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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요
[함께 살아요⑭] 빨간 교통복 입은 거리 위의 수호천사
2019. 08. 19 by 소미연 기자 pink2542@sisaweek.com

히어로(hero)를 다룬 이야기는 흥행불패다. 악당과 대적하는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정의를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여기엔 세상을 향한 일침이 있고, 잠들어있던 인류애를 깨운다. 어쩌면 우린 각박한 현실에서 나를 도와줄 히어로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멀리 있지 않다.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따뜻한 뉴스로 종종 찾아온다. 목숨을 걸고 이웃을 구한 시민 영웅들이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함께 살자’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당신도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 | 편집자주

빨간색 교통복은 이철희 씨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를 두고 정치적인 오해를 받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봉사와 정당 활동은 무관한 일로 선을 그었다. / 소미연 기자
교통자원봉사자 이철희 씨의 트레이드 마크는 빨간색 교통복이다. 이를 두고 정치적인 오해를 받을 때가 가장 힘들다는 게 그의 토로다. 이씨는 봉사와 정치는 무관한 일로 선을 그었다. / 소미연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서 이철희(71)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방화동 마이클잭슨, 인간 신호등, 아이들의 수호천사 등이 모두 그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인근에 있는 고등학교와 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굣길 안전을 책임지면서 붙여졌다. 매주 목요일엔 방화사거리로 나간다. 혼잡한 출근길에서 이씨는 호루라기를 불며 직장인들의 힘찬 하루를 응원한다. 그렇게 거리 위에서 교통봉사를 해온지 40여년이다.

◇ 반평생 넘긴 봉사 40년에 도리어 감사

봉사를 하기로 결심한 특별한 계기는 없다. 아내와 함께 터를 잡기 위해 시작했던 구멍가게가 거덜 나고, 재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던 농사도 수확이 시원찮을 때였다. 지인의 소개로 찾은 방화동에서 자율방범대를 조직해 치안에 힘썼고, 홍수에 위험해진 학생들 구조에 뛰어들면서 그야말로 ‘이웃’이 됐다. 떠나려던 이씨 부부를 붙잡은 것도 이웃들이다. 헛간 하나에 문방구를 열자는 이웃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이씨는 아내와 함께 문방구 주인이 됐다.

그때부터다. 이씨의 아내가 살림을 책임졌다. 아내의 내조로 이씨는 서울 도심 곳곳에서 시민자원경찰로 교통봉사를 이어왔다. 민선 1기가 시작된 이후 활동 영역을 방화동으로 좁혔지만 열정은 여전하다. 현재 법무부 서울남부보호관찰소협의회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범죄예방강서지구협의회에 위원으로 몸담고 있다. 이외 본인이 창단한 ‘푸른신호등 자원봉사대’와 ‘깔끄미 자원봉사대’를 이끌고 있다. 봉사로 반평생을 훌쩍 넘겨버린 그는 도리어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다.

이씨는 지난 14일 <시사위크>와 만난 자리에서 “만인의 벗이 되는 봉사를 하기 위해선 가정의 행복과 건강이 지켜져야 하는데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다”면서 “내조해준 아내와 자녀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사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빨간색 교통복도 가족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씨가 150cm의 작은 키라는 점을 감안해 도로 위에서도 안전하고, 멀리서도 눈에 띌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가족이 머리를 맞댄 것. 이씨는 “빨간색은 상상도 못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철희 씨는 40여년 간 봉사를 이어온 공로로 각종 표창장과 감사장을 셀 수 없이 받았다. 그는 모두 가족 덕분이라고 말했다. / 소미연 기자
이철희 씨는 40여년 간 봉사를 이어온 공로로 각종 표창장과 감사장을 셀 수 없이 받았다. 그는 모두 가족 덕분이라고 말했다. / 소미연 기자

처음엔 조롱거리와 다름없었다. 복장과 제스처를 구경하느라 차량들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씨는 창피하지 않았다. 6·25전쟁통을 겪었던 그다. 4살 손주를 목마 태워 피난길에 오른 할아버지는 아사로 운명을 달리했고, 어머니가 남매를 키우기 위해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이겨낸 누나는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 3년을 입원했고 7년의 후유증이 이어졌다. 이씨는 교통안전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았다.

이씨는 “누나의 교통사고는 충격이었다. 같은 사례가 반복되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빨간색 교통복을 계절에 상관없이 착용했다. 무더위에 반팔을 입거나, 한겨울에 겉옷을 입지도 않았다. 비가 올 때 흰색 우의를 입는 게 변화의 전부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씨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는 2000년 MBC ‘칭찬합시다’ 147회 주인공으로, 2007년~2008년 5회에 걸쳐 KBS1 ‘아침마당’에 소개되는 등 지역 명물로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다. 대한민국 자원봉사 대상 국무총리 표창장과 기관·단체로부터 받는 감사장이 셀 수가 없다.

◇ 빨간색 때문에 곤혹… “봉사자는 만인의 벗”

이씨는 “상을 너무 많이 받았다. 이제 그만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랑하려고 한 일이 아닌데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아와 부끄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곤혹스러운 것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색 교통복이 정치 성향으로 확대 해석되는 점이다. 새누리당이 과거 한나라당에서 당명을 교체할 당시 당색도 빨간색으로 교체하면서 이씨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특히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오해를 받거나 다른 정당으로부터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씨는 “수 십 년 동안 정부에서 상을 받을 때도 사람이 주는 게 아니라 자리가 있어서 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면서 “빨간색 교통복은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기 전부터 입어왔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결국 그는 빨간색 교통복 위에 법무부에서 제공해준 노란색의 조끼를 입기로 했다. 이씨는 “봉사자는 만인의 벗”이라면서 “건강이 다하는 날까지 봉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