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자료 제출 미비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자료 제출 미비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여야의 자료제출 공방으로 개의 40분만에 파행됐다 간신히 재개됐다. 한 후보자가 사과하고 자료 제출을 약속하면서 이날 청문회 파행은 일단락됐지만, 국회에서는 이 같은 자료제출 미비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일 오전 10시 인사청문회에서 한 후보자의 모두발언 전에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의사진행발언이 진행됐다.

박 의원은 “후보자는 개인정보라는 사유로 검증에 필요한 자료들을 진짜 많이 제출을 안 했다”며 “인사청문회법 112조에 따르면 위원회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자료제출요구를 할 수 있게 돼 있고 후보자는 답변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는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나 업무상 알게 된 타인의 비밀 그리고 친족이 형사사건에 관련된 경우에만 한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더 심각한 것은 후보자가 자료제출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 저희가 교육부에 자료제출 요청을 했다. 후보자의 법학전문대학원 협의회장 재임시 업무추진비 내역을 달라고 했는데 후보자가 일시, 제출처, 금액 지출용도 등 요구한 것을 무시하고 총 건수, 총액만 주라고 했다”며 “청문회 받으러 온 사람이 맞느냐”고 질타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성실하게 자료제출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시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굉장한 유감을 표한다”며 “후보자는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기본자료를 개인정보를 핑계로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데, 자녀의 입시나 부동산 등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고위공직자 검증대상이다”고 지적했다.

한 후보자에 대한 의혹 중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위장전입 문제와 관련해 강 의원은 “동작구 위장전입이 불법이라는 걸 이미 스스로 인정했다. 이 사안에 대해선 자료제출을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나”며 “청문회를 얼마나 우습게 알고 있으면 이렇게까지 안하무인 태도냐”고 질타했다.

이 외에도 소병철 의원, 이용우 의원 등이 합세해 “개인정보보호 등의 이유로 자료제출하지 않는 건 인사청문회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질타하자 백혜련 정무위 위원장은 “후보자가 국회 상임위 위원들의 권한과 직접 연결된 자료제출 요청인데 이것을 직접 줄을 그어서 총액을 지우고 후보자가 다시 썼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국회의 권한을 이렇게 능멸할 수 있는지 저도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문제를 정리했다.

반면 여당에서는 민주당의 자료제출이 과하다며 한 후보자를 비호했다. 윤한홍 국민의힘 정무위 간사는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 때 여러분하고 우리하고 위치가 바뀐 것”이라며 “우리가 야당 시절에 똑같이 공방을 벌였다. 왜 이런 것이겠나.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되는 걸 다 달라고 해서 그렇다. 만약 굳이 이걸 갖고 논쟁을 계속 하고 싶다면 간사들 간 자료문제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정회를 제안했다. 이에 민주당 김종민 간사도 간사 간 협의에 동의하면서 약 40분 간의 정회 끝에 청문회가 속개됐다.

청문회 파행에 한 후보자는 “굉장히 많은 자료 요청이 있었는데 직원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다”며 “사과드린다. 정보는 모두 제공하겠다”고 사과했다.

◇ 청문회마다 반복되는 자료제출 문제

사실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자료제출 문제로 파행된 것은 그동안 여러번 있었다. 윤석열 정부 내각 인사청문회만 돌아봐도 그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낙마한 정호영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경북대 의대에 재학 중인 아들의 병역 관련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자료 공개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민주당에서는 정 후보자의 아들 정씨가 첫 병역판정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5년 후 재검을 거쳐 사회복무요원(4급 보충역) 소집 대상으로 판정이 달라진 것에 의문을 표해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또한 자녀들의 입시 의혹에 대한 공방에서도 고민정 의원이 “17·18년도 입학 원서 중 17년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서 아빠 찬스가 있는지 검증할 수가 없다”며 “자녀가 경북대 의대에 2명이 편입했는데 아빠 찬스, 지인 찬스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심사위원 인적사항을 요청했는데 거절했다”고 자료 제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의원은 당시 정 후보자에 대해 “거의 요청한 자료의 70%를 ‘개인 정보의 사유로 제출할 수 없음’이라는 답변을 달았다. 그 자료만 책 한권이다. 그 책을 보고 있을 때마다 화가 난다. 이러면 장관을 하지 말고 병원에서 훌륭한 의사로 남아야 한다”며 “자료는 협조 안 하면서 문제는 없다. 위법하지 않다. 도덕적, 윤리적 흠결 없다고 반복만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정 후보자에 이어 낙마한 김승희 후보자도 자료 제출을 거부해 문제가 됐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김 후보자가 지명 된 후 청문회를 위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대부분 아무런 자료를 받지 못했다. 한 의원실은 관련 내용이 보도가 된 후 10 건의 요청 중 두 건의 자료를 제출받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장관 후보자는 자료를 축소 제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신현영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최근 10년간 후보자가 재직하던 법무법인 클라스의 소송 현황은 2건에 그쳤지만, 직접 법원도서관에 검색해 확인한 소송내역에서는 소송 종결 사건만 16건으로 나타났다.

신 의원은 이를 복지부가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자료 제출을 막거나, 축소 제출하고 있다고 보고 “복지부 공무원들이 김승희 후보자의 이해충돌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산하기관의 자료 제출을 막고 있다면 이는 직권남용 및 업무방해 혐의로 중대한 범죄 행위”라고 우려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또한 후보자 시절 청문회에서 불성실한 자료 제출로 질타받으며 ‘고발’ 가능성까지 거론된 적 있다. 박상혁 의원은 “(도지사로 재임한) 2014∼2021년 현금으로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정황이 발견되는데 50만 원 이상 집행된 현금 지급 건에 대해 증빙서류가 전혀 도착하지 않고 있다”고 제출을 요구했다. 국토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조응천 의원은 “오늘 오전까지 자료 제출이 제대로 안 된다면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위원회 의결로 국토교통부에는 경고하고 원희룡 후보자와 인사청문TF 모두 형사고발 하겠다”고 경고했다.

한덕수 총리 또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부인의 그림 판매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지만, 부인의 그림판매 내역은 물론 세금납부 내역도 밝히지 않았다. 당시 한 총리는 전업주부인 배우자 재산이 10년 새 12억원이나 증가한 것이 ‘한덕수 프리미엄’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집사람은 제가 공직에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전시회를 하지 않았다. 이런 오해를 받을까 봐 안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관련 자료는 제출하지 않았다. 

◇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발의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자 국회는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의겸 의원이 발의한 해당 개정안은 대통령이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안을 송부할 때 함께 제출하도록 정하고 있는 증빙서류의 항목에 부동산 거래 및 주식매매 사항 등을 추가하고, 세금 납부와 부동산 거래, 주식매매 내역 등은 10년 치 자료를 제출하도록 의무화 했다. 아울러 후보자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에 대한 증빙서류도 함께 제출하도록 명시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강화함으로써 인사청문회를 내실 있게 실시하도록 법을 현실화한 것”이라며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인사청문회 때마다 자료 제출을 놓고 여당과 야당 또는 후보자와 청문위원 사이에 벌어지는 소모적인 논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인사청문회법은 △직업·학력·경력에 관한 사항 △병역신고사항 △재산신고사항 △5년간 소득세·재산세·종합토지세 납부 및 체납사항 △범죄경력사항 등 5가지에 관한 증빙서류를 첨부하도록 하고 있다.

김 의원은 “현행 증빙서류는 기본적인 사항에 불과해 청문회에서 실질적인 검증을 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며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검증에 꼭 필요한 청문위원들의 자료요구에 공직후보자와 관련 기관들이 불성실하게 제출하거나 아예 제출을 거부하는 사례가 갈수록 빈번해져 불필요한 정쟁으로 비화되고 인사청문회가 부실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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