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과 면담을 하고 있다. / 뉴시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과 면담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전두성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따라 쌍특검 법안(대장동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의혹)’과 함께 이태원 특별법도 국회에서 재표결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내달 1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재표결하는 것은 이르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설 연휴 이후 재표결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5번째 거부권 행사

윤 대통령은 30일 오후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은 오늘(30일) 오전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 재의요구안’에 재가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번이 5번째다.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간호법 제정안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및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쌍특검법 △이태원 특별법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에게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바 있다. 특별법이 공정성과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울러 정부는 유가족과 피해자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입법 폭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희용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특별법에 따라 특별조사위원회가 운영돼야 한다면 헌법 질서에 부합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번 법안에 담긴 특조위는 그 권한과 구성에서부터 이를 담보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리한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대통령에게 의도적으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해 이를 총선용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문제가 많은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반민주적 입법 폭주와 정치공작에 맞서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 민주당 “유가족 호소 외면”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유가족의 호소를 외면했다며 반발했다. 임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아내의 범죄 의혹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으로 부족해 사회적 참사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민의를 거부하는 수단으로 삼다니 참 지독한 대통령”이라며 “재난을 막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이 같은 기본책무를 부정했다”고 맹비판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일제히 비판 목소리를 냈다. 김한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피도 눈물도 없다”며 “무도한 정권이었던 박근혜 정부에서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꾸릴 수 있었는데, 이 정권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당정과 야당의 ‘정쟁’이 아니다. 정부와 국민의 ‘전쟁’”이라며 “공감 능력이 없는 윤 대통령은 피눈물 흘리는 유가족들의 염원을 외면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우원식 의원도 “유가족이 흘린 눈물만큼 대통령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비정한 정권은 반드시 심판받는다”고 적었다.

정부가 제시한 지원책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것이야말로 유가족과 국민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유가족들이 길 위에서 오체투지와 1만5,900배를 하면서 호소한 것은 오직 진실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다. 그런 피맺힌 호소를 외면하고 돈으로 때우겠다는 천박한 인식은 매우 유감”이라고 직격했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순간 귀를 의심했고 눈을 의심했다”며 “굉장히 모욕적인 언사라고 생각한다. 지금 그분들이 돈 몇 푼 받자고 그러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 이목 집중된 ‘재표결 시점’

이에 따라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왔다. 이태원 특별법은 물론 쌍특검 법안에 대해서도 국회가 재표결 절차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재표결이 이뤄질 경우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의힘은 쌍특검 법안에 대해 내달 1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리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진작 거부권이 행사돼 국회로 돌아온 쌍특검법은 여전히 야당에 선거용 정쟁 도구로 활용되며 재표결이 지연되고 있다”며 지난 주말 국회의장께서는 쌍특검법도 같은 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장께서 밝히신 ‘쌍특검법의 내달 1일 처리 방침’에 깊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1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재표결 절차를 진행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1일에 재표결이 진행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오늘 (이태원 특별법)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거기까지 열어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이 관계자는 “오늘 유가족이 ‘민주당이 국민의힘 의원에게 호소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당장 저희가 어떻게 재표결을 하겠는가. 유가족들이 시간을 달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러한 이유로 민주당은 재표결 절차를 설 연휴 이후에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명절 밥상에 ‘거부권 이슈’를 올린 후 국민적 지지를 받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2월 중순 경 공천 절차가 진행됨에 따라 공천에서 탈락한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에게 찬성표를 요청하겠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고 최고위원은 “공천이 어느 정도 끝나는 시점에 (재표결을) 해야 된다고 본다”며 “민주당으로서는 수용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를 정무적으로 선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공천이 끝나고 낙천자를 노리는 것 아닌가’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 계산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2월 임시국회는 내달 19일을 시작으로 열린다.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내달 29일에 열기로 여야는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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