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10만㎢ 남짓의 국토에서 극명하게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람들이 너무 밀집한데 따른 각종 도시문제가 넘쳐난다. 반면 지방은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따른 농촌문제가 심각하다. 모두 해결이 쉽지 않은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청년들의 귀농이다. 하지만 이 역시 농사는 물론, 여러 사람 사는 문제와 얽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사위크>는 청년 귀농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기, 그 험로를 걷고 있는 용감한 90년대생 동갑내기 부부의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편집자주]

본격적인 귀농 준비에 착수한 우리는 서울양재 aT귀농귀촌센터부터 찾아갔다. /박우주
본격적인 귀농 준비에 착수한 우리는 서울양재 aT귀농귀촌센터부터 찾아갔다. /박우주

시사위크|청양=박우주  2018년 1월 10일 퇴사를 하고 다음 날 서울양재 aT귀농귀촌센터를 찾아갔다. 농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가장 큰 센터를 가면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상담은 시작되고 어떤 작물이 좋을지 어디로 가면 좋을지 이것저것 물어봤다.

답변은 “말해 줄 수 없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그 상담직원분이 어떤 작물을 할지, 어디로 갈지 말해줘서 실패한다? 그럼 원인을 그쪽으로 돌릴 것이다. 귀농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결정해서 실천하는 사업과 같은 것이다. 

그 뒤엔 전문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 귀농 강의를 들으러 갔다. 전라북도 귀농귀촌 교육이었고, 위치는 서울 서초구 방배역 바로 앞이었다. 많은 것을 깨닫고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다른 교육도 들었다. 그런데 교육을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도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로 바뀌어갔다.

본격적인 귀농 준비에 나선 우리는 처음엔 귀농교육을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이내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문제에 부딪혔다. /박우주
본격적인 귀농 준비에 나선 우리는 처음엔 귀농교육을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이내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문제에 부딪혔다. /박우주

귀농인이 귀농교육을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농업정책 선정에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들었다. 실제로 귀농인은 귀농교육을 100시간 정도 들어야 여러 사업에 응모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우리도 오프라인 교육은 물론 온라인 교육까지 병행했다. 하지만 교육을 들으면 들을수록 큰 문제가 생겼다. 귀농교육의 강사 분들은 물론 대단하신 분들이지만 대부분 연세가 있으셨고, 모아둔 자본으로 자신의 연고지에 가서 성공하신 사례였다. 청년 강사(청년이라지만 40대가 대부분이다)가 교육을 해도 농부인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아 성공한 사례였다. 또 대부분 대농이거나 자본을 많이 투자한 사례였다. 계단식으로 성장한 사례가 없었다. 우리로선 몸에 와 닿지 않는 교육이었다.

우리는 네 가지가 없었다. 먼저 자본이다. 아무리 직장생활을 했다지만 20대였던 우리가 돈을 모으면 얼마나 모았겠는가.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러지 않았다.

연고도 없었다. 내 고향은 인천, 아내의 고향은 경기도 고양시다. 물론 인천이나 고양시 근처로 귀농할 수도 있겠지만 땅값 등을 생각하면 불가능했다. 지인 역시 없었다. 주변에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 그래서 조금이나마 정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이 정말이지 단 한 명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농사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했다. 우리는 흙을 만지며 자라지 않았고, 퇴비가 뭔지 비료가 뭔지 알지 못했다.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심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단 우리에게 딱 하나는 있었다. 바로 젊음이다. 무언가에 도전해 실패하더라도 젊었다. 그러니 성공하신 분들의 교육을 들으면서 감동할 시간에 우리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경험하며 배우고 익히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위험한 생각이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생각을 갖고 직접 지역을 찾아가 그 지역 귀농귀촌센터에서 상담을 받기로 했다.

사실 그때 우리는 시간이 촉박했다. 농업은 몰라도 이 노래는 알았다.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 하네~”
–남진 ‘님과 함께’

봄이 되기 전에 뭐라도 준비해야 농업에 부딪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둘러 검색을 시작했다. 지역을 정하기 위한 기준도 이렇게 세웠다. 

  • 귀농인을 환영해 줄만한 지역

    - 그런 지역은 뭔가 보조사업이라던지 귀농인 혜택 등 기회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 수도권과 가까운 곳

    - 가족과 큰 부담 없이 왕래가 가능한 곳.

  • 특산물이 뚜렸한 곳

    -특산물이 뚜렷하다면 교육, 선생님들도 많을것이고 판로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 기준에 맞는 곳은 우선 충남이었다. 충남 중에서도 청양군이 인구가 가장 적고, 특산물이 뚜렷하고, 수도권과의 거리도 2시간 안쪽이었다. 곧장 청양으로 내려가 상담을 받았는데, 너무나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셨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지만 진심어린 상담으로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렇게 상담을 받고 다시 올라가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곳도 찾아볼까?” 
“아니, 그냥 청양 한 번 더 상담 받아보자.”

우리가 세운 귀농지역 조건에 가장 부합한 곳은 충남 청양이었다. /박우주
우리가 세운 귀농지역 조건에 가장 부합한 곳은 충남 청양이었다. /박우주

그렇게 집에 돌아와 검색을 통해 청양 귀농에 대해 더 알아봤다. 알아볼수록 매력이 있었다. 검색을 하다 우리보다 먼저 청양에 귀농한 분들도 알게 됐다. 블로그를 통해 그분들 연락처를 알게 돼 연락을 드렸다. 

“귀농을 하려고 하는데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요. 질문 좀 드려도 될까요?”

질문은 너무 원초적이었다. 

“전기세는 얼마 나와요? 물세는 얼마 나와요? 집과 땅은 어떻게 구하셨어요? 임대료는 얼마에요? 얼마 정도 수익이 나오죠? 많이 춥나요? 텃세 있나요?”

귀농에 대해 궁금한 질문들을 쏟아낸 우리에게 그분들은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셨다. 이런 원초적인 상담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번 청양에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됐고, 이때 마음속에서는 거의 지역을 확정했다.

그리고 청양에 다시 방문했다. 귀농의 필수조건은 사람이 살 집과 농사를 지을 땅이다. 지역이 아무리 마음에 들고 조건에 맞아도 집과 땅이 없다면 귀농을 할 수가 없다. 귀농센터 상담하시는 분에게 구할 수 있는 집과 땅을 알려줄 수 있을지 물어보니 당시엔 빈집명단이란 게 있었고(지금은 없다고 한다), 그걸 A4용지에 적어서 주셨다. 

이후 우리는 종이에 적힌 6~7곳을 따라 청양을 돌아다녔다. 충격 그 자체였다.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우리는 빈집이 왜 빈집인지 잘 알 수 있었다. 너무나 환경이 열악했다. 빈집이라기보다는 폐가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우리가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나마 살 수 있을만한 빈집에는 농사지을 땅이 없었다. 인천과 청양을 오가며 빈집명단을 다 돌았지만 실패했다.

그렇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의 귀농은 시작부터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귀농교육은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았고, 몸으로 부딪히기 위해 선택한 곳에선 집과 땅을 구하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봄이 되기 전에 집과 땅을 구해야 했다.

 

박우주·유지현 부부

 

-1990년생 동갑내기

-2018년 서울생활을 접고 결혼과 동시에 청양군으로 귀농

-현재 고추와 구기자를 재배하며 ‘참동애농원’ 운영 중

blog.naver.com/foreveru2u

-유튜브 청양농부참동TV 운영 중 (구독자수 4만)

www.youtube.com/channel/UCx2DtLtS29H4t_FvhAa-v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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