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을 향해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 그래픽=권정두 기자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을 향해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 그래픽=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태광산업을 둘러싸고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들어 부쩍 존재감이 커진 주주행동주의 펀드의 공세가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너리스크가 끊이지 않았던 데다, 지난해 주주가치 훼손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던 태광산업이 직면한 주주행동주의를 통해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주목된다.

◇ 본격 행보 나선 트러스톤… ‘위법’ 지적에 주주제안까지

주주행동주의를 전개 중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하 트러스톤)은 최근 태광산업을 향해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다.

먼저, 지난 8일엔 태광산업의 이사회 구성에 상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상법상 분리선출제도를 적용해 선임할 수 있는 감사위원은 1명인데, 2명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분리선출제도는 2020년 주주권익 보호 및 제고를 위해 도입된 제도로, 표결 시 대주주의 지분을 3%까지만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감사위원 중 1명은 선임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반영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태광산업은 2021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분리선출을 통해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을 선임한데 이어 지난해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또 다른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을 분리선출로 선임했다. 정관에 이와 관련된 근거가 없음에도 말이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이 이처럼 2명의 감사위원을 분리선출로 선임해둔 목적이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시키는데 있다고 지적한다. 2021년 선임된 감사위원의 임기 만료가 다가옴에 따라 그 후임을 분리선출로 선임할 것을 요구했으나, 태광산업 측이 이미 1명의 분리선출 감사위원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트러스톤 측은 “태광산업이 지난해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한 것은 올해 소수주주의 감사위원 선임 제안을 막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해석된다”며 “대표적인 소수주주 보호제도로 평가받는 분리선출제도를 악용해온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행동주의가 예고되자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는 게 트러스톤 측 시각이다. 트러스톤은 2021년 6월 태광산업 지분이 5%를 넘기면서 이를 처음으로 공시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트러스톤은 애초에 2명의 감사위원을 분리선출로 선임한 것부터 위법이라며, 법무부로부터 이 같은 내용의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태광산업 측은 “위법 소지가 있다는 지적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트러스톤 측의 감사위원 분리선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위법 소지 지적이 나온 가운데 1명의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에 일단은 위법 소지부터 해소하겠다는 차원”이라며 “향후 분리선출 감사위원을 1명으로 둘지 2명으로 둘지는 정관 변경 등 명확한 조치를 취한 뒤에 그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트러스톤 측은 지난해 분리선출로 선임된 감사위원의 경우 법무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자격을 상실한 만큼,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분리선출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다. 트러스톤은 9일 주주서한을 통해 주주가치 제고 필요성을 제기하는 한편, 주주제안으로 감사위원 후보자를 추천하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트러스톤은 주주서한에서 먼저 태광산업의 심각한 저평가 상태를 조목조목 꼬집었다. 대표적으로 제시한 것이 순자산 대비 주주가치 나타내는 지표인 PBR(주가순자산비율)이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의 PBR이 지난해 3분기 기준 0.17배에 그치고 있으며, 이는 798개 코스피 상장사 중 781위, 64개 코스피 상장 화학기업 중 63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3조원에 육박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 중임에도 시가총액은 8,000억원에 불과한 점, 양호한 실적에도 평균배당성향이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점 등도 강조했다.

태광산업이 지니고 있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트러스톤은 이사회 독립성 확보가 시급하며, 배당성향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굴지의 투자기관에서 경험을 쌓은 투자 및 재무전문가라며 조인식 전 국민연금 CIO 직무대리를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후보로 추천했다.

태광산업을 향한 트러스톤의 이러한 행보는 이미 예견됐던 바다. 2021년 6월 태광산업 지분 보유 사실을 처음 공시했던 트러스톤은 지난해 12월 보유목적을 일반투자에서 경영권 참여로 변경한 바 있다. 당시 태광산업은 흥국생명에 대한 자금 지원 논란으로 거센 파문을 일으킨 상태였다. 이에 트러스톤은 주주대표소송을 추진하겠다고 경고하는 등 반발했고, 결국 태광산업은 이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국내에서는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 등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태광산업은 물론 BYC를 향해서도 주주행동을 전개 중인 트러스톤 역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대표주자 중 하나다. 반면, 태광산업은 오랜 세월 ‘오너리스크’가 끊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트러스톤 지적대로 주주가치 저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태광그룹이 지난해 12월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그 중 태광산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본격화된 트러스톤의 공세가 태광산업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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