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보증금 안전장치 마련 필요…
전세거래 가능 임대인 자격 등 캡 씌워야

올해 하반기 ‘역전세난‘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 뉴시스
올해 하반기 ‘역전세난‘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보증금 미반환과 관련된 ‘전세사기’ 이슈가 현재 부동산 시장 내 최대 쟁점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올 하반기에는 ‘역전세난’이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올해 1분기 서울‧수도권 등의 전세가격 대다수가 2년 전에 비해 가격이 떨어진 ‘하락거래’ 비중이 높아지면서 ‘역전세난’ 발생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역전세난’의 경우 고의적 의도를 가지고 보증금을 가로채는 ‘전세사기’와 달리 전세가격 급락시기에 계약 만료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늦게 돌려주는 사례가 대부분이라 정부가 ‘전세사기’에 비해 더 개입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전세제도 전반에 대해 심도 깊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일 때 전세제도가 지속적인 높은 경제성장률과 맞물려 주택 마련 과정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왔지만 선진국 수준에 진입한 현재에는 더 이상 고성장이 어려운 만큼 전세제도를 없애거나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 ‘역전세난’ 신호 곳곳 포착… 2년 전 대비 전세가 하락거래 비중 절반 이상 차지

최근 부동산R114가 올해 1월부터 4월 26일까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집계해 분석한 결과, 2년 전 대비 아파트 전세 최고가격이 낮아진 ‘하락거래’는 1만9,928건(62%)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 1월부터 4월 26일까지 전세 거래된 전국 아파트 18만9,485건 가운데 동일단지·동일면적의 전세계약이 지난 2021년 중 1건 이상 체결된 3만2,022건의 최고 거래가격을 비교해 나온 결과다.

권역별로 살펴보면 수도권은 올해 2년 전보다 전세가격이 낮아진 채 거래된 ‘하락거래’ 비중이 66%(1만9,543건 중 1만2,846건)로 나타났다. 지방은 이보다 적은 57%(1만2,479건 중 7,082건)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대구의 경우 ‘하락거래’ 비중이 87.0%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세종(78.4%), 대전(70.8%), 인천(70.5%), 부산(69.6%), 울산(68.2%), 경기(66.0%), 서울(64.2%) 순이다.

이와 함께 신축아파트일수록 역전세난 우려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부동산R114 조사에 의하면 최근 2년(2021년 4월 30일 대비 올해 4월 21일 기준) 전국 연식 구간별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은 △5년 이내 -5.85% △6~10년 이내 -4.70% △10년 초과 -0.40% 순으로 신축 아파트의 전셋값 하락폭이 컸다. 

타 지역에 비해 전세거래가 활발했던 서울도 최근 전세 수요가 줄면서 ‘역전세난’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에 따르면(8일 기준) 올 1분기(1~3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6만9,444건 중 전세 거래는 57.8%에 속한 4만125건으로 조사됐다. 이는 서울시가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1년 1분기 이후 역대 최저치다. 

아파트에 이어 서울 빌라 전세거래 비중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서울 빌라 전월세 거래량은 3만221건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전세 거래량은 1만6,179건(53.5%)으로 역시 2011년 이후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했다.

최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년 전에 비해 가격이 떨어진 전세거래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 뉴시스
최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년 전에 비해 가격이 떨어진 전세거래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 뉴시스

◇ 전문가들 “‘에스크로’ ‘전세상한제’ 등 보증금 안전장치 도입 필요”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최근 몇 년간 전세가격 추이를 보면 30% 이상 내려간 지역이 많다. 여기에 과거 임대차3법 도입과 저금리 영향 등으로 전세가격이 급등한 만큼 올 하반기 역전세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역전세난 발생 가능성) 통계를 확보한 상황에서 선제적 대응에 나서지 못한다면 문제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역전세난 대응 방안에 대해선 “임대차계약 중간 과정에 전세보증금을 관리하는 에스크로나 신탁회사를 넣는 등 임대인들이 임차인에게 보증금 제 때 돌려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방의 경우 법인을 설립해 집을 산 뒤 전세를 내놓은 임대인들이 많은데 이는 역전세난 발생시 세금 체납, 대출 상환 부실 등 어느 한 군데서 구멍이 나면 무너지는 구조”라며 “이를 막기 위해선 어느 정도 (보증금) 상환능력을 갖춘 임대인들만 임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캡(제한선)을 씌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승현 대표는 최근 임대인들이 정부를 상대로 보증금 상환을 위해 대출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임대사업 운영 능력이 없는 자들을 상대로 상환능력도 고려하지 않고 자금을 빌려주는 것은 오히려 가계부채 부실만 더 키우는 꼴”이라며 “전세계약은 통상 2년, 4년인데 이 기간 동안 다시 전세가격이 떨어지면 어쩔것인가? 또 대출을 해줘야 하나?”라며 반문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아파트에 비해 전세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빌라‧오피스텔의 경우 올 하반기 역전세난이 터질 가능성이 크다”며 “2021년말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전세가격이 급등하자 세입자들은 집주인이 부르는 대로 보증금을 준 뒤 입주했다. 이때 계약한 전세들이 올 하반기부터 내년 초까지 만료를 앞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아파트는 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적을 뿐 보증금 지급 지연으로 인해 집주인과 세입자간 분쟁이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집주인들은 집을 경매에 넘기거나 추가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돌려주기도 할 것이다. 여러모로 올 한 해는 집주인들이 힘든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김인만 소장은 “역전세난은 전세가격 하락 시기에 언제든지 발생하는 문제”라면서 “전세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신용 위험을 내포한 불안정한 제도이기에 이제는 안전장치 마련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집주인이 보증금 1억원을 받으면 이 중 70%만 집주인에게 가고 나머지 30%는 신탁회사에 예치하는 등 중간 안전장치 마련을 검토해야 할 때”라며 “과거에는 높은 경제성장률과 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전세가격이 무조건 올랐는데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일각에서 주장한 전세대출 폐지 및 축소에 대해선 “애초부터 전세대출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은 너무 늦었다”면서 “지금 전세대출 폐지‧축소에 나선다면 서민들의 주거 환경이 하향 조정되므로 반발이 심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전문가들은 역전세난 대응을 위해 보증금 등에 대한 안전장치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뉴시스
전문가들은 역전세난 대응을 위해 보증금 등에 대한 안전장치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뉴시스

올 하반기 서울‧수도권 지역은 역전세난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은 반면 지방의 경우 역전세난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역전세난이 발생하려면 거래량이 떨어지고 가격이 이전보다 더 내려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며 “서울‧수도권은 현재 조정 상황이라 여기에서 가격‧거래량이 더 떨어져야 하는데 쉽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지방은 이전까지 공급량이 많아 가격이 내려간 상황이기에 역전세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고준석 대표는 역전세난 방지를 위해선 이른바 ‘전세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전세난을 막으려면 캡을 씌워야 한다”며 “시세 평가를 정확히 한 뒤 시세 대비 전세가격을 50% 못넘기도록 ‘전세상한제’를 적용하고 나머지 금액은 월세로 지불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뒤이어 “이처럼 ‘전세상한제’를 통해 캡을 씌운다면 어느정도 가격하락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좀처럼 역전세난이 발생하기 어렵다”며 “임차인 보호 차원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전세상한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준석 대표는 이외에도 “근저당 등 선순위권리가 임대인은 원천적으로 전세계약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또 임대인이 요구 중인 대출 규제 완화는 정부 개입 없이 은행권이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임대인의 상환능력 등을 보고 판단할 문제”라고 추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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