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오전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2 개정 사회 교과 교육과정을 비판하고 있다. / 강득구 의원실 제공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오전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2 개정 사회 교과 교육과정을 비판하고 있다. / 강득구 의원실 제공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교육부가 개정 교육과정에서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용어를 삭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여당에서는 문재인 정부부터 이어온 정책의 일환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야권에서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반발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4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2022 개정 사회 교과 교육과정에서 사라진 ‘5.18 민주화운동’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확정 발표 된 2022 개정 초·중등학교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초·중·고 사회과 교육과정 어디에도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2 개정 중학교 사회과 교육과정 성취기준에서 ‘민주주의 발전 과정은 국내외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라고만 서술되어 있고, 성취기준 적용 시 고려사항에는 4.19혁명과 6월 민주항쟁만 명시돼 있다. 통상적으로 함께 적시되던 5.18 민주화운동이 이번 교과서에는 빠진 것이다.

강득구 의원은 “국민과 함께 한다던 새 교육과정이 정권 입맛에 맞게 급격히 뒤집혔다. 민주주의가 훼손됐다”고 질타했고, 민형배 의원도 “5월 광주를 부정하는 만행이자 민주주의의 뒷걸음질”이라고 비판했다.

◇ '문재인 정부부터 시작된 개정' 해명

교육부는 "의도적인 삭제가 아니며, 모든 교과에서 ‘학습 요소’ 항목이 생략됨에 따라 역사 교육과정에서도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 등의 서술이 최소화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실도 교육부의 해명과 발을 맞추며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부터 시작된 개정 작업임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4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정부에서 5.18 민주화 운동이 삭제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12월에 구성되어 역사과 교육과정을 개발한 정책연구진도 이러한 취지에서 구체적 역사적 사건 서술을 축소했다. 그래서 연구진이 교육부에 제출한 최종 시안부터 5.18 민주화 운동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며 “역사적 사건명은 생략했지만, 현행 교육과정과 마찬가지로 4·19 혁명에서 6월 민주항쟁까지 민주화 운동의 과정을 학습할 수 있도록 관련 성취기준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거듭 “다시 한번 정리해 드리자면 5.18 민주화운동을 윤석열 정부가 삭제한 것이 아니다”며 “이미 2021년도부터 개별 역사 사건 서술을 축소하면서 그때부터 없었다. 이것을 민주당이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문재인 정부의 교육과정 개발 기조에 따라 생략된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지난 문재인 정부 때 개발을 시작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대강화, 간략화 기조에 따라 ‘5.18 민주화운동’이 포함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오월 정신을 존중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정략적으로 사실관계를 호도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미 지난 정권에서 결정된 사항이지만, 정부는 교과서 개발 단계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서술될 수 있도록 관련 준거 마련 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역사와 관련된 그 어떤 편향과 왜곡도 발생하지 않도록 바로잡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정부‧여당이 또 전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맞받았다. 윤석열 정부가 2년차에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전 정부 타령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오경 민주당 대변인은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나오는 전 정부 타령, 이젠 지긋지긋할 정도”라고 날을 세웠다.

임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의 연구진 시안을 교육부 실무자들과 최종시안을 작성해 완성한 것은 윤석열 정부다. 연구진이 마련한 교육과정 시안이 처음 공개된 시점은 작년 8월 30일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이고, 확정 발표는 12월 22일”이라며 “부끄러운 줄 안다면 거짓말 하지 말고 입을 다물어라. 불리하면 전 정부에 돌리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책임 회피도 정도껏 하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2주기 기념식에 참석해 분향을 하고 있다. / 광주전남사진기자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2주기 기념식에 참석해 분향을 하고 있다. / 광주전남사진기자회

◇ 윤석열 정부 진정성 의심까지 번져

야권에서는 이미 윤석열 정부의 오월 정신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여권의 해명은 ‘책임 떠넘기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시사위크>에 “지난 정부에서 개정교육과정의 간략화가 시작됐어도, 모든 교과서에서 5.18을 삭제하고 확정 발표한 것은 이번 정부”라며 “이렇게 문제제기 되지 않았으면 이대로 교과서가 편찬됐다는 것 아니냐. 전 정부와 연구진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했다.

정의당에서도 5.18만을 지우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이재랑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교육부는 의도를 갖고 삭제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기존 교육 과정에서는 7번이나 등장했던 5.18 민주화운동이 이번 교육 과정에서만 콕 집어서 빠져 있다”며 “정말 의도가 없었다면 그 자체로 무지한 역사의식의 소산”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도 말했다”며 “그런데 교육 과정에서 5.18을 지운다는 것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지금껏 윤석열 대통령이 밝혀왔던 5.18에 대한 입장의 진정성까지 의심받을 일이다. 교육 과정에서도 지워지는데 헌법 전문 수록은 언감생심 아니냐”고 윤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을 요구했다.

김홍걸 민주당 의원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하고 고(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철학을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극우적 발언을 하던 후보가 그 다음날 그런 이야기를 하니 본심이 무엇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도 국민들께서 ‘국민의힘과 윤 후보가 구태를 벗어났구나’해서 표를 주신 것 같은데 또 기만당한 것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제는 일본에게 역사를 왜곡 하지 말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상황이 됐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소수의 열성적인 극우 지지자에게 취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폭주를 하고 있다. 이제 그 폭주를 멈추시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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