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의 보증금 안전 확보 가장 큰 장점
전세 물량 급감과 월세 가속화로 주거비용↑

지난 16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전세제도 전반에 대해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에스크로 도입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 뉴시스
지난 16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전세제도 전반에 대해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에스크로 도입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전세사기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으로 피해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전세제도 전반에 대해 들여보겠다고 밝혔다.

특히 원희룡 장관은 기자회견 당시 “일각에선 전세보증금을 금융에 묶어놓는 에스크로 계좌를 도입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올려놓고 검토하겠다”며 ‘에스크로’ 도입 검토도 시사했다.

‘에스크로(ESCROW, 결제대금예치제도)’는 주로 전자상거래에서 많이 사용하는 거래기법으로 소비자와 판매자 간 합의 하에 제품 구매와 관련된 상품 배송‧결제시 안전을 위해 결제 대금을 금융기관 등과 같은 제3자에게 예치하는 것이다.

온라인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상품 배송이 확실히 완료됐을 때 결제 대금을 예치한 금융기관 등이 판매업자에게 해당 대금을 지급한다.

임대차계약 과정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계약금‧전세보증금을 은행‧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이 예치한 뒤 계약 내용이 이상 없을 때 집주인에게 계약금‧전세보증금 등을 전달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에스크로’ 도입이 보증금의 안전을 담보하지만 전세의 월세 가속화로 이어지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에스크로’ 도입, 보증금 안전 확보 및 전세사기‧무자본 갭투자 등 방지

전문가들이 꼽은 ‘에스크로’ 도입시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보증금을 안전히 보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전문가들은 무자본 갭투자, 전세사기, 악성임대인 감소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예전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보다 안전한 임대차계약을 위해 “전세계약 과정에서 HUG 등이 개입해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의 10%를 계약금으로 받은 후 HUG가 직접 세금체납 사실 등 집주인의 정보를 모두 확인해 하자가 없다고 판단될 때 임대인에게 계약금을 전달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며 제안한 바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 또한 “전세보증금 중 일부만 집주인에게 주고 나머지 일부는 제3기관에 예치하도록 한 뒤 이후 제3기관이 예치된 보증금을 운용해 얻는 수익을 집주인에게 주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여기에 최근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에스크로’는 보증금 예치 개념이라 도입시 집주인들의 무자본 갭투자가 힘들어 진다”면서 “즉 은행 대출 없이 남의 보증금을 레버리지(타인 자본을 이용해 자기자본 이익률을 높이는 것) 삼아 단기차익을 얻으려는 행위나 전세사기 주 원인으로 지목된 무자본 갭투자가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보증금이 집주인이 아닌 제3기관에 예치돼 있어 언제든지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이라며 “동시에 전세사기, 악성임대인 등이 줄어드는 효과와 함께 갭투자까지 감소해 투기성 자본이 투입된 아파트 단지들의 호가 하락 현상도 향후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에스크로 도입이 보증금 안전은 확보할 수 있지만 전세 공급 물량이 대폭 감소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뉴시스
전문가들은 에스크로 도입이 보증금 안전은 확보할 수 있지만 전세 공급 물량이 대폭 감소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뉴시스

◇ 전세 공급 축소 및 월세 가속화에 따른 주거비용 상승 등 부작용 우려

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에스크로’ 도입시 예상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함영진 랩장은 “국내 집주인 대다수는 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해 단기 차익을 얻으려는 목적이 강하다”며 “때문에 ‘에스크로’ 도입시에는 전세의 빠른 월세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또 “‘에스크로’를 도입한다 해도 기존 임대차계약까지 소급적용하면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제3기관에 줘야하는데 현 시장상황에서 집주인이 거액의 보증금을 즉시 마련하기는 힘들다”며 “여기에 △모든 주택을 적용대상으로 할지 △특정가액대 주택만 적용할 것인지 △에스크로 시행 과정에서 보험상품도 도입할지 등 논란이 될 부분이 많다”고 진단했다.

이은형 대한주택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에스크로’를 쉽게 표현하자면 안심결제인데 온라인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는 것처럼 부동산 매매계약에서는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서도 “다만 전세에서 ‘에스크로’ 제도를 전면 적용하는 것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임대인은 보증금을 받아 활용하는 것이 목적(일종의 무이자대출)이라 보증금이 제3기관에 묶이는 ‘에스크로’ 사용을 자율 권고한다면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법적으로 강제해도 대부분은 보증금을 낮추고 반전세·월세 등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보호는 기존 HUG의 보증보험 같은 제도가 있는데 굳이 추가 규제(에스크로)를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부연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 겸 경인여대 마케팅학과 교수는 “‘에스크로’ 도입 주장은 전세제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보증금이 ‘에스크로’ 계좌에 들어간다면 어떤 집주인이 전세를 놓으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에스크로’ 도입은 곧 전세 공급 급감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며 “만약 ‘에스크로’를 권고사항으로 도입하면 아무도 제도를 이용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될테고 의무 강제화한다면 전세 공급 물량이 ‘0(제로)’가 되면서 기존 전세물량 가격이 급등한다. 이에 세입자들이 월세로 몰리면서 서민 주거비용은 폭증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보증금 안전에 대해선 “임대차계약 과정에서 세입자들 주의 의무가 필요하다”며 “전세계약 과정에서 ‘선순위근저당+임차보증금’의 금액이 집값의 60% 이하 수준일 때에만 계약하도록 하고 자신의 상환능력도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 ‘1년간 이자지원’ 한다는 미끼 매물은 과감히 거르는 등 계약 과정에서 원천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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