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회장 현정은)이 연지동 사옥을 매각했다. 현대그룹은 지난달 29일 코람코자산운용에 연지동 사옥을 2,262억원에 매각했다고 17일 밝혔다. 사옥을 매입한 지 5년도 채 되지 않아 '제 집'을 팔아버린 것이다. 

현대그룹에게 '연지동 사옥'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일단 연지동 사옥은 지난 2008년 현정은 회장의 취임 5주년을 맞아 1,980억원에 매입한 건물이다. 당시 경제 불황과 금강산관광 등 대북사업 중단 등 악재가 맞물리는 가운데서도 '제2의 도약'을 꾀하고자 하는 뜻에서 본사 사옥을 매입하는 강수를 뒀던 것이다.

특히 연지동 사옥은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 등 뿔뿔이 흩어져있던 계열사를 한 곳에 집결시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도 담겨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5년도 채우지 못한 채 연지동 사옥을 매각해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현대그룹 측은 "현금 자산을 확보해 재무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그러나 현대그룹의 본사 매각이 유동성 위기와 재무구조 악화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현대그룹은 사옥을 매각하면서 '세일즈앤드리스백'(sales and lease back) 방식을 택해 우선매수청구권을 챙겼다. ‘완전매각’이 아니라 매각한 뒤 다시 임대해 사용하는 것으로, 언제라도 되찾아 올 수 있게끔 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세일즈앤드리스백'은 기업이 현금 자산을 확보하고자 할 때 하나의 방편으로 쓰이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현재 현대그룹은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여 있는 상태다. 그룹의 주력사업인 금강산관광사업도 중단된데다, 경기도 양평에 그룹 연수원을 세우기 위해 땅을 사는 등 잇따른 매매와 현대상선ㆍ현대아산 등 주요 계열사의 실적악화로 자금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이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지난 2009년 8,375억6,2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본 데 이어 지난해 5,343억1,400만원, 올 상반기에도 4,569억1,2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2008년 6,68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본 것과 비교하면 큰 손실이다.

현대아산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2008년 이후 지속된 적자는 지난해 296억8,195만원에서 올 상반기에만 134억1,461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믿었던 현대엘리베이터마저 발등을 찍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2,612억8,200만원에 이어 올 상반기 1,244억3,3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특히 현대그룹이 지난 6월, 6성급 호텔인 반얀트리 클럽 앤드 스파 서울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자금난이 더욱 심해지자 결국 연지동 사옥을 매각한 것 아닌지 의혹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반얀트리 인수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업계 전반에 깔려있던 터라 현 회장이 딸에게 호텔 경영을 맡기기 위해 반얀트리를 인수했다가 자금난에 처하자 본사 매각을 진행한 것이 아니겠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까지 논란이 번지고 있다.

현정은 회장이 호텔 인수에 지나치게 적극적이었던 점도 이런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업계 관계자들은 반얀트리호텔의 인수가가 지나치게 비싸다고 지적했지만 현 회장이 밀어 붙인 것으로 안다"면서 "일각에서는 현 회장이 딸인 정지이 전무에게 호텔 경영을 맡기기 위해 무리수를 띄웠다는 뒷말도 나왔다. 국내 재벌가 딸들 대부분이 호텔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만 정 전무는 호텔 경영에 관여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이번 본사 매각은 현금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실행에 옮긴 것"이라며 "현재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현대건설을 준비하면서 이미 2~3조원의 예비자금을 마련했다"며 "1,600억원대의 호텔 인수가 현대그룹 자금난에 영향을 끼칠 일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특히 현 회장의 딸 정지이 전무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선 "이번 사옥 매각과 정 전무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며 "정 전무는 현재 호텔 경영에 참가하지도, 향후 참가할 계획도 현재로써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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