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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손현주, 괜히 ‘연기장인’이 아니다
2019. 08. 20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손현주가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으로 관객과 만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배우 손현주가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으로 관객과 만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손현주가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으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조선 최고의 지략가 한명회를 연기한 손현주는 스크린 첫 사극임에도 남다른 내공으로 완벽한 활약을 펼친다.

손현주는 다수의 연극 무대를 거친 뒤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드라마 ‘첫사랑’에서 밤무대 가수 주정남을 연기한 그는 히트곡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까지 탄생시키며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손현주는 매 작품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이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과시해왔다. 2005년 방영된 ‘장밋빛 인생’에서 아내 속만 썩이는 바람난 남편 반성문을 연기해 ‘국민 밉상’에 등극한 그는 ‘솔약국집 아들들’(2009)에서는 순박하고 친근한 매력의 큰 아들 송진풍으로 등장해 극의 인기를 이끌었다. 2012년에는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 백홍식 역으로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진가를 인정받기도 했다.

스크린에서도 활약했다. 2013년 영화 ‘숨바꼭질’로 560만 관객을 동원한 데 이어 ‘악의 연대기’(2015), ‘더 폰’(2015)까지 연달아 흥행을 성공시켰다. 또 2017년 ‘보통사람’으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9년간 변함없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손현주의 다음 행보는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이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광대들: 풍문조작단’은 조선 팔도를 무대로 풍문을 조작하고 민심을 흔드는 광대들이 권력의 실세 한명회에 발탁돼 세조에 대한 미담을 만들어내면서 역사를 뒤바꾸는 이야기를 담았다.

‘광대들: 풍문조작단’에서 한명회를 연기한 손현주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광대들: 풍문조작단’에서 한명회를 연기한 손현주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손현주는 세조(박희순 분)를 왕위에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조선 최고의 야심가 한명회로 분했다. 극 중 한명회는 왕위의 정당성을 역사에 남기고 하늘의 뜻이 임금에게 있다는 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선 팔도의 풍문을 조작하는 광대패를 섭외하고 거대한 판을 기획한다.

앞서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그려졌던 한명회를 연기하게 된 그는 뾰족한 귀에 긴 수염 등 외적 변신은 물론, 탄탄하고 묵직한 연기로 극의 무게감을 더해 호평을 받고 있다. 괜히 ‘연기장인’이 아니다.

지난 19일 <시사위크>와 만난 손현주는 솔직하고 유쾌한 입담은 물론, 따뜻한 인간미까지 발산하며 약 1시간 정도 진행된 인터뷰 시간을 ‘순삭’(순간 삭제) 시켰다.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점에 끌렸나. 
“이게 가능할까? 싶었다. 기록 중 몇 가지만 발췌해서 했고, 아무리 영화라지만 과연 이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또 지금까지 한명회가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졌지만, 광대들을 갖고 노는 한명회는 없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재미가 있었다. 사극이라고 하면 어렵게 받아들이곤 하는데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하게 됐다. 역사 공부를 하지 않고 봐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한명회를 연기하며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진짜처럼 보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관객들이 한명회라는 사람을 모르고 (영화를) 봐도 된다고 마음을 먹고 했다. 쉽게 풀고자 했다. 극에 잘 섞이기 위해 감독과 얘기를 많이 했다. 처음에 김주호 감독에게 공신들도 (분위기를) 조금 풀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었다. 그런데 감독이 공신은 공신대로 가자고 하더라. 본인이 잘 섞겠다고 했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한명회는 기골이 장대하고 되게 오래 살았다.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료에 있던 것만 갖고 드라마나 영화를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나. 많은 것들을 가미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가깝게 혹은 시나리오에 담긴 진정성에 가깝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외적 변신도 돋보였는데.
“기존 한명회보다 조금 더 강인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특수 분장으로 귀도 붙여보고, 수염도 길게 붙였다. 분장하는 시간이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정도 걸리더라. 준비하는 시간이 내가 제일 많이 걸렸던 것 같다. 그다음이 박희순(세조 역)이었다. 제일 안 걸린 사람이 고창석(홍칠 역)이다. 늦게 와서 뚜껑 하나 뒤집어쓰면 됐다. 하하.”

손현주가 광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손현주가 광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유쾌한 광대패와 진지한 분위기의 공신들, 양쪽의 균형이 중요했던 것 같다.
“김주호 감독이 고민이 많았을 거다. 공신들과 광대패의 앙상블에 대해 신경을 썼을 거다. 처음 시나리오에 있었던 부분이 편집하면서 바뀐 것도 있다. 감독의 안배라고 생각한다. 공신들과 한명회는 상대적으로 어두울 수밖에 없다.

기획자이기 때문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구조고, 광대패는 톤이 밝다. 그걸 적절하게 어떻게 섞느냐에 대해 (김주호 감독이) 고민을 많이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편집권은 감독이 갖고 있는 거다. 영화를 두 번 봤는데, 적당히 잘 버무려서 나온 것 같다.”

-한명회처럼 손에 권력이 쥐어진다면 어떨 것 같나. 
“권력을 갖고 싶은 생각이 없다. 30년을 총알처럼 달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첫사랑’(1996~1997)이 엊그제 드라마 같은데 벌써 30년이 됐다니… 그런데 권력을 갖게 되면, 달라질 것 같다. 지금처럼 연기를 못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아예 안 한다. 광대라는 직업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데!”

-광대의 삶이 행복한 이유를 꼽자면.
“구애를 안 받잖나. 그렇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 생기는 거다. 자기가 맡은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광대다.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자유롭다는 거다. 예전부터 광대는 시대를 대변하는 거울이라고 했다.

양반들 앞에서 돈을 받고 그들을 희화화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또 그걸 보며 웃는다. 그런 이야기,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이 광대다.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같이 웃고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광대다. 높은 벼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무언가 제안을 했을 때 ‘싫다’고 할 수 있는 게 광대 아니겠나. 두려움 없이 가는 것, 그게 광대다.”

손현주가 후배들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손현주가 후배들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과거 인터뷰에서 무명 배우 프로필을 갖고 다닌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지금도 갖고 다닌다.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잖나. 오디션 기회도 놓치는 경우가 있어서, 좋은 배우들을 소개해주는 거다. 그래서 잘 되면 서로 좋지 않나. 보는 사람도 즐겁고, 같이 일하는 감독도 즐겁고… 숨어있는 좋은 배우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감독 미팅 정도는 잡아줄 수 있지 않나 싶은 생각에 갖고 다니게 됐다.”

-숨어있는 배우들은 주로 연극 무대에서 찾나.
“맞다. 연극을 잘 보러 다니는 편이다. 지금은 촬영 때문에 못보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 편 정도는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연극 무대 출신 배우들이 그런 역할을 많이 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손을 잡아줄 수 있고, 오디션 기회를 알려주고, 감독에게 이런 배우가 있다고 소개를 시켜주고… 그렇게 해서 쓰임을 잘 받으면 대배우가 나오지 않겠나. 대배우가 갑자기 나와서 대배우가 되겠나. 훌륭한 배우들을 보면 대학로 아님 각 지역에서 연극했던 친구들이 평정하고 있다. 기본기 탄탄한 친구들이 와서 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