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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요
[함께 살아요②] 게임중독 탈출 도운 유명 사진작가의 재능기부
2018. 10. 18 by 소미연 기자 pink2542@sisaweek.com

히어로(hero)를 다룬 이야기는 흥행불패다. 악당과 대적하는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정의를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여기엔 세상을 향한 일침이 있고, 잠들어있던 인류애를 깨운다. 어쩌면 우린 각박한 현실에서 나를 도와줄 히어로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멀리 있지 않다.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따뜻한 뉴스로 종종 찾아온다. 목숨을 걸고 이웃을 구한 시민 영웅들이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함께 살자’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당신도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 | 편집자주

서울 광화문 희망사진관 사진사 임모 씨는 과거 게임중독으로 직장과 재산을 모두 잃었다. 하지만 노숙자 쉼터에서 게임을 끊었고, 서울시와 조세현 사진작가가 함께 운영하는 사진 교육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가졌다. / 소미연 기자
서울 광화문 희망사진관 사진사 임모 씨는 과거 게임중독으로 직장과 재산을 모두 잃었다. 하지만 노숙자 쉼터에서 게임을 끊었고, 서울시와 조세현 사진작가가 함께 운영하는 사진 교육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가졌다. / 소미연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다. 14살의 소년은 집밖을 떠돌았다. 공부 대신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를 자퇴하고 홀로 상경했다. 찾아간 곳은 외삼촌이 운영하는 봉제공장이었다. 이곳에서 20년 넘도록 일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에 외로운 서울살이를 맡겨야 했다. 마음이 헛헛할수록 PC방을 가는 날이 많아졌다. 그게 습관이 됐다. 급기야 공장을 그만두고 게임만 했다. 모아둔 돈을 다 날렸다. 서울 광화문 희망사진관 사진사 임모(42) 씨는 과거를 떠올리며 헛웃음을 보였다.

◇ “내 직업은 포토그래퍼” 제2의 인생 열어준 사진교육

게임중독이었다. 한번에 500만원까지 아이템을 구매할 정도로 게임에 빠졌다. 호주머니를 탈탈 털고 일어섰을 때에는 이미 4~5년이 지난 뒤였다. 살길이 막막했다. 거리의 부랑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때 노숙자 쉼터를 가지 않았다면, 조세현 사진작가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임씨는 17일 <시사위크>와 만난 자리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게임을 끊고 새로운 직업을 얻은 지금의 삶에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포토그래퍼(사진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임씨의 새 출발을 도운 사람은 바로 조세현 사진작가다. 그는 2012년부터 서울시와 함께 노숙인 자활프로그램인 ‘조세현의 희망프레임’을 진행해오고 있다. 2016년부터는 심화과정으로 사진전문학교 ‘희망아카데미’를 열었다. 여기서 조세현 작가는 직접 수강생들에게 촬영기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애썼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사회성이 결여된 노숙인 출신 수강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임씨가 직접 촬영한 사진. 그는 “사진은 알면 알수록 어렵다”면서도 “더 배우고 싶다”고 욕심을 나타냈다. 현재 관심사는 사진으로 동영상을 만들 수 있는 프리미어 프로그램이다. / 임씨 제공 
임씨가 직접 촬영한 사진. 그는 “사진은 알면 알수록 어렵다”면서도 “더 배우고 싶다”고 욕심을 나타냈다. 현재 관심사는 사진으로 동영상을 만들 수 있는 프리미어 프로그램이다. / 임씨 제공

임씨는 쉼터에서 희망프레임을 처음 알게 됐다. 평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수강을 신청했다. 재밌었다. 2016년 5월 희망프레임에서 기초수업을 받은 뒤 희망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는 “사진은 알면 알수록 어렵다. 처음에는 사진이 찍히는 것 자체가 신기했는데, 심도와 셔터 속도 등 전문적으로 배우려다보니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씨는 아카데미 졸업 후 올해 다시 입학해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엔 외국어에 관심이 많다. 프로그램을 배우려면 영어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임씨처럼 재기의 의지를 갖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서울시에서 신경 쓰고 있는 부분도 노숙인들의 이른바 ‘회전문 현상’을 방지하는 것이다. 시설 입소와 퇴소를 거친 뒤 다시 재입소하는 노숙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우선적으로 자존감 회복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진 외에도 시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일자리 제공을 위한 방법도 구상 중이다. 여기엔 사회적 관심과 인식개선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만난 지난 10일에도 현황 점검 차원에서 희망사진관을 찾았다.

◇ “아무것도 안하면 그게 진짜 실패… 안주하면 안 돼”

희망사진관은 희망아카데미 졸업생 중에서 사진사를 선발한다. 현재 임씨를 포함해 5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월급이 지급됐다. 어엿한 직장인으로 사회에 복귀한 셈. 최근엔 문재인 대통령도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2018 실패박람회’를 방문하면서 희망사진관을 찾은 것이다. 임씨는 “대통령을 실제로 보면 어떨까 의구심이 있었는데 막상 보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우리를 거리감 없이 편하게 대해줬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조세현 작가는 어떨까. 임씨는 “작업할 때는 예술가다운 예민함이 있다. 하지만 평소엔 다정한 친구 같다. 수업 받는 어린 학생들이나 노숙인들 모두 (조세현 작가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다시 물었다. 과거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법했다. 그는 “실패박람회에서 도전을 안 하는 게 실패자라고 하더라. 그 말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면서 “도전도 안하고 실패라고 생각해서 아무것도 안하면 그게 진짜 실패다. 현재 위치에 안주하지 말고 노력하면 다시 재기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