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간의 왕래가 적어진 요즘 세상에서 이웃의 존재감을 느끼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층간소음이다. 층간소음을 통해 이웃의 존재를 인식하게 됐지만 오히려 불편과 분노, 고통을 부른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거주 비율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시국을 겪은 지난 2년간 재택근무, 재택학습 빈도가 높아지며 더 많은 분쟁이 발생했다. 이에 <시사위크>는 층간소음 피해 상황과 입법으로 해결 가능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층간소음으로 다퉜다는 신고에 대해 경찰출동을 의무화하고 당사자 간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의지가 있으면 ‘회복적 경찰활동’으로 연계하도록 권고했다./게티 이미지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층간소음으로 다퉜다는 신고에 대해 경찰출동을 의무화하고 당사자 간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의지가 있으면 ‘회복적 경찰활동’으로 연계하도록 권고했다./게티 이미지

시사위크=조윤찬 기자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층간소음으로 다퉜다는 신고에 대해 경찰출동을 의무화하고 당사자 간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의지가 있으면 ‘회복적 경찰활동’으로 연계하도록 권고했다. 회복적 경찰활동은 대화전문가 중재로 당사자 간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이 제도는 2019년부터 15개 경찰서에서 시행되고 나서 확대돼 왔다. 내년에는 전체 경찰서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층간소음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일이 줄어들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다만 권익위 권고대로 경찰출동 의무화가 된다면 처리할 사건 역시 증가할 가능성이 큰 만큼 회복적 경찰활동 제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 대화 자리 제공하는 회복적 경찰활동

회복적 경찰활동 제도는 층간소음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협박, 절도, 학교폭력 등도 처리한다. 이 제도는 회복적 정의 이념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경찰청은 회복적 정의란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고 피해가 치유되도록 관련된 사람들이 함께 피해를 확인하고 책임과 의무를 규명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처벌에만 집중하면 피해자가 사법절차에서 소외되거나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고,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로 인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비판에 나온 개념이다.

회복적 정의는 △누가 피해를 입었나 △어떤 피해가 발생했나 △피해회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관심을 둔다. 이러한 내용을 기반으로 경찰청은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대화모임을 제공한다. ‘경찰수사규칙’ 제82조(회복적 대화)는 경찰은 전문가에게 회복적 대화 진행을 의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번 권고 관련 권익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화전문가 인력은 어떤 기관으로부터 제공받냐’는 질문에 “5개 기관과 MOU를 맺어서 하고 있다. 갈등해결과 대화, 비폭력평화물결, 한국NVC센터, 한국회복적정의협회, 좋은 교사 운동과 업무협약을 체결해서 그곳에서 대화 전문가들을 보내준다”고 답했다.

박성일 한국NVC센터 사무국장은 “단체마다 회복적 정의나 조정과 대화를 배우는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을 이수한 분들이 진행자로 위촉돼서 활동하고 있다. 대화모임은 기본적으로 경찰서 공간에서 진행한다”고 말했다.

권익위 권고대로 경찰출동을 의무화한다면 다뤄야 할 사건들이 점점 쌓여갈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현재 230개 경찰서에서 운영되고 있는 회복적 경찰활동제도를 내년에는 전체 258개 경찰서를 대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경찰출동이 의무가 될 경우를 대비해 관련 인력 충원이 과제로 부각될 전망이다.

층간소음 분쟁이 심화돼 강력사건으로 이어진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갈등 초기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요하다.

◇ 대화 중재로 약속 이행문 만들어 나간다... 사법처리에 활용

회복적 경찰활동의 사전모임 장면이다. 갈등 조정에 앞서 대화전문가들이 각각의 당사자들을 만나 입장을 듣고 앞으로의 대화모임을 진행할 수 있을지 판단한다./경찰청 제공
회복적 경찰활동의 사전모임 장면이다. 갈등 조정에 앞서 대화전문가들이 각각의 당사자들을 만나 입장을 듣고 앞으로의 대화모임을 진행할 수 있을지 판단한다./경찰청 제공

회복적 경찰활동 시행 당시 경찰청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위기상황에 개입하는 것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시행 후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경찰청 담당자가 논문을 작성했다.

심보영 경찰청 피해자보호기획계장은 2020년 발표된 ‘회복적 경찰활동 운영 성과와 향후 과제’ 논문에서 “형사법적으로 범죄에 해당하거나 체포할 사안이 아닌 경우에는 현장에서 피해자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어려운 현실을 고려할 때 회복적 경찰활동은 공동체 내 범죄와 분쟁을 풀어나갈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요한 정책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논문에서는 회복적 경찰활동 처리를 5단계로 나눴는데 이는 현재도 사용되는 절차다. 먼저 ‘사건 선정 단계’에서는 양 당사자 동의 후 담당 부서에 사건 접수한다. ‘예비검토 단계’에서는 전문기관이 사전모임을 실시해 회복적 대화모임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판단한다.

‘회복적 대화 단계’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생각을 듣고 해결방안을 모색, 합의점을 찾으면 문서로 기록해 결과 보고서를 경찰에 제출한다. ‘결과 반영 단계’에서는 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사건을 처리한다. 선처가 있으면 처리에 반영된다. ‘모니터링 단계’에서는 재발 방지 등을 점검하고 필요하면 대화모임을 다시 진행한다.

이에 대해 심보영 계장은 <시사위크>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230개 경찰서에서 하고 있고 내년에는 258개 경찰서에서 다할 예정”이라면서 “대화모임 전에 민간 대화전문가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나보고 나서 필요하면 다 같이 모여서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다. 쿵쿵 소리가 날 경우 경비실로 연락한다는 식으로 자율적인 약속을 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대화모임을 진행하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뭐냐는 질문에는 “강력 사건이나 서로 만나면 2차 피해가 있을 것이 우려되는 경우가 있고, 기본적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하기 때문에 너무 어리거나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어서 대화 역량 등을 판단한다”고 말했다.

합의를 담은 문서에 대해 심보영 계장은 “약속 이행문이다. 대화하면 이전에 있었던 소음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알게 된다. 이럴 때는 연락을 어디로 하거나 문자를 보낸다는 식으로 약속한다. 오해가 있었으면 풀고 서로 잘하기로 했으면 그 문서는 처벌 불원서가 된다”고 했다. 이어 “특수협박 같은 건 처벌불원한다고 해서 끝나지 않고 (대화모임의)결과보고서를 검찰 단계에서 반영한다”고 언급했다.

층간소음 신고에 대해서는 “단순한 층간소음 신고는 이웃사이센터로 하고, 다툼이 일어나서 형사사건이 되면 경찰이 출동해 회복적 경찰활동으로 연계한다”라면서 분쟁조정위원회 분쟁신청과는 별도의 절차라고 부언했다.

전체 경찰서로 제도를 확대하기 위해선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심보영 계장은 “지금 5개 기관의 430명의 대화전문가가 있다”면서 “진행에 문제없어서 전체 경찰서로 확대됐다. 하지만 실제 층간소음 중 몇 퍼센트가 연계될지 확인해봐야 된다”고 전했다.

◇ 한국NVC센터 “대화전문가 인력 부족”

회복적 경찰활동의 대화 단계에서 진행하는 ‘본모임’ 모습이다. 이 자리에서 당사자들 간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이뤄진다. / 경찰청 제공
회복적 경찰활동의 대화 단계에서 진행하는 ‘본모임’ 모습이다. 이 자리에서 당사자들 간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이뤄진다. / 경찰청 제공

회복적 경찰활동 제도는 층간소음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협박, 절도, 학교폭력 등도 처리한다. 경찰청은 이 제도가 경찰 신뢰도를 높이는 데에 효과적이라 평가하고 있다.

심보영 계장은 논문에서 2019년 4월부터 12월까지 회복적 경찰활동이 진행된 95건 사건 중 84건은 합의점 도출, 9건은 도중에 중단, 대화모임을 했지만 합의점이 나오지 못한 사건은 2건이라고 밝혔다. 95건 중 가해자와 피해자 간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가 80건이었다. 회복적 대화시간은 사전모임과 본모임을 포함해 평균 6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전화통화에서 “2020년에는 573건, 2021년 1,188건, 2022년 9월까지 939건의 회복적 경찰활동이 이뤄졌다”면서 “9월까지 939건 중 636건(67.73%) 조정이 성사됐다. 의뢰부터 대화모임진행 후 결과 보고서 회신까지 평균 2주 걸린다”고 말했다. 접수 건수가 증가하고 있어 인력 확충이 필요해 보인다.

대전경찰청이 공개한 아파트 사례를 보면 층간소음 피해자가 윗집 현관문에 킥보드를 던져 112에 신고가 들어왔다. 당사자 둘 다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사건이다. 대화모임에서 윗집은 가족과 겪은 불안을 말하고, 아랫집은 층간소음 때문에 폭력적인 행동을 한 점에 사과했다. 협의를 통해 층간소음이 발생하면 향후 제3자를 거쳐서 문제해결하자고 약속했다. 아랫집은 윗집의 현관문을 교체해줬고, 검찰은 윗집의 처벌불원서를 반영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박성일 한국NVC센터 사무국장은 <시사위크>와의 전화통화에서 “올해 층간소음 의뢰가 많이 들어왔는데 층간소음은 대화모임으로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면서 “중립적으로 대화를 진행한다. 대안이나 방법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갈등 당사자들이 주인이 돼서 풀어갈 수 있도록 한다. 상대방의 고통을 듣고 상호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과거 행위에 대한 책임 부분도 성찰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를 준 행위자는 공동체에서 배제되거나 편견을 가진 시선을 받을 수 있다. (가해자는) 자발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진심어린 사과가 펼쳐질 수 있다. 또한 피해자를 위해서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 탐색하는 시간이 된다”고 부연했다.

박 사무국장은 “가해자가 가해 행위를 인정하지 않을 때는 법원으로 가야 되고 정서적인 상담이나 치료가 우선인 사람은 대화 모임으로 적합하지 않다. 대화모임 중간에도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화전문가 인력 문제에 대해 박 사무국장은 “인력이 부족한 것 같다”며 “시민사회에서 조정할 수 있는 인력이 우리 사회에 좀 더 필요하다. 경범죄 처벌 수준이 낮으니까 이웃 간에 소통하면서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사무국장은 “경찰 단계에서 대화할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신고하기 전 지역사회에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기구나 공간, 사람이 생겨야 된다”고 제안했다.

 

근거자료 및 출처

국민권익위, “층간소음으로 인한 국민불편 없앤다”

2022.10.25 국민권익위원회 발표자료

회복적 경찰활동 및 범죄피해자 지원

  경찰청

회복적 경찰활동, 그것이 알고 싶다/ 대전경찰청, 2020년 4월 1일

2020.04.01 대전경찰청 발표자료

회복적 경찰활동 도입 및 피해자보호 강화

2019.07.29 경찰청 발표자료

심보영, 회복적 경찰활동 운영 성과와 향후 과제

2020.04 한국피해자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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