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7 19:27 (목)
[기자수첩] ‘투사 엄마’, 김용균법 만든 김미숙 씨가 마지막이길
[기자수첩] ‘투사 엄마’, 김용균법 만든 김미숙 씨가 마지막이길
  • 조나리 기자
  • 승인 2018.12.28 1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제 딸 유미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게 돼 기쁩니다.” 고(故)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지난 11월 삼성전자와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을 체결하던 날 이 같이 말했다. 황 대표의 투쟁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비아냥도 수없이 들었다. 그렇게 11년이 흘러 황 대표는 딸과의 약속을 지켰다.

11년이라는 시간과는 비교할 순 없지만, 최근 또 다른 ‘어머니’의 싸움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바로 한국전력 자회사 서부발전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사망 사고를 당한 김용균(24) 씨 어머니 김미숙 씨의 이야기다. 김씨는 지난 11일 컨베이어벨트에서 이상 소음이 발생하자 귀를 대고 소리를 점검하던 중 벨트와 롤러에 신체가 빨려들어가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김씨가 생전에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노동악법 폐지와 불법파견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직접고용을 촉구했던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대신해 싸우기로 했다. 아들이 일했던 현장에 가서는 잠시 무너져 내렸지만, 곧 방송사 인터뷰, 거리 집회를 하며 원청 측의 책임을 요구했다.

지난 26일에는 산안법 개정안 논의를 위한 간사단 회의실 앞에서 국회의원들을 만나 ‘김용균법’ 통과를 눈물로 호소했다. 김씨는 “원청, 정치인, 대통령, 이 중에서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디있냐”고 물었다. “아들도 죽은 나는 두려울 게 없다”던 김 씨는 결국 27일 본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 법률안이 가결되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비록 초안보다 후퇴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이루지 못했던 진전을 이뤘다. 김용균법에 따르면, 법의 보호 대상이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됐다. 또 일시적인 작업을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사업주가 유해하고 위험한 작업을 하청 주는 것을 금지했다. 이와 함께 중대 재해가 발생했거나 재발 우려가 있는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작업 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

가장 쟁점 사안이었던 사업주 처벌도 강화됐다.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현행대로 7년 이하 징역형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되, 5년 이내 같은 죄를 저질렀을 때는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김용균법은 한때 ‘구의역 김군법’으로도 불렸다.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19살 김모 군이 혼자 승강장 안전문을 수리하다 참변을 당하자 산안법 개정 논의가 불붙은 것.

그 전에도 서비스센터 기사들이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수리하다가, 전봇대 위에서 인터넷 선을 연결하다가 추락사한 사고들이 있었다.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들로, 원청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결국 김용균 씨마저 사고를 당하자, 산안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재계의 논리를 들어 ‘공개토론’을 제안하면서 한때 본회의 통과가 불투명해지기도 했다.

청와대는 자유한국당의 조국 민정수석 국회 운영위 출석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김용균법 처리를 촉구했다. 산안법 개정안이 기적적으로 본회의를 통과한 배경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노력이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시는 내 아들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나 같은 일을 겪을 부모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김미숙 씨가 방송 인터뷰와 집회 등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말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김씨와 같은 어머니, 아버지가 많다. 황상기 대표는 물론 세월호 참사 유족들, 지난 7월 별세한 고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 씨,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씨, 전태일 열사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까지...

자식을 잃고 슬픔을 가누지도 못한 채 투사가 된 어머니와 어버지들, 이들 역시 “이런 고통은 우리가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고 말하곤 했다. 한 분 한 분 투사, 열사로 불리고 있지만 이는 그들이 선택한 삶은 아니었다. 먼저간 자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투사가 된 어머니들. 우리는 언제까지 잘못된 일들을 바로 잡기 위해 ‘엄마’를 투사로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 역시 김미숙 씨가 마지막이 되길.



해당 박스는 '광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