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영풍그룹의 공동창업주 양가가 충돌하고 있다. / 고려아연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영풍그룹의 공동창업주 양가가 충돌하고 있다. / 고려아연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3세 시대에 접어들어 최근 수년간 예사롭지 않은 기류를 보였던 영풍그룹 공동창업주 양가 간 갈등이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본격화하고 있다. 주요 쟁점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양측의 지분 차이가 크지 않아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 고려아연 둘러싼 ‘지분 경쟁’ 양상, 결국 본격적인 갈등으로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설립한 영풍그룹은 7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창업주 시대를 거쳐 2세와 3세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양가의 동업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양가를 둘러싼 기류가 크게 달라졌다. 수년 전부터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 이어오던 양가가 본격적으로 갈등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영풍그룹은 공동창업주 양가가 뚜렷한 역할분담을 해왔다. 고 장병희 창업주의 자손들은 장형진 고문을 중심으로 영풍과 영풍전자 등 전자부문을 맡아왔고, 고 최기호 창업주의 자손들은 최윤범 회장을 중심으로 고려아연 등 비철금속부문을 맡아왔다. 다만, 지분 측면에선 경계가 확고하지 않고, 다소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런 가운데, 양가의 충돌은 고려아연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고려아연은 그룹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보유 중인 자금도 상당한 핵심 계열사다. 경영적인 측면에선 최씨 일가 측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지분 측면에선 장씨 일가 쪽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는 양상이었다. 25%가량의 지분을 보유하며 고려아연 최대주주로 자리매김 중인 영풍의 지분 절반 이상을 장씨 일가 측이 보유해왔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수년 전부터 예사롭지 않은 변화가 이어져왔다. 양가가 지분 경쟁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장씨 일가 측인 영풍은 계열사에 지급된 배당금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확대했고, 최씨 일가 측인 고려아연은 한화그룹과 LG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주요 대기업 등을 우군으로 확보하며 실질적인 지분을 늘려나가는 행보를 보였다.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까진 아니었지만, 서로를 경계하고 견제하는 양상이 뚜렷했다.

양가의 지분 경쟁 양상 배경으로는 엇갈린 상황이 지목됐다. 장씨 일가는 실적 및 신사업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부진한 행보를 이어간 반면, 최씨 일가는 호조를 이어가면서 서로의 이해관계도 엇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양가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공시와 입장문, 보도자료 등을 통해 갑론을박을 이어가며 충돌하고 있는 모습이다.

양가가 대립하고 있는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배당이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배당 여력에 비해 부족한 배당 계획을 내놓았다며 이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고려아연은 주주가치 제고를 꾸준히 추구해왔으며 일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주주환원 정책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쟁점은 고려아연 측이 이번 정기주총 안건으로 예고한 정관 변경이다. 고려아연은 기존 정관상 외국의 합작법인에게만 가능하도록 규정돼있었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국내 법인에게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추진하고 나선 상태다. 그러자 영풍은 주주권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영풍도 2019년에 같은 내용의 정관 변경을 실시했다고 지적하는 한편, 지나친 경영 간섭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처럼 양측은 표면적으로는 주주가치와 경영을 이유로 내걸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지분 경쟁’을 실질적인 갈등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장씨 일가 측은 고려아연의 배당금을 통해 지분을 확대했고, 최씨 일가 측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우군 확보에 활용한 바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갈등은 결국 정기주총 표대결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영풍 측이 배당과 관련해서는 수정동의 안건 제출을 예고했고, 정관 변경과 관련해서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양가의 지분 차이는 근소한 상황이다. 고려아연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 중인 장씨 일가 측의 지분은 32% 수준으로 파악된다. 최씨 일가의 경우 직접 보유 중인 지분은 15% 수준이지만, 우군으로 분류되는 것까지 포함하면 33% 정도로 파악된다. 때문에 8.39%의 지분을 보유 중인 국민연금의 선택에 따라 양가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이번 정기주총 결과와는 무관하게 양가의 갈등은 한동안 지속되며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편, 고려아연의 정기주총은 오는 19일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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