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가 각의 결정을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강행했다. /AP-뉴시스
아베 총리가 각의 결정을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강행했다. /AP-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가운데, 경제적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요 소재부품장비의 공급 지연이 예상됨에 따라 관련 산업의 일부 피해가 예상된다. 다만 일본이 주요 수출품을 완전히 막고 우리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는 극단적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오히려 한국경제에 진짜 위험은 수출규제로 촉발된 불안감이 불필요하게 증폭돼 전 산업으로 확대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일본의 수출관리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무기 등으로 전용이 가능한 품목을 ‘열거’하고 국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리스트 규제’를 1항에 두고 있다. 2항에는 이외에 ‘리스트’에는 없지만 그 밖에 무기 전용이 가능한 모든 품목에 대해 필요할 경우 정부가 규제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캐치올’(catch-all) 규제 조항이 있다.

일본이 지난달 4일 실시한 3개 품목에 대한 규제는 ‘리스트 규제’ 조항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반 포괄허가 항목에서 제외함으로써 해당 품목들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최장 3개월의 수출심사를 받게 됐다. 일본의 공급력이 독점적이고 한국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할 때 악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의 해외 공장으로부터 조달 여지가 있고, 일본 내 ‘특별 포괄허가’ 제도를 통해 수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예상보다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 한국경제 불확실성 확대가 아베 노림수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한 조치는 ‘캐치올 규제’ 조항과 관련이 깊다. 백색국가에서 한국이 제외된 만큼,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에 수출되는 ‘리스트 규제’ 외 전략물자에 대한 규제가 가능해졌다. 캐치올 규제에 해당되는 품목은 대략 6,270여개이며, 이 가운데 1,100~1,200여개 품목이 우리와 관련해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일본의 각의결정 이후 시중은행에서 엔화 환전 비율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뉴시스
일본의 각의결정 이후 시중은행에서 엔화 환전 비율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뉴시스

물론 일본 정부가 1,200여 개에 달하는 품목에 대해 수도꼭지를 잠그듯이 규제를 하기는 어렵다. 500억 달러 규모의 수출시장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기업 보다 일본의 수출기업들의 주가가 더 출렁일 정도로 일본기업들의 걱정이 작지 않다. 무엇보다 일본의 경제가 자유무역체제에서 성장했으며, 글로벌 공급 사슬을 교란할 우려가 있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여론의 부담이 크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일 관련 보고서에서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거하더라도 우리가 볼 때 일본에서 한국으로의 수출은 크게 줄어들 것 같지 않다”며 “한국이 그 명단에 남아 있든 없든 간에, 대부분의 경우 현행 규정에 따르면 수출 허가를 신청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당 보고서는 일본과 한국,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들이 함께 작성했다.

문제는 불확실성의 확대다. 일본의 캐치올 규제의 범위나 압력을 예상하기 어렵고, 그에 따른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가늠하기 힘들다. 또한 품목이 광범위해 일본에서 전략물자를 수입하는 모든 국내기업들이 규제대상에 포함돼 부품소재 조달에 혼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가동중단 등 극단적 사태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게 사실이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악재 보다 더 피하고 싶은 게 시장의 불확실성”이라고 했다.

이에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 보다 불확실성 증가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골드만삭스도 보고서를 통해 “(무역규제의) 위험과 불확실성은 민간 투자와 다소 관련이 있을 수 있다”며 다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품목 수급에 있어 어려움을 예상했다. 아베 총리의 수출규제 노림수가 ‘규제’ 자체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데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차원에서 가짜뉴스에 적극 대응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우리 스스로 과도하게 긴장감을 조장하거나 국민·기업을 불안하게 만드는 행위가 일본 정부의 의도에 말려들어가는 것이란 판단에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상황반이 하는 일 중 중요도가 가장 높은 것 중 하나가 오보대응”이라며 “IMF와 같은 금융위기라는 것은 정말 가짜뉴스이고, 특정품목이나 기업에 관해 과장된 사실에 대해 대응하는 것이 주된 업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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