선 장재현 감독의 영리한 선택

장재현 감독은 2015년 영화 ‘검은 사제들’을 통해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엑소시즘 소재로 544만명 관객을 동원, 흥행에 성공하며 주목받았다. 이어 신흥 종교 비리를 쫓는 미스터리 영화 ‘사바하’(2019, 누적 239만명)로 다양한 종교를 총망라, 오컬트 장르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묘’는 두 작품을 통해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한 장재현 감독이 5년 만에 내놓는 신작으로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기대 속 베일을 벗은 ‘파묘’는 장르적 재미뿐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성까지 확보하면서 공포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천만’ 관객 돌파라는 쾌거를 이뤘다.

장재현 감독은 파묘라는 낯선 소재에 동양 무속 신앙을 가미,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오컬트 미스터리 세계관을 구축하며 보다 폭넓은 관객층을 흡수했다. 특히 땅을 찾는 풍수사, 원혼을 달래는 무당, 예를 갖추는 장의사, 경문을 외는 무당까지, 익숙한 듯 새롭고 낯선 이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펼치는 ‘팀플레이’가 여느 공포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며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해냈다는 분석이다. 

국제비평가연맹 한국본부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매료’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며 “장재현 감독의 작품이 스토리도 재밌고 흡입력 있는 연출이 기본인데 일부 마니아층만 소비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파묘’가 그것을 잠식시켰다. 한국적 무속신앙, 한국적 오컬트를 아주 강렬하게 시각화하면서 전면화한 점이 굉장한 매료성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장재현 감독이 영화 곳곳에 숨겨둔 ‘항일 코드’ 역시 관객의 마음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전반부에서는 미스터리함을 극대화하는 연출로 오컬트 미스터리의 장르적 재미를 배가하고 후반부에서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마주하고 그 상처와 아픔을 ‘파묘’한다는 메시지를 담아내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N차 관람’,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냈다. 

심영섭 평론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관통하는 코드가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공감과 저항 의식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그것을 진지하게만 보여주지 않고 새로운 시선, 재밌는 장르물로 보여준 게 MZ세대에게 통하면서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하는데 주효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몰입도 높은 열연을 펼친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민식‧유해진‧김고은‧이도현. / 쇼박스
몰입도 높은 열연을 펼친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민식‧유해진‧김고은‧이도현. / 쇼박스

◇ 최민식‧김고은‧유해진‧이도현, ‘묘벤져스’의 빈틈없는 앙상블

배우들의 열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흥행 이유다. 최민식을 필두로 김고은‧유해진‧이도현까지 탄탄한 연기력과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빈틈없는 앙상블을 완성했다.  

40년 경력의 땅을 찾는 풍수사 상덕을 연기한 최민식은 깊이 있는 연기 내공으로 베테랑 풍수사의 면모부터 평범한 가장의 얼굴, 강인한 카리스마까지 완벽 소화하며 관객을 매료했고, 젊은 무당 화림으로 분한 김고은은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꺼낸 것은 물론, 경문을 외는 연기부터 난이도 높은 대살굿 장면 등을 완벽 소화, 그야말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며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유해진은 예를 갖추는 장의사 영근 역을 맡아 특유의 인간미와 유쾌한 매력으로 캐릭터를 완성,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경문을 외는 신예 무속인 봉길을 연기한 이도현은 첫 스크린 도전에서 안정적인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으로 매력적인 인물을 완성하며 필모그래피에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캐릭터를 추가했다. 

최민식은 개봉 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고은‧유해진‧이도현과의 호흡에 “아주 예전부터 작업을 같이 한 친구들처럼 느껴졌다”며 “아, 프로구나 싶었다. ‘묘벤져스’를 표현하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다는 믿음이 갔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장재현 감독 역시 “베테랑 배우들을 모셔놨더니 알아서 앙상블이 나왔다”며 “워낙 역할을 잘 소화해 줬고 궁합도 잘 맞았다. (흥행은) 배우들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 ‘할꾸’부터 팬아트, 각종 ‘밈’까지… 지속적인 관심 이끈 ‘놀이문화’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당연히 입소문으로 이어졌다. 특히 CGV 연령별 예매 분포를 보면, ‘파묘’의 세대별 관객 비중은 10대 5.4%, 20대 24.&%, 30대 30.9%, 40대 22.1%, 50대 16.9% 등으로 고르게 나타났는데, 그중에서도 소셜미디어 활용에 능숙한 2030 관객이 주 관람층이 되면서 입소문 확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MZ세대의 반응을 이끌어내며 ‘천만’ 관객을 달성한 ‘서울의 봄’과 비슷한 양상이다.

‘파묘’는 관객이 숨겨진 ‘항일 코드’나 ‘이스터에그’를 찾아 공유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영화를 관람하면서 자연스럽게 팬덤이 형성됐다. 한자 문신 패러디 등 각종 ‘밈’을 탄생시켰고 ‘파+고양이(묘)’ 인증샷, 축경 해석, 팬아트 등이 유행을 끌기도 했다. 또 이 과정에서 배급사 쇼박스가 한반도 모양을 담은 팬아트를 모티프로 스페셜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관객과 더 가까이 소통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극장에서도 다양한 이벤트로 관객의 흥미를 자극했다. 메가박스는 손없는 날 미드나잇 상영회를 진행하며 액운을 퇴치하는 소금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펼쳤고, CGV는 ‘용기 천만 상영회’를 열고 관객에게 소리차단 이어플러그와 타투 스티커를 제공해 호응을 얻었다. 롯데시네마 역시 참여형 추리게임 무비퀘스트를 진행해 체험형 재미를 더했다.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다양한 밈을 만들어낸 ‘파묘’ 주역들. / 쇼박스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다양한 밈을 만들어낸 ‘파묘’ 주역들. / 쇼박스

관객과 더 가까이 소통하고자 한 배우들의 노력 역시 관객에게 닿았다. ‘파묘’는 지난 주말 흥행 감사 무대인사까지 총 76회 차 무대인사를 진행했는데, 행사 동안 배우들은 직접 관객의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어주거나 친필 사인을 해주는 등 완벽한 팬서비스로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의 호응에 진심을 다해 화답했다. 

그중에서도 충무로 대표 ‘대배우’ 최민식은 무대인사 출석율 100%를 자랑하며 관객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팬들이 선물한 각종 아이템을 착용하면서 ‘할꾸(할아버지 꾸미기)’ ‘최꾸(최민식 꾸미기)’ ‘식바오(최민식+푸바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또 최민식이 관객에게 직접 짠 목도리를 선물 받고 “쪄죽더라도 하고 있겠다”고 말한 영상이 SNS 상에서 화제가 됐고 이후 무대인사에도 해당 목도리를 착용하고 나와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결국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며 “‘파묘’는 배우들의 적극적인 무대인사를 통해 계속해서 퍼 나를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하면서 관객의 흥미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특히 대배우 최민식의 유쾌하고 소탈한 모습은 앞으로 영화 홍보를 앞둔 다른 배우들에게도 많은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과 ‘놀이’의 결합은 자연스레 홍보 효과로 이어지며 주차가 거듭될수록 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는 원동력이 됐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하나의 트렌드 변화라고도 볼 수 있는데 마케팅 전략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생산하는 게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콘텐츠의 힘이 기본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관객의 참여와 스토리가 결합하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나 즐거움, 흥미가 높아진 결과가 ‘천만’ 달성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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