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혁명의 상징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투사의 길을 걸었고, 군사정권에선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국난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던 헌신이 오늘을 만들었다. 이제 나라 잃은 설움도, 국가 권력의 횡포도 없다. 국민 승리의 시대다. 하지만 청년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설 곳이 없다. 현실의 높은 장벽에 부딪혔다. 이들은 말한다. “청년이 위기다.” 이들이 묻는다. “청년을 구할 방법은 없는가.” 이들의 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역할이 아닐까. [편집자주]

 

소확행이 올해 새로운 트랜드로 떠올랐다. 말 그대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소확행 저변에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깔려있다는 점이다. <영화사, MBC, JTBC, tvN>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배고파서 왔어.”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은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소 싱거운 답변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극중 혜원은 서울에서 홀로 자취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20대 여성이다. 함께 공부한 남자친구만 시험에 합격하자 자괴감에 빠졌다. 끼니조차 챙겨먹지 못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니 왈칵 서러움이 몰려왔다. 빡빡한 도시의 일상을 중단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혜원의 ‘소확행(小確幸)’이었다. 

영화는 흥행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누적 관객수가 150만명을 돌파했다. 관객들은 혜원의 식사에 공감했다. 저마다 다른 소확행을 살펴보는 일도 재미였다.

실제 소확행은 예능으로까지 확산됐다. MBC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나 혼자 산다’가 일례다. 스타 개인의 일상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그들 역시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고,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소확행, 말 그대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

◇ 소확행 추구는 합리적 행동

사실 소확행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32년 전이다. 1986년 출판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 있는 것’, ‘막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퐁퐁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 느끼는 기분을 소확행으로 묘사했다.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다. 강산이 세 번 바뀐 지금에서야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전문가들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꼬집고 있다.

다시 말해 소확행은 ‘노력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현실로부터 생겨난 것(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으로 해석됐다. 불확실한 가치를 쫓기보다 작은 행복이라도 성취할 수 있는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사회초년병에게 요구하는 을로서의 삶, 맞닥뜨려야 하는 부조리들이 적극적인 사회 활동의 의욕을 꺽는다(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점에서, 도리어 ‘소확행 추구는 합리적인 행동(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의 소확행을 재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상의 작은 행복도 중요하지만, 더 이상 포기할 게 없는 N포 세대의 고민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문제는 여기에 ‘N포 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의 애달픈 삶이 투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N포 세대는 이전의 7포(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인간관계·꿈·희망을 포기한) 세대를 뛰어넘는 말이다. 모든 삶의 가치를 포기한 2030세대를 부르는 신조어다. 이들에겐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위로가 전혀 반갑지 않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소확행도 ‘확실한’ 의지가 표현된 결과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실현 가능성이다. 어렵지 않은 일이거나, 노력한다면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소확행은 자기애(自己愛)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을 위해 탈출구를 찾은 셈이다. 극단적인 사람들의 경우 학업과 취업 등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0~50대 가운데 우울증 환자가 가장 많이 증가한 세대는 20대다. 2012년 5만2,793명에서 2016년 6만2,297명으로 22.2%가 올랐다. 2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따라서 소학행을 찾는 청년들의 행위를 ‘포기’가 아니라 ‘쉼’으로, 단순한 열풍이 아닌 우리 시대의 경종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좀 더 확실한 행동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청년들의 정치 참여다.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한 청년정당 우리미래의 우인철 전 후보는 “정치가 청년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거에 출마한 것도 청년들의 문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투자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선거 출마 외에도 방식은 다양하다. 민원을 제기하거나 공청회를 참여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관망에서 한걸음 내딛는 것, 그것이 소확행에서 대확행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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