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해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며 협력을 기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냈다. 임기 내 한일관계 개선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아, 양국이 대화할 시간이 부족할 전망이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해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며 협력을 기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냈다. 임기 내 한일관계 개선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아, 양국이 대화할 시간이 부족할 전망이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해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며 협력을 기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냈다. 이는 임기 내 한일관계의 획기적인 변화가 어려워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올가을 일본은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있고, 중의원 임기도 만료를 앞두고 있다. 문 대통령 역시 내년 5월 퇴임을 앞둔 상태다. 한일 모두 정권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외교에 힘을 쏟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 문재인 대통령, ‘원론적’ 입장만 밝힌 이유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 정부는 (한일) 양국 현안은 물론 코로나와 기후위기 등 세계가 직면한 위협에 공동대응하기 위한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면서 “바로잡아야 할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과 실천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75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징용기업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소송의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일본 정부와 협의 준비가 됐다는 메시지보다 구체성이 떨어진다. 

이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내각의 가변성 때문이다. 스가 총리는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9월 5일 폐막)이 끝난 후 신속히 중의원을 해산해 총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자민당 총재 연임에 성공, 총리직을 계속 수행한다는 전략을 세운 상태다. 스가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9월 30일까지며, 중의원 임기는 10월 21일 만료된다. 

현재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긴급 사태가 연장돼 스가 총리의 연임 전략은 실행에 옮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중의원 임기는 10월 중순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본 정계의 변화는 필연적인 셈이다. 

결국 문 대통령의 임기가 9개월가량 남았지만, 스가 내각의 변동 가능성으로 인해 실질적인 한일 대화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 역시 한일 대화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원론적인 메시지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역시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있어 한일 관계 회복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한 강제징용과 위안부 배상 판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한일 간 갈등 현안이 산적한 데 양측은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18일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채권을 압류했다고 밝히면서 한일 관계는 다시 한 번 격랑에 빠져들 전망이다. 

현재 한일관계 변화의 요인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태도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통적인 미국의 외교 전략을 취하고 있어, 한일 양국이 마냥 갈등 상황을 빚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뉴시스
현재 한일관계 변화의 요인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태도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통적인 미국의 외교 전략을 취하고 있어 한일 양국이 마냥 갈등 상황을 빚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뉴시스

◇ 과거와 다른 한미일의 상황

현 상황에서의 변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한미일 삼각공조를 중시한다는 데 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한일을 축으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동맹체계 유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한일 갈등에 개입한 빈도수가 낮았다. 그러나 올해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다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통적인 미국의 외교 방식을 따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기본적인 외교 전략은 미국이 동맹국들의 협력을 받아야 중국 견제 및 글로벌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동북아시아 외교에서 한미일 삼각공조를 중시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한일 양국 역시 트럼프 행정부 시절 같은 대립을 이어가기 어렵게 된다. 

또한 미국은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했던 위안부 합의로 한일 관계가 본격적으로 악화되는 계기를 제공한 바 있다. 현재 한국의 국제 위상이 많이 달라졌고, 이전의 실패를 교훈삼아 일본을 동북아시아 외교의 핵심축으로 두기 보다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 호혜적 동맹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대북정책 수정에 한국 정부의 의견을 반영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미국의 한일관계 개선 희망대로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정상회담을 시도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을 뿐 아니라, ‘망언 사태’까지 일으키면서 정상회담을 회피했다. 한국으로서는 미국에 현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셈이다. 반면 일본은 정상회담 거부의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한미일 관계에서 발언권이 약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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