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한미·OCI 합병 찬성”, 모녀 지분율 42.99%… 2%p 역전
40.56% 장·차남 “재단, 중립의무 있어…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신청”
故 임성기, 후계자 장남 낙점… 송영숙 “임성기 이름으로, 후계자는 장녀”

한미약품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주주총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 한미약품
한미약품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주주총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 한미약품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업계 초미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7.66%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이 사측의 편에 서면서 OCI그룹과 합병을 찬성하는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지분 싸움에서 다시 앞서나갔다. 다만 ‘합병 찬성’ 모녀와 ‘합병 반대’ 장·차남 양측 모두 과반 이상 지분율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소액주주들의 의중이 향후 한미약품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6일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오는 28일 열리는 한미사이언스 주총 안건을 심의하고 최종적으로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합병’ 및 ‘사측 제안 이사 후보 안건’에 대해 모두 찬성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OCI그룹과 합병을 추진하고 나선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측은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 11.66%, 10.20%와 친족, 재단, 국민연금까지 포함해 42.99%를 확보했다. 여기에는 한미사우회가 보유한 지분(0.33%)과 가족 간 분쟁에 있어 중립의 자세가 요구되는 공익재단인 가현문화재단(4.90%), 임성기재단(3.00%)까지 포함한 수치다.

문제는 한미사우회 지분의 경우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한미정밀화학 약 3,000명의 임직원들 중 단 9명이 참석한 사우회 임원들의 운영회의에서 결정됐으며, 전 직원의 의견을 취합하기 위한 설문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한미정밀화학 직원들은 매달 급여에서 일정 부분을 ‘사우회비’로 내고 있다는 점에서 지분 보유 여부와 무관하게 모두 ‘1인 1표’ 권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미사우회는 보유 주식 0.33%를 직원들의 의견은 묻지 않은 채 사측에 헌납하고 나섰다. 이러한 이유에서 한미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블라인드)에서 한미 직원들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도 307명 중 합병을 반대하는 측이 82% 이상에 달하는 등 통합 찬성(17.4%)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에 합병 반대파인 장차남 측에서는 “사우회는 직원들의 친목 및 경조사를 위한 모임”이라며 “이번 의결안은 사우회 성격과 맞지 않고, 현 경영진의 압력에 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한미사우회는 중립(기권)을 지켜야 한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한미사우회 0.33% 지분을 빼고 보더라도 OCI와 통합을 추진 중인 송 회장과 장녀 임주현 부회장 측 지분율은 재단을 포함해 42.66%로, OCI와 합병을 반대하다가 사장직에서 해임된 장·차남보다 2.1%p(퍼센트 포인트) 앞선다. 28일 열릴 주총에서 일단은 우위를 점하고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한미사우회(0.33%)와 가현문화재단(4.90%), 임성기재단(3.00%)에서 중립을 지키고 나선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우회와 재단 지분은 현재 전부 송 회장 측에 반영된 상황으로, 중립을 지켜 양측 모두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면 송 회장이 이길 확률은 희박해진다.

임종윤·종훈 사장은 송 회장의 독단적인 OCI그룹과 통합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비치면서 통합을 저지하기 위해 한미사이언스 공익 법인인 가현문화재단, 임성기재단의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 / 임종윤 사장 측
임종윤·종훈 사장은 송 회장의 독단적인 OCI그룹과 통합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비치면서 통합을 저지하기 위해 한미사이언스 공익 법인인 가현문화재단, 임성기재단의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 / 임종윤 사장 측

이에 OCI와 합병을 저지하려는 한미약품 창업주 고(故) 임성기 선대회장의 장남과 차남 임종윤·임종훈 전 사장은 지난 26일 한미사이언스 공익 법인인 가현문화재단, 임성기재단의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

임종윤 사장은 “재단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의결권은 임성기 선대회장의 유지에 따라, 공익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사돼야 하고, 이에 반해 특정인의 사익 추구에 동원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상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규정은 일부 기업집단에서 공익법인에 회사 주식을 출연한 후 이를 공익적 목적에 이용하기 보다는 특수관계인들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 및 경영권 승계 수단 등으로 남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한미약품 측은 “재단은 원칙과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해당 안건을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임종윤·종훈 형제의 주장은 각 재단 이사회 구성원을 모욕하는 것이며, 주총을 하루 앞두고 개인주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활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반박했다.

현재 장·차남 측의 지분율은 자신들과 직계가족 지분에 DXVX,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2.15%)의 지지를 얻으며 40.56%를 확보했다. 장·차남 측이 제기한 재단의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사실상 재단에서 보유한 지분은 의결권이 없어진다. 이를 제외하면 과반 지분율은 44.48%로 장·차남 측에서는 3.92% 이상 소액주주 표를 추가로 확보하면 된다. 이 경우 송 회장이 과반을 차지해 승리하기 위해선 소액주주들의 표가 9.39% 이상 필요한 상황에 놓인다.

재단의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어느 쪽이든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 없는 한미사이언스 자기주식(3.14%)을 빼고 48.43%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송 회장 측은 5.44% 이상만 확보하면 돼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고, 현재 지분율에서 다소 뒤지고 있는 장·차남이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7.87% 이상의 소액주주 표를 얻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임종윤·종훈 사장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합병에 다가갈수록 하락하는 주가’가 가장 큰 요인으로 평가된다.

소액주주들은 경영자가 누구인지보다 주가를 부양할 수 있는 측을 지지하겠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문제는 지난 26일 수원지방법원에서 ‘한미사이언스의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자 순간 주가가 8% 이상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26일 종가 역시 전일 종가 대비 7.29% 하락한 금액으로 마쳤다.

또한 신동국 한양정밀화학 회장이 중립 입장에서 양측과 소통 후 장·차남 지지를 선언한 점도 소액주주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신 회장은 “지난 한미 50년을 바라봐온 결과 지금 같은 입장을 낼 수밖에 없었음을 주주들이 더욱 잘 알 것”이라며 “저를 포함한 개인주주들이 외면 받지 않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 소액주주들이 장기적 차원에서 무엇이 본인을 위한 투자와 한미의 미래, 더 나아가 한국경제 미래에 도움이 될 지 좋은 결정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임종윤·종훈 사장 측은 “아직 현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을 주주들이 바로잡아 줄 기회가 남아 있다”며 “주총에서 미움과 독선의 메시지 대신 화해와 희망, 전진의 메시지가 담긴 저희의 주주제안을 선택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여기에 최근 송 회장이 장·차남을 사장직에서 해임하고, 임성기 선대회장의 이름을 빌려 장녀를 후계자로 선포한 점도 소액주주들에게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특히 임성기 선대회장은 지난 2010년 한미약품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자신과 장남인 임종윤 사장을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공동 대표이사에 등기해 함께 경영을 이어왔다. 이후 2016년 임성기 선대회장은 스스로 미등기임원으로 물러났고, 자연스럽게 임종윤 사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가 갖춰졌다.

사실상 임성기 선대회장은 일찌감치 장남 임종윤 사장을 후계자로 지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송 회장은 장남 임종윤 사장이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통합에 제동을 걸며 반기를 들고 나서자 장남을 내치고 지난 26일 “임성기의 이름으로, 나는 임주현을 한미그룹의 적통이자 임성기의 뜻을 이을 승계자로 지목한다”고 선언했다. 또 27일 오전 임주현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결국 임성기 선대회장이 생전에 장남 임종윤을 지주사 대표이사 및 한미약품 사장에 앉히면서 암묵적으로 후계자를 내정했던 것과 달리 송 회장은 자신과 뜻이 다른 장남 대신 장녀를 후계자로 선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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