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법률구조공단이 신입 변호사를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신입 변호사를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경제적 약자들에게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연일 시끄러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4월 이헌 전 이사장이 임기 1년을 남겨두고 해임된 데 이어 6월에 취임한 조상희 이사장 역시 공단 내 변호사들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단 소속 변호사노조는 신임 이사장이 변호사들의 계약직 채용을 추진하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단 측과 변호사노조 간 날선 비방이 오가면서 내부 갈등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조용할 날 없는 법률구조공단, 무슨 일 있었나

법률구조공단이 올해 최악의 해를 보내고 있다. 본격적인 갈등은 올해 1월부터 시작됐다. 공단 내 간부들과 변호사들이 이헌 전 이사장의 사퇴를 법무부에 요청하자, 공단 측은 오히려 간부들을 감사해달라며 특별감사를 요청한 것. 여기에 지난해부터 시작된 공단 내 일반직 노조는 “일반직과 변호사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며 2월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 전 이사장은 변호사들과 일반직 직원과의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성향의 변호사 단체인 ‘시민과함께하는 변호사들’ 회장 출신인 이 전 이사장은 2015년 새누리당 추천으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특히 이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조사를 거부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후 임명 6개월 만에 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석달 만에 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이 전 이사장의 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4월 법무부는 이 전 이사장의 독단적인 공단 운영을 문제 삼아 이 전 이사장을 해임했다. 이 이사장이 법무부와 협의 없이 일반직에게 보직을 부여하거나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공단 예산으로 사실상 개인 홍보물을 제작하게 하는 등 국가 예산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 이 전 이사장이 해임되면서 내부 분위기는 잠잠해진 듯했다. 그러나 수습 국면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달 뒤 취임한 조상희 이사장은 취임 한 달 만인 지난 7월 징계성 인사를 단행했다가 소송까지 진행, 패소 판결을 받기도 했다. 재판부는 “내부 인사규정상 징계 절차를 두고 있음에도 진술 기회도 안 주고 전보 발령을 내렸다”면서 “기록 등을 살펴봐도 조 이사장이 밝힌 인사 발령 사유가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조 이사장은 분쟁을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 법원의 견해를 존중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단락 됐다.

그러나 이후 공단 측이 돌연 신입 변호사들을 계약직으로 뽑겠다고 발표하면서 내부 갈등이 폭발했다. 공단 변호사노조는 침체된 조직을 수습해야할 신임 이사장이 도리어 구성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며 계약직 채용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올 한 해 조용할 날 없었던 대한법률구조공단. (왼쪽)지난 1월 26일 법률구조공단 노조가 이헌 전 이사장 퇴진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가운데)지난 2월 22일 법률구조공단 일반직 노조가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앞에서 총파업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공단의 차별 정책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오른쪽) 지난 3월 15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법률구조공단 정상화를 위한 전면총파업 돌입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뉴시스
올 한 해 조용할 날 없었던 대한법률구조공단. (왼쪽)지난 1월 26일 법률구조공단 노조가 이헌 전 이사장 퇴진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가운데)지난 2월 22일 법률구조공단 일반직 노조가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앞에서 총파업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공단의 차별 정책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오른쪽) 지난 3월 15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법률구조공단 정상화를 위한 전면총파업 돌입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뉴시스

◇ 청년 변호사 수혈 vs 청년 변호사에 ‘열정페이’ 강요

법률구조공단은 경제적 약자들이나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법률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현재 100여명의 변호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 부족 문제가 지속되면서 공단은 장기근속 환경을 구축하는 방안으로 2016년 말부터 소속 변호사의 정규직 채용을 도입했다.

그러나 정규직 채용이 도입된지 2년 만에 공단은 다시 변호사들을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결정이 단순히 조 이사장의 개인적 소신에 따른 것이라는 게 공단 소속 변호사들의 주장이다. 공단 변호사노조는 지난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신임 이사장이 ‘공단 업무는 신입 변호사가 맡다가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나가면 충분하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면서 “이는 공단에 사건을 의뢰하는 국민들은 경험 많은 변호사로부터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조 이사장은 취임 한 달 만에 부당전보를 감행하고, 공단 변호사들이 마치 갈 곳이 없어서 남아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면서 “이사장의 과오를 지적하는 노조 위원장에게는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말 대한변호사협회 또한 공단의 정상화를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변호사노조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공단 측은 정당한 절차와 규정에 따라 내부를 정비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계약직 채용은 청년 변호사들의 수혈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공단의 업무는 적극성과 진취성이 필요한 만큼, 10년 이상 장기 근무는 적합지 않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조직의 쇄신을 마치 ‘인적 물갈이’ 방식으로 꽤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더욱이 공공기관 비정규 제로를 선언한 현 정부의 기치와도 역행하는 점에서 공단의 계약직 채용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봉창 대한법률구조공단소속변호사노조 위원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채용은 늘 하던 것이고, 2016년 바뀐 정책에 따라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된다”면서 “청년 변호사 수혈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우선 청년 변호사들이 계약직으로 채용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청년 변호사들에게 ‘열정 페이’만을 강요하는 정책일 뿐이다”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