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밀 가격이 크게 하락하자 정부가 밀을 주 원재료로 하는 라면업계에 가격 인하 압박에 나섰다. 이에 라면 제조사들의 움직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뉴시스
국제 밀 가격이 크게 하락하자 정부가 밀을 주 원재료로 하는 라면업계에 가격 인하 압박에 나섰다. 이에 라면 제조사들의 움직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연미선 기자  국제 밀 가격이 지난해 폭등했던 것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자 정부가 라면값 인하 압박에 나섰다. 소비자단체도 이에 가세한 가운데 13년 만에 라면 가격 인하가 실현될지 이목이 집중된다.

◇ 1년 동안 ‘밀 가격’ 반토막… 정부 “소비자 기대에 부응하라”

지난 1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9~10월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으로 내렸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밝히면서 라면가격 움직임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날 추 부총리는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다면서도 “업계도 밀 가격이 내렸으면 소비자 기대에 부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비자단체가 가격을 조사해서 영향력을 행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업계에 따르면 라면 제조사들이 인건비‧물류비 등을 고려해 가격 인하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에 제품 가격 인하가 결정되면 지난 2010년의 가격 인하 이후 처음이 된다. 2010년 당시 밀가루 가격이 7%가량 크게 하락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식품업계에 대해 압박을 가한 바 있다.

이에 라면업체뿐만 아니라 제과‧제빵업체 등 관련 업체들이 가격을 내렸었다. 당시 농심은 신라면 가격을 2.7~7.1% 인하했다. 오뚜기도 6.7%, 삼양식품도 주요 제품에 대해 2.9~6.7% 가격을 인하한 바 있다.

이번 정부가 라면업계에 대해 제품가격을 인하할 것을 요구하는 배경에도 국제 밀 가격 하락이 있다. 지난해 상반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공급망 악화로 인해 국제 밀 가격이 폭등한 바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밀 가격은 지난해 5월 기준 톤(t)당 419달러를 기록하며 최고점을 찍었다. 이는 1년이 지난 올해 5월 기준 톤당 228달러로 하락했다.

주요 원재료 가격 등이 오르면서 지난해 하반기 제품 가격 인상이 결정됐으나, 최근 밀 가격이 크게 하락한 모양새이므로 제품 가격도 다시 인하하라는 게 정부 압박의 내용이다.

◇ 목소리 높이는 소비자단체… 라면업계는 ‘울상’

소비자단체도 압박에 가세했다. 20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올해 초부터 국제 곡물 가격을 지켜본 결과 지난해 4분기부터 하락세를 보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올 5월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국제 곡물가가 하락세를 보임에 따라 소비자가격 역시 인하돼야 하나, 기업들이 이를 수용할지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고 전했다.

이어 “고물가 상황에서 원부자재가 인상을 이유로 거침없이 가격을 올렸던 기업들에게 원재료가 하락의 요인도 거침없이 소비자가에 적용할 것을 요청한다”면서 “소비자의 부담을 덜어 우리나라 시장 경제가 다시 활력을 다시 가질 수 있도록 동참해주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협의회는 매출원가의 폭등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업계의 설명에도 반박했다. 매출액 중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하는 주요 라면 제조사의 매출원가율은 평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매출‧영업이익은 크게 올랐다는 게 협의회의 설명이다.

협의회 측은 “공교롭게도 이들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했던 시기는 지난해 6월부터 정부가 밀가루 가격 안정화 정책으로 밀 수입 가격 상승분의 80%를 지원하고 제분업체가 10% 이상을 부담하게 했던 시기”라면서 “정부의 고물가 상황 대처였던 기업들의 부담 경감 정책의 결과가 기업들만의 혜택으로 갔는지 관련 업체들이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제품가격 인하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13년 전처럼 실제로 가격 인하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밀 가격이 지난해 폭등한 수준에 비해서 크게 하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년보다는 아직 비싼 수준이기 때문에 가격인하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업계서는 풀이하고 있다.

게다가 국제 밀 가격이 수입돼 국내로 가격이 반영되기까지는 3~6개월의 시간이 걸리므로 수입가격은 아직 높은 수준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편 라면업체 등 관련 업계서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라면 가격이 서민 물가를 대표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데다가, 라면 가격 인상이 전체 가공식품 물가를 견인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 인하 검토 소식이 실적 부진 우려로 이어지면서 주요 라면 제조사의 주가도 급락해 시름을 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거자료 및 출처
주간 곡물시장 동향(2023.6.5~6.9)
2023. 06. 19.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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