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감독이 영화] ‘서울의 봄’으로 돌아왔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김성수 감독이 영화] ‘서울의 봄’으로 돌아왔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렸다. 한국 영화 최초로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다룬 작품으로, 지난 22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메가폰은 영화 ‘비트’(1997), ‘아수라’(2016) 등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이 잡았다. 김성수 감독은 그날의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해 영화적 재미를 선사한 것은 물론,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폭발과 절제를 오가며 묵직하게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과 신군부에 홀로 맞서 나라를 지키려 했던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의 정우성, 참모총장 정상호로 분한 이성민, 9사단장 노태건 역의 박해준, 헌병감 김준엽 역에 김성균 등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열연 역시 호평 이유로 꼽힌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의 출발부터 캐스팅 이유, 촬영 비하인드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김성수 감독은 “그들이 역사의 패배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언론시사회 후 황정민이 눈물을 보였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황정민과 정우성이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더라. 기자간담회할 때도 평정심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끝나고 나서 물어보니 굉장히 몰입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농담으로 황정민에게 ‘나쁜 짓은 다 해놓고 왜 그러냐’고 했다. 전두광 캐릭터가 아닌, 자연인 황정민으로서 이 이야기를 봤을 때 온 충격이 있었던 것 같다. 정우성도 어떻게 봤냐고 했더니 서있을 힘도 없다면서 나를 밀어내더라. 그만큼 영화에 굉장히 깊이 들어갔던 것 같다. 다음날 다시 통화를 했는데 두 배우 모두 영화를 잘 봤다고 했다. 황정민과 서로 그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데 좋은 영화에 출연하게 돼서 감사하다고 하고 나도 훌륭한 연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상투적인 말이 오갔지만 나도 진심이었고 황정민도 진심이었던 것 같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연출을 결심한 계기는.   

“처음 받은 시나리오는 역사적 정황이 굉장히 잘 묘사된 상태였다. 잘 쓴 시나리오였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의 승리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멋지고 근사한 악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손을 놨다. 그로부터 10개월 후 다시 용기를 냈다. 다만 이 시나리오대로 그냥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죄를 증명한 사람들, 그때 그 사람들에게 끝까지 맞서 싸운 사람들을 부각해서 이야기를 만들면 그들의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승리를 하기 위해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또 그것에 어떻게 맞섰는지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화 소재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은 ‘서울의 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실화 소재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은 ‘서울의 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어떻게 극화하고자 했나. 

“뻔한 결말이 있는 짧은 사건이지만 하루 동안 굉장히 많은 일이 벌어졌다. 어마어마한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그 일들이 벌어진 원리는 간단해 보였다. 신군부 세력이 사리사욕을 위해 일을 벌였다는 것, 그것이 처음에는 잘 풀리지 않으면서 진압군이 당연한 명분과 논리로 막을 수 있었는데 그걸 막지 못했다는 게 너무 어처구나 없었다. 탐욕과 명분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탐욕은 더 많은 욕심을 불러오고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잖나. 점점 세력을 불렸고 대세추종주의에 의해 그렇게 됐을 거다. 결국 소수의 몇 사람만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게 내가 생각한 핵심이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쉽게 나라가 무너질 수 없었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관점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극화해 보고 싶었다. 

신군부 사람들은 대법원판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천수를 누리고 잘 살다가 돌아가셨다. 재판장에 섰을 때도 누구 하나 내부 일을 고백한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의기투합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 거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욕망덩어리가 모인 집단이니 자기들끼리 의심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설득하고 그런 게임을 하는 과정이 있었을 거다. 그것을 내가 상상한 것으로 만들어 보여주면 관객이 그것을 보며 그들이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영화 속에 보이는 늑대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

우리 역사뿐 아니라 다른 나라 어디든 앞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그곳에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판단과 결정을 내릴 텐데,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대단한 지혜와 안목, 역량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그들이 순간적으로 느끼는 욕망과 본능에 의해 즉흥적으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 또 실제로 그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9시간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같이 움직이면서 그들이 내리는 판단과 결정을 보며 생생하게 느끼길 바랐다.”

-민감한 소재기도 하다. 두려움은 없었나.  

“두려움은 없었다. 문제가 생겨서 영화를 상영하다가 멈추거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역사적 정황을 갖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어려웠다. 시나리오가 훌륭했는데 달려들지 못했던 것도 사실의 정황적 묘사에 발목이 잡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순간 인간 군상이 보여주는 욕망의 드라마를 그리고 싶었던 거다. 캐릭터의 이름을 바꾸니까 자유로워지더라. 다큐멘터리도 아닌데 하고 나니 잘 써지고 더 재밌어지고 그랬다. 역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창작자의 자유로움을 획득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래도 영화의 마지막에는 상상력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역사적으로 어떤 출발점이 있었는지 토대로 다시 돌아오고자 했다.”

이태신을 통해 진짜 군인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김성수 감독.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태신을 통해 진짜 군인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김성수 감독.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런 의미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은 영화적 상상력, 허구가 가장 많이 가미된 인물이다.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었나.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은 불같은 분이었다. 영화 속 전두광보다 오히려 더 호랑이 같고 다혈질에 거침없는 분이었고 처음 시나리오에도 그렇게 묘사돼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 속 이태신은 여러 사람과 같이 싸우지만 점점 고립돼 혼자만 남는 남자가 되길 바랐다. 혼자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또 정우성을 염두에 두고 그리면서는 목소리도 크고 거침없는 사나이보다 조금 더 합리적이고 조용하고 올곧은 신념을 가진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 정우성의 외피와 비슷한 사람을 형상화하면 대비도 되고 감정이입도 더 잘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권력, 군대라는 것은 국민의 합의에 의해 살상과 무력에 대한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불멸의 대전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 총이나 칼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거다. 국민을 보호하거나 나라를 지키는 경우에만 써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다. 이것은 유능과 무능을 훨씬 넘어서는 굉장히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에 하나 우리 영화 속에서 이태신이 너무 바보 같고 왜 저기서 혼자 싸우는 거야라는 말을 듣더라도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생각하잖나. 나는 그 사람이 우리의 군인, 진짜 군이라고 생각했다.”

-결말을 바꾸진 않았지만 이태신이 바리게이트를 넘어 전두광과 마주하는 장면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시나리오를 쓰고 찍을 때까지도 이태신이 주먹을 날려야한다, 총을 쏴야한다 등 여러 의견이 있었다. 실제는 뻔뻔하게 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내 영화 속 전두광이라는 인물은 이태신이 자기에게 와서 그 말을 할 때 순간적으로 인간적인 부끄러움을 느꼈을 거다.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순간을 느꼈을 거다. 그래서 전두광은 기쁨의 순간을 누리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그러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에 와서 자신을 정당화하는데 그렇게 웃는 순간 악마가 된 거라고 생각했다. 현대사회에 굉장히 큰 문제를 일으킨 악당이 탄생한 날이 12월 12일 그날 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그 장면은 영화적 재해석이 들어간 부분이다.”

압도적인 열연을 보여준 황정민.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압도적인 열연을 보여준 황정민.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황정민을 캐스팅한 이유는. 

“‘아수라’를 하면서 그의 연기 능력에 대해 너무 감탄했다. 이후 1년쯤 지나 연극 ‘리차드 3세’에 초대해 줘서 봤다. 그때는 이 프로젝트 제안을 받지 않을 때였는데 역사적 실존 인물이고 사악하고 내면이 뒤틀리고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왕을 연기하는 그를 보면서 정말 놀랐다. 그러다 한 3년 후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을 때 다시 공연을 해서 또 보러 갔다. 처음에 봤을 때도 놀랐는데 두 번째도 말할 수 없이 잘하더라. 전두광은 황정민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두광은 원래 문제가 있는 인간이기도 했지만 이 사건을 겪으며 점점 더 무리의 왕이 되고 그들을 결코 믿지 않지만 설득하고 끌어들이면서 탐욕의 왕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황정민이 완벽하게 표현했다.”

-이름은 바꿨지만 전두광의 외형은 굉장히 흡사하게 표현했다. 

“처음 황정민에게 창작할 것이기 때문에 그 인물을 똑같이 따라하거나 성대모사 같은 것은 절대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만 이 영화는 당신이 맡은 역할로부터 출발해 모든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대머리가 돼서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했더니 1초 만에 좋다고 하더라. 자신의 모습으로 나가면서 ‘난 이 사람이야’ 이러는 게 면구스러웠다고. 외국배우 이야기를 하면서 완전히 자기 모습을 지우고 그 모습으로 나타날 때 신나게 연기했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하더라. 자신도 그렇게 만들어달라고 했다. 과정은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 안에서도 첫 촬영할 때 쓴 1번 가발부터 마지막 5번 가발까지 있었다. 새로운 시럼을 하면서 가발을 점점 계량화했다. 뛰어난 한국의 특수분장팀이 해낸 거다.”  

-당시 시대 배경도 리얼하게 담아냈다. 어떤 과정이 있었나.   

“감독은 일종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이렇다고 치고요’라고 하는 건데 그러려면 영화 안에 실재감이 만들어져야 한다. 실재감이 깊어지면 장면에 핍진성이 생기게 된다. 나의 노력이라기보다 같이 일한 팀의 힘이다. 공기마저 가져올 정도였으니까. 아주 사소한 것도 모든 게 다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배우들의 덕도 컸다. 연기 경력이 많거나 연극에서 활동한 배우들을 모았다. 리허설하는 과정에서 그분들이 연기를 잘하니까 진짜 실제 그 상황 안에 있는 인물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촬영할 때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실재감 있는 화면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엔딩 장면에 실제 군사 반란 지휘부와 행동대장들이 국군보안사령부 건물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박제했다. 감독의 의도는 무엇인가.  

“12‧12 사건을 검색하면 그 사진부터 나올 거다. 그 사람들에게는 승리의 기록이잖나. 승리해서 군부를 장악하고 자기편으로 갈아 끼운 다음 모여 파티를 하고 나와서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은 거다.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당신들의 자랑과 승리의 기쁨이 나의 영화 속에서는 역사의 패배자로 느껴지길 바랐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