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5시 20분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의료용 대마 관련 청원글.
27일 오후 5시 20분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의료용 대마 관련 청원글.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8개월 된 딸을 두고 있는 아빠입니다. 딸이 생후 4개월 때 뇌손상으로 인한 경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대마오일이 뇌전증에 효과가 있고 이 성분이 치료제로 합법화될 것이란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나 이 약을 받기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일분일초가 급한 뇌질환 환자들이 하루빨리 제대로 치료받고 병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지난 23일 의료용 대마 합법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이틀 만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같은 글이 올라왔다. 해당 법안은 의료용 대마를 필요로 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513일 동안 국회를 설득해 통과시킨 법안이다. 그러나 법안의 주요 골자는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하는 데 그치고 있어, 실제 환자들과 가족들의 편의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처방... “하루가 시급해”

치료용 대마 합법화 논의는 지난 5월부터 본격화 됐다. 당시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실화탐사대’에서는 황주연 의사의 사연이 소개됐다. 황씨는 난치성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를 위해 CBD오일을 해외직구 했다가 세관에 걸려 검찰 조사를 받았다. 황씨 부부는 당시 검찰의 요구에 소변과 머리카락 검사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의료용 대마 합법화 추진 모임인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용 대마 오일을 해외에서 구입하다 마약 밀수 혐의로 세관에 적발된 건수는 80건에 달한다. 이중 상반기에만 검찰에 수사의뢰 된 사안은 38건이다.

이후 황씨와 같은 사연이 관심을 받으면서 정부에서도 후속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희귀·난치질환자들이 자가 치료에 한해 해외에서 허가된 대마 성분 의약품 수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내놨다.

식약처에 따르면 약품을 구입하고 싶은 환자들은 의사의 소견을 받아 식약처에 제출해야 한다. 이후 식약처가 환자에게 승인서를 발급하고, 환자는 다시 해당 승인서를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제출, 센터가 해당 의약품을 수입해 환자에게 공급하는 방식이다. 환자들은 하루가 급한 상황이지만 합법화가 된다고 해도 언제 약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미리 다량의 약품을 처방받는다고 해도 수급 불안정 사태의 경우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어 환자들의 불안감은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청원글을 올린 A씨 역시 “많은 환자들이 약을 동시에 신청하면 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국가에서 수요가 몰릴 것을 고려해 많은 양을 수입해 주시고 이것을 병원에 공급해 의사의 처방을 받으면 바로 처방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의료용 대마가 필요한 뇌전증 환자는 40만명에 육박하고, 치매 환자도 70만명, 우울증 환자도 60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희귀·난치질환자들이 자가 치료에 한해 해외에서 허가된 대마 성분 의약품 수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처방 절차가 복잡해 환자들과 가족들의 불편이 예상된다. /뉴시스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희귀·난치질환자들이 자가 치료에 한해 해외에서 허가된 대마 성분 의약품 수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처방 절차가 복잡해 환자들과 가족들의 불편이 예상된다. /뉴시스

◇ “식약처, 환자 수만 고려했어도... 전형적 탁상행정”

더욱 심각한 것은 앞으로 의료용 대마를 처방받게 될 환자들도 향후 구체적인 처방 절차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식약처가 지난 7월 발표한 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절차가 워낙 복잡해 실제 약을 받기 위해 문의할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5월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실화탐사대’에 출연했던 황주연 씨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여전히 대마를 마약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당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불필요한 절차들이 심리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보여진다”면서도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통 뇌전증 환자들은 1개월에서 3개월치 정도 약을 처방 받는다”면서 “당장 다음 달부터 처방을 받는다 해도 언제 도착할지, 약을 집으로 배송해 주는 것인지, 직접 받으러 가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직접 희귀의약품센터로 찾으러 오라고 하면 이동이 어려운 장애아 부모들은 정말 힘들어 진다”고 말했다. 황씨는 조만간 이와 관련해 식약처에 직접 문의를 할 계획이다.

애초 식약처의 대책안이 환자들의 처한 상황이나 편의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국내에 한 곳 밖에 없고, 통상 환자들이 많지 않은 질환의 의약품을 취급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 대표 강성석 목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최소한 식약처가 뇌전증 환자 수만 고려했어도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서 약을 받아가게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센터의 취지와도 맞지도 않을뿐더러 환자들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결과다”라며 강하게 질책했다.

강 목사는 또 “가족들이 500일 넘게 싸워서 마약류관리법 개정을 끌어내긴 했지만,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은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법만 통과시켰다고 끝내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환자들의 편의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머지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