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통해 택시를 호출할 때 승객의 목적지를 택시기사에게 표시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국회 및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 뉴시스
스마트폰을 통해 택시를 호출할 때 승객의 목적지를 택시기사에게 표시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국회 및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정해진 노선이 있는 버스나 지하철과 달리 택시는 각 승객의 목적지로 곧장 향하는 이동수단이다. 그렇다보니 목적지가 택시 수익의 최대 변수로 여겨지곤 한다. 거리, 위치 등 목적지에 대한 택시기사들의 호불호가 존재하고 심지어 승차거부, 승객 골라태우기 등으로까지 이어지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스마트폰 앱을 통해 택시호출을 이용할 때 승객의 목적지를 택시기사에게 일괄적으로 표시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 도입이 추진되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목적지 미표시’ 제도화를 골자로 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은 지난해 2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발의됐고, 올해 들어 법안심사 절차가 본격 진행 중이다.

◇ 달라진 호출방식이 낳은 보이지 않는 승차거부… 가리면 된다?

이처럼 ‘목적지 미표시’가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 근본적인 배경은 스마트폰을 통한 택시이용 확대에 있다. 택시이용에서 목적지가 지니는 의미는 그대로인 가운데, 택시이용 방식의 변화로 목적지를 밝히는 방식 역시 달라진 것이다. 

과거엔 길에서 택시를 잡아 탑승을 전후로 목적지를 밝혔고, 목적지에 따른 승차거부는 엄연한 불법행위였다. 반면, 스마트폰을 통한 택시호출은 택시를 잡는 행위가 이뤄지기 전에 승객의 목적지가 다수의 택시기사에게 노출됐다. 따라서 택시기사는 선호하지 않는 목적지 호출에 응하지 않거나 더 선호하는 목적지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스마트폰을 통한 택시이용으로 승객편의가 크게 증진된 이면에 승차거부 아닌 승차거부, 승객 골라태우기 아닌 승객 골라태우기라는 부작용도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한 ‘목적지 미표시’ 방식은 현재도 적용되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부에 불과하다. 또한 이 역시 또 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목적지 미표시’ 방식이 적용되고 있는 것은 주로 일반호출에 비해 비싼 모빌리티 플랫폼 업체의 가맹택시와 호출료를 내는 심야호출 정도다. 즉, 사실상 돈을 더 내는 경우에만 ‘목적지 미표시’ 방식이 적용된다. 엄연한 불법행위에 따른 피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목적지 미표시’ 제도화 추진에 대한 반응은 온도차가 뚜렷하다. 또한 그 효과 또는 부작용에 대한 전망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당사자인 택시 측 입장은 다소 엇갈린다. 우선,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주요 단체들은 기본적으로 ‘목적지 미표시’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은 지난 20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택시산업의 쇠퇴를 막는 방법은 이용수요를 늘리는 것 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시민편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면서 “‘목적지 미표시’는 시민편의 관점에서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목적지 미표시’ 제도화에 찬성하는 택시 관련 단체들은 보완 대책 또한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호출 후 취소나 대기 등에 따른 택시 피해 관련 대책은 물론, 택시산업 전반에 대한 근본적 개선 방안도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개별 택시기사 차원에서는 반대하는 입장도 분명 존재한다. 실제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도 입장문에서 “일부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도 있다”고 밝혔다.

‘목적지 미표시’를 반대 또는 우려하는 측에서는 이 같은 제도가 오히려 승객편의를 훼손하고 택시산업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택시기사들이 스마트폰을 통한 호출 자체를 회피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적지 미표시’에 반대하는 한 개인택시 기사는 “워낙 다양한 상황과 변수가 존재하다보니 전면적인 의무화는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부작용도 클 수 있다고 본다”며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한 만큼 ‘무조건 태워라’식 보단 승차거부 문제를 해결하면서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사자 중 하나인 모빌리티 플랫폼 업체들도 부정적인 반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나치게 과도한 규제이자 실질적인 효과 및 승객편의를 깊이 고려하지 않은 개정 추진”이라며 “일례로 ‘목적지 미표시’가 제도화되면 심야시간엔 택시기사들이 앱을 꺼둔 채 배회영업하면서 승차거부 및 승객 골라태우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여성벤처협회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지난 23일 ‘목적지 미표시’ 개정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목적지 미표시’ 개정안을 ‘제2의 타다금지법’으로 규정하며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과도한 규제는 택시산업 변화의 싹을 자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신중론을 펴고 있다. 어명소 국토교통부 제2차관은 지난 11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소위에서 “유료호출에 대해서는 목적지를 표시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무료호출에 대해서까지 적용하는 것에 대해선 좀 더 검토가 많은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며 “택시기사들의 입장이 다 다르고, 실제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등도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이론상으로는 목적지가 미표시되면 소비자가 혜택을 봐야 하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소비자가 피해볼 가능성도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근거자료 및 출처
[2114748]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진성준의원 등 11인)
2023. 4. 24. 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제21대 국회 제405회 제1차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
2023. 4. 11. 국회 회의록
플랫폼 중개사업자의 ‘목적지 미표시’ 의무화 입법발의 관련 우리 노련의 입장
2023. 4. 20.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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