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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요
[함께 살아요⑪] 난민 제자에게 희망 심어준 선생님
2019. 03. 08 by 소미연 기자 pink2542@sisaweek.com

히어로(hero)를 다룬 이야기는 흥행불패다. 악당과 대적하는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정의를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여기엔 세상을 향한 일침이 있고, 잠들어있던 인류애를 깨운다. 어쩌면 우린 각박한 현실에서 나를 도와줄 히어로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멀리 있지 않다.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따뜻한 뉴스로 종종 찾아온다. 목숨을 걸고 이웃을 구한 시민 영웅들이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함께 살자’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당신도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 | 편집자주

오현록 선생님은 시사위크와 인터뷰에서 난민 문제가 비단 인권으로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고민하고 이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위험에 처한 제자를 도우면서 난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 소미연 기자
오현록 선생님은 시사위크와 인터뷰에서 난민 문제가 비단 인권으로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고민하고 이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위험에 처한 제자를 도우면서 난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 소미연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교직생활 26년째다. 기억에 남는 제자를 꼽으라면 아마도 첫 번째는 김민혁(17) 군이 아닐까. 처음엔 이란에서 온 유학생인줄 알았다. 구김살은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접었다. 이상한 낌새를 차리게 된 것은 지난해 5월부터다. 당시 민혁 군은 추방 위기에 처했다. 출입국 당국의 난민 심사 결과에 불복해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대법원에서 기각당한 것이다. 이 같은 사연을 전해 듣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오현록(54) 선생님의 얘기다.

◇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오현록 선생님은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주중학교에서 <시사위크>와 만나 “그때까지만 해도 난민에 대해 무지했다. 아이가 출국하면 위험한 상황이라,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한발을 내딛은 게 오늘까지 왔다”고 말했다. 실제 그랬다. 민혁 군의 난민 신청 계기가 됐던 ‘개종’은 이란의 샤리아(이슬람) 율법에서 중죄에 해당한다. 태어날 때부터 기독교인, 천주교인이라면 이도교로 분류되지만 이슬람으로 태어나 다른 종교로 개종하면 배교자로 찍혀 사형까지 처할 수 있다. 열여섯 살 소년이 감당하기엔 무서운 일이다.

김민혁 군의 난민 지위가 인정되자 그가 다니던 아주중학교 학생회에서 발표한 입장문이다. 오현록 선생님은 제자들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김민혁 군의 난민 지위가 인정되자 그가 다니던 아주중학교 학생회에서 발표한 입장문이다. 오현록 선생님은 제자들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민혁 군은 재심사를 청구했다. 민혁 군의 친구들은 피켓을 들었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청와대 앞에서 공정한 난민 심사를 호소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글을 올렸다. 4개월에 걸친 소년들의 외침이 세상을 울렸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학교를 찾았고, 염수정 추기경이 국무총리와 법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냈다. 결국 민혁 군은 지난해 10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 과정을 함께해 온 오현록 선생님은 “결과를 100% 확신하지 못했다”면서 “아이들이 힘든 과정을 훌륭하게 견뎌냈다”고 말했다.

오현록 선생님은 당시를 떠올리며 “아이들이 맘고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댓글보다 더 상처가 됐던 것은 가까운 사람,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차가운 말을 들었을 때다. 그는 “저도 맘고생이 심했는데, 아이들은 오죽했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래서 언론을 통해 더 이상 소식이 전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언론 앞에 서기로 결심했다. 민혁 군의 아버지 A씨 때문이다. A씨는 지난달 19일 난민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재심사를 신청했다. A씨가 추방되면 민혁 군 홀로 한국에 남게 된다.

또 한 번의 기적이 필요한 상황이다. 출입국 당국이 재심에서 기존 결정을 뒤집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때문에 민혁 군이 대법원의 기각에도 재심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을 때 주변에서 ‘기적’이라고 불렀다. 오현록 선생님은 “부자(父子)가 첫 번째 난민 심사에서 불인정 처분을 받은 뒤 행정소송을 냈는데, 배당된 재판부가 다르다보니 진행 속도가 서로 달랐다”면서 “아이는 지난해 5월 3심을 끝냈으나, A씨는 그로부터 7개월 뒤에야 2심이 끝났다. 그 사이 아이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A씨의 상고심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 하에 재심으로 방향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난민 인정자의 배우자 또는 미성년자인 자녀가 입국을 신청하는 경우 입국을 허가해야 한다’는 난민법(제37조 1항)을 믿고 있다. 여기엔 출입국관리법 제11조에 따라 감염병 환자, 마약중독자, 총포나 도검을 위법하게 가지고 입국하려는 외국인 등은 제외된다. A씨의 경우 2010년 사업차 한국에 들어오면서 민혁 군을 데려왔다. 교육 차원이었다. 이란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민혁 군의 개종 사실이 이란에 있는 고모가 알게 되면서 문제가 됐다. 부자는 2017년 천주교 영세를 받고 공식적으로 개종했다.

오현록 선생님은 민혁 군과 공정한 난민 심사를 호소하는 친구들의 곁을 지켜왔다. 이제는 민혁 군의 아버지의 재심에 마음을 쏟고 있다. / 서울 대교구청 홍보위원회, 오현록 선생님 제공
오현록 선생님은 민혁 군과 공정한 난민 심사를 호소하는 친구들의 곁을 지켜왔다. 이제는 민혁 군의 아버지의 재심에 마음을 쏟고 있다. / 서울 대교구청 홍보위원회, 오현록 선생님 제공

◇ 아버지도 재심사… 출입국 당국의 현명한 결정 기대

오현록 선생님은 “민혁 군이 난민 인정자다. 더욱이 보호자가 필요한 미성년이다. 아버지가 본국에서 입국하려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아들과 함께 살면서 난민 신청을 한 것”이라면서 “재심사를 요청하기 위해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을 갔을 때만 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로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낙관만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민혁 군과 친구들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난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기를 바랐지만 부족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문제 제기는 한 것 같다”며 웃으며 말했다.

민혁 군은 올해 1월 졸업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로도 수시로 오현록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아버지의 재심사를 앞두고 부쩍 걱정이 많아진 소년은 선생님에게 의지했다. ‘제2의 아버지’라고 여길 정도다. 이에 대해 오현록 선생님은 손을 저었다. “그런 역할을 해서가 아니라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말”이라는 것. 그는 “아이가 졸업 후 친구들과 떨어지면서 외로움을 타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하며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