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 개편 등 노동시장 개혁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노동계에서 반발하고 나섰다. 사진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뉴시스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 개편 등 노동시장 개혁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노동계에서 반발하고 나섰다. 사진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오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포함한 노동시장 개혁 방안 등을 보고받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노동계가 점차 노동 쟁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 역시 13일 한국노동총연합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토론회를 갖고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 장관은 오는 15일 윤 대통령을 독대해 업무보고를 할 예정이다. 이번 업무보고에는 지난달 23일 고용부가 브리핑했던 주52시간제도를 해결하기 위해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시간을 한 달 단위로 유연하게 사용하는 노동시장 개혁방안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 주52시간제는 1주 근로 시간은 40시간이며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최대 근무 시간이 52시간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1개월을 기준으로 2주 동안 초과 근무했을 경우 남은 2주의 근로 시간을 줄여 법정 근로시간 기준을 맞추는 형식이다. 이에 대부분의 국내 IT 업계는 선택적 근무 시간제를 도입해 주 52시간 초과 근무하되, 기준이 되는 한 달 중 다른 주에서 근무 시간을 줄이고 있다.

고용부에서 제안하는 것은 주 단위로 제한한 연장근로 시간을 한 달 단위로 변경하는 방식이다. 게임사에서는 선택적 근무 시간제도를 6개월 기준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지난 1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게임업계 대표들을 만나 “주52시간제의 합리적인 운영을 위해 지혜롭게 대처하겠다”고 언급하며 노동 정책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뒀다.

IT 업계에서는 노동시간 유연화가 적용됐을 때 ‘크런치 모드(게임 등의 개발 막바지에 밤을 새우며 작업하는 상황)’로 과로하는 노동자들이 양산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비단 주 52시간의 유연화뿐만 아니라 임금,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업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노동시장과 관련해 지나치게 경직된 제도를 흔들림 없이 개편할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 노동계, 하반기 노동쟁의 예고

노동계는 정부의 노동정책 추진 반대를 주장하며 하반기 노동쟁의를 예고하고 나섰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실종됐다”며 노정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만약 노정 갈등이 이어진다면 오는 8월 전국노동자대회, 10월 돌봄 노동자결의대회, 11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 12월 민중대회 등 하반기 투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양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하에서는 일자리 위원회 등 다양한 거버넌스(협치)가 있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는 이러한 위원회가 최소화되고 있다”며 “노동부 장관이 취임하고 민주노총을 찾았을 때 공식·비공식적으로 논의구조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이렇다 할 답변이 없다. 대화 요구에 대통령실과 정부가 대응하지 않아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노정 간의 대화를 촉구했다.

오세윤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IT 위원회 위원장(네이버지회 지회장)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대응 토론회’에 참석해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에 반대한다”며 “제도를 만들 때 사용자를 대표하는 재계의 말만 들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의견도 함께 청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는 “업계에서 일을 시키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제도를 변경했을 때,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대다수 노동자의 권익은 보호받기 어렵다”며 설문조사를 공개했다. IT 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90.63%의 업계 종사자들이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려고 했던 연장 근로시간의 단위 기준 변경에 대해 반대하고 있으며, 응답자의 61.8%는 현행 최대 주 52시간제에 대한 근로 시간도 ‘더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오 위원장은 “IT업계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처럼 노동의 양을 높이는 게 아니라 질을 높여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유연화는 야근 확대, 크런치 모드 확대 정책이라는 점에서 반대한다”고 거듭 경고했다.

◇ 민주당 “노동 유연화 아니라 노동 개악”

노정 간의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추진은 장시간 노동과 과로 사회로의 회귀로 귀결될 것”이라며 “대한민국이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4위의 장시간 노동 국가임에도 실노동시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대책 없이 재계의 일부 목소리를 과대 반영하여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권인숙 의원 또한 고용노동부의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에 대해 “대통령 공약이나 인수위원회 시기에도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이 그야말로 기습 발표된 것”이라며 “연장근로시간의 정산 단위를 현행 주단위에서 월단위로 확대하게 되면, 1주일당 최대 92시간까지도 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실질 노동시간을 크게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 유연화’보다도 ‘노동 개악’에 가까운 내용이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세계 각국에서 주4일제 도입을 실험하는 동안, 윤석열 정부는 주 52시간도 모자라 노동시간을 더욱 늘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야당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국회는 아직 상임위조차 정하지 못한 채 공전 중이다. 따라서에 민주당에서 정부의 노동 정책을 막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시점에서 노정 경색 국면이 길어지면 노동계가 예고한 대정부 시위 확산이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IT업계 개발자 A씨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미 탄력근로제 등 교묘한 사각지대를 이용해 주 52시간 이상의 근무를 하고 있다”며 “그래도 큰 회사들은 사정이 낫지만 벤처‧스타트업이 많은 업계 특성상 작은 회사 개발자들은 이번 노동 유연화가 적용됐을 때, 입사해서 밤샘 근무만 하다가 근무 시간을 줄여야 하는 시기에는 권고사직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단순 괴담은 아닐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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