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hero)를 다룬 이야기는 흥행불패다. 악당과 대적하는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정의를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여기엔 세상을 향한 일침이 있고, 잠들어있던 인류애를 깨운다. 어쩌면 우린 각박한 현실에서 나를 도와줄 히어로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멀리 있지 않다.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따뜻한 뉴스로 종종 찾아온다. 목숨을 걸고 이웃을 구한 시민 영웅들이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함께 살자’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당신도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 | 편집자주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박성태 씨는 초등학교 시절 자신이 미혼모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었다. / 박성태 씨 제공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박성태 씨는 초등학교 시절 자신이 미혼모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었다. / 박성태 씨 제공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편견’의 사전적 의미는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표현에서 사용된다. 주변을 둘러싼 여러 환경으로 본질을 잃어버렸을 때 꺼내는 말이 바로 편견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 한 20대 남성이 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불리는 삼성전자에 취직했다. 내년 초 해외 영업 부서로 자리를 옮겨 목표로 삼았던 커리어를 쌓을 계획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 졸업생 대표 연설에서 깜짝 고백… “편견 덜어낼 기회 되길”

이야기의 주인공 박성태(26) 씨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를 여읜 것은 아니다. 이미 가정이 있던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어린 아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찾아왔을 뿐 모자(母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시절, 박씨에게는 상처가 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숙제로 떼본 등본에서 자신의 비밀을 알았고, 아버지가 사업 때문에 떨어져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심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어린 아들은 아버지에게 “본인 가정이나 잘 지키지 왜 자꾸 오냐”고 성을 냈다.

박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덤덤하게 털어놨다. 사실 <시사위크>와 지난달 27일 서울 모처에서 만나기까지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미혼모 가정뿐만 아니라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자 못할 게 없었다. 그는 “저도 오랜 기간 비밀 아닌 비밀을 숨겨왔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 방어하는 성향이 커졌다”면서 “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저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덜 갖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가 처음 비밀을 밝힌 것은 대학 졸업식에서다. 지난 8월 29일 서울대 후기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단상에 올라 “저는 미혼모의 아들, 기초생활수급자였다”고 깜짝 고백을 했다. 절친한 친구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친구는 박씨에게 “이번 기회에 네가 갖고 있는 아픔을 세상에 꺼내봐라. 세상 사람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만을 가지고 무시하거나 멀어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고백 이후 주변 사람들은 모진 시간을 이겨낸 그에게 “대단한 친구”라며 놀라워했다.

박씨에게 고교시절 은사는 아버지 같은 분이다. 서울대 추천서를 부탁할 때도 13장에 걸쳐 박씨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당시엔 직접 관할 시청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덕분에 지난 8월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 박성태 씨 제공
박씨에게 고교시절 은사는 아버지 같은 분이다. 서울대 추천서를 부탁할 때도 13장에 걸쳐 박씨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당시엔 직접 관할 시청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덕분에 지난 8월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 박성태 씨 제공

실제 그랬다. 박씨는 지독한 생활고까지 겪어야 했다. 아버지는 다툼 이후 연락을 끊은 지 오래였고, 어머니는 뇌종양 후유증으로 실직했다. 결국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입대를 했지만, 제대 9개월을 남겨두고 생계곤란으로 복무 해제됐다. 그만큼 어려웠다. 그때 박씨를 도와준 사람이 고교시절 은사다. 관할 시청을 찾아가 제자의 처지를 직접 설명했던 것. 박씨는 “저와 엄마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당연히 안 될 줄 알았다. 호적상 아버지가 존재해서다. 정작 아버지처럼 나서서 도와주셨던 분은 선생님이다”고 말했다. 은사는 박씨가 서울대 수시전형을 준비할 당시에도 13장 분량의 추천서를 써줬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는 4년여 만에 벗어났다. 취업으로 소득이 생기면서 자격요건에 부합되지 않았다. 박씨도 “(정부 지원금은) 받아야 할 사람이 받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도리어 그는 자신이 아픔을 일찍 겪었던 만큼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향후 지역아동센터를 설립하는 게 꿈이다. 박씨는 “제 스스로 환영받지 못한 존재라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면서 “현재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좀 더 일찍 인지하고 스스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예전보다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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