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편집자 주]

대한간호협회와 전국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2022 국제 간호사의 날 결의대회에서 간호법 제정,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수 기준 마련, 불법진료(의료) 근절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대한간호협회와 전국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2022 국제 간호사의 날 결의대회에서 간호법 제정,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수 기준 마련, 불법진료(의료) 근절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지난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간호법(대안)은 6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의사단체 등을 중심으로 간호법이 현행 의료 체계에 혼돈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는 상황에서 국회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인 탓이다.

◇ ‘고령화 사회’ 대응해야

간호법 제정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은 궁극적으로 간호법이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법이라는 데 힘을 싣고 있다. 2026년에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의료 수요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전문적인 간호사 양성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문숙 대한간호협회 부회장은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다른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초고령 사회가 빨리 된 나라임에도 선제적으로 독립된 간호법 외에도 다른 간호 법령을 운영하고 있다”며 “법이 제정이 되지 않으면 고령 사회에 필요한 간호 수요나 돌봄 수요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고령화 사회와 맞물려 의료 환경이 ‘예방’과 ‘돌봄’ 등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 역시 독립된 간호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맞춰 간호의 영역이 충분히 재고돼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간호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간호법의 필요성을 높이는 또 다른 이유다. 고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만성질환을 앓는 이들에 대한 ′가정 간호′ 필요성 등이 대두되고 있지만, 현실이 이를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주성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대표활동가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초고령 사회를 맞이해서 노인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질병 구조도 만성질환으로 전환이 되고 있다”며 “독거노인이 병원에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간호사라도 보내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게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역사회에서 간호사가 국민들을 돌볼 수 있는 법의 근간을 만들어내는 간호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간호 정책 마련’ 토대

이러한 토대 위에서 간호 인력의 수급 및 체계적 관리는 필수불가결한 문제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상에는 간호 업무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다 보니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전무한 실정이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선 간호사의 처우에 대한 문제도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사실상 일할 환경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간호사의 ‘전문성’도 기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 5월 발표한 정기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1~5년 차 간호사가 42%인데 반해 6~10년 차는 28.6%, 11~20년차는 2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강도 노동에 따른 간호 인력의 이탈이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간호협회 등은 간호법 제정이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첫발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 부회장은 “의료법은 의료기관에서 의료 행위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법률이 주가 된다”며 “간호사의 근무 환경이나 처우 같은 것을 개선해 지역사회나 의료기관 내에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게 간호사를 양성할 수 있는 체제나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활동가도 “간호법은 기관마다 중앙정부가 간호 정책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돼 있다”며 “정책을 지자체와 논의해 지자체별로 간호인력 양성과 배치 등을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간호법을 통해 간호 정책이 국가의 의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회 복지위를 통과한 간호법이 나름대로 간호사의 근로 환경 개선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현재 법사위에 계류된 간호법(대안) 제28조 ‘간호인력 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역별‧기관별 간호 인력의 근무 여건 및 복리후생 등에 관한 실태를 조사하고, 그에 따른 대책 등을 마련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조 부회장은 “처우 개선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큰 틀에서 많이 들어와 있다”고 평가했다.

근거자료 및 출처
국회의안정보시스템 - 간호법안(대안)
2022.05.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2022 정기 실태조사 -국제 간호의 날, 대한민국 간호 현장 실태와 주요 요구
2022.05.12.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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