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도 연세대학교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전공 겸임교수
한문도 연세대학교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전공 겸임교수

”조기 소진 전에 받으세요… 특례보금자리론 신청 50일 만에 56.3%소진“ 

“벌써 절반도 더 나갔다… 특례보금자리론 50일 만에 22.3조 신청” 

정부가 서민의 주거 이자 부담을 낮추겠다며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언론 보도들이 주기적으로 넘쳐나고 있다. 지난 3월 21일 보도된 위 제목의 기사들은 마치 ”이렇게 빨리 소진되고 있으니 서둘러서 대출을 받으라“는 뉘앙스를 풍기기에 충분하다. ”빚내서 집사라“가 연상되는 표현의 언론보도 홍수 속에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로서 미안함과 씁쓸한 마음을 느끼는 사람이 필자만일까? 

2022년 6월 16일 미국 금융통화정책의 수장인 제롬 파월 연방준비은행 의장은 미국의 금리인상이 본격화될 것임을 시사했다. 당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8년 만에 금리를 0.75%P(퍼센트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면서 고금리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이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집을 알아보거나 사려는 사람, 특히 젊은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라.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모기지금리가 다시 낮아지는 때를 기다려라.” 

한마디로 앞으로 금리가 인상되니 당분간 집을 사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미국은 4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강행해 지난해 5월 1%이던 기준금리가 11월에는 4.0%로 올랐다. 6개월 만에 4배가 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3월 베이비 스텝을 거쳐 현재 기준금리는 5.0%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단기간에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유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미국 주택가격은 하락 일로를 걷고 있는 중이다. 파월의 경고를 받아들인 미국의 청년들은 주택가격이 낮아진 가운데 향후 금리 인하 시 낮은 금리로 주택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진정한 국가, 정부의 역할을 파월 연준 의장이 보여준 것이다.

다시 우리나라를 돌아보자. 정부는 2022년 3분기부터 ‘가계대출 규제 정상화방안’이라는 해괴한 제목을 달고 주택가격이 정상화돼가는 하락조정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최대 80%로, 대출한도는 6억원으로 확대해줬다. 또한 연소득 연봉의 신용대출한도 제한을 풀어주면서 은행별로 최고 연소득의 2.7배까지 신용대출을 확대하는 정책도 시행했다. 

IMF와 OECD가 선진국 중 가계부채 위험국가로 한국을 지목하며 대출 규제 및 관리 정책을 시행하라고 조언 및 경고를 했음에도, 우리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정상화’라는 알량한 단어를 앞세워 전국민의 부채 증가를 조장하는 상반된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이어 청년과 무주택서민에게 “대출 더 해줄 테니까 집을 더 사라”고 하는 특례보금자리론 주택금융정책까지 정부의 정책행보는 마치 금융기관 영업부장과 다를 바 없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특히 신용점수가 최하위인 271점(10등급) 이상이면 대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을 연상시킨다.

또한 특례보금자리론 정책은 유주택자의 대환대출과 함께 다주택자의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을 동시에 끼워 넣었다는 점에서 공정과 상식을 벗어나 보인다. 정부의 진정성과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다다주택자와 갭투자자, 갭투기자, 건설사를 위한 ‘집값을 떠받치는 정책’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이 같은 정부의 주택관련 대출정책과 일부 언론들의 보도 행보를 살펴보면 과연 이게 정상적인 정책이고 정상적인 언론인지, 국민을 위한 정부이고 언론인지, 아니면 투기꾼과 은행 등 등 금융기관을 위한 정부와 언론인지 헷갈릴 정도다.

방언하고 언론보도대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특례보금자리론’의 실체에 대해 살펴보자.

특례보금자리론은 올해 1월 30일 출시됐고, 일주일(7영업일) 뒤인 2월 7일 ‘특례보금자리론 7일 만에 신청금액 10조원 돌파’라는 다소 자극적인 언론보도가 있었다. 핵심은 출시 7일 만에 연간 공급목표액 39조6,000억원의 26.5%인 10조5,000억원이 신청됐다는 것이다. 선풍적인 인기를 나타내는 동향을 보도하며 잠재수요자의 대출을 통한 주택구매심리를 유도하는 기사들이 넘쳐났다. 

2월 17일이 되자 두 번째 관련보도가 나왔다. ‘출시 20일 만에 14조5,000억원 돌파’라는 제하의 기사들로  기사의 방향성과 의미는 이전 보도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30여일이 경과한 3월 21일 기사제목은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7주 만에 22조3,000억 흥행 56.3% 소진’이었다. 동시에 같은 내용의 보도가 넘쳐나는 하루였다. 마치 이제 남은 금액이 없어 서둘러야 한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과연 이러한 기사들의 보도행태엔 진실성이 얼마나 담보돼있는지 따져 보았다.

지금까지 소진된 금액을 7일, 즉 일주일 단위로 정리해보면 첫 일주일은 10조원이 소진됐다. 그 뒤  2월 7일~2월 17일까지 소진된 금액을 일할 계산 후 7일 단위로 환산해보면 2조8,000억원이 소진됐음을 알 수 있다. 2월 18일~3월 20일까지 기간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한 결과 일주일에 1조9,000억원이 소진된 것으로 파악된다. 

첫 일주일에 10조원이 소진됐으니, 진짜 선풍적 인기가 이어졌다면 총 예산인 39조6,000억원은 4주 만인 3월 초에 모두 소진됐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시간이 갈수록 특례보금자리론의 인기가 시들시들해지고 식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택가격 호가가 다시 올라가면서 특례보금자리론 소진속도가 급격하게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 진정한 팩트다. 

이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는 기사들로 인해 생업에 바쁜 무주택 서민과 청년들의 ‘제2의 영끌’을 양산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상당히 우려스럽다. 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또 다른 형태의 빚을 내서 집을 사야하는지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충분히 가격이 정상화 된 후 이러한 정책이 펼쳐졌다면 시장참여자 모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장상황과 보도들을 보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절대 국민을 위한 착한정책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국민들에게 ”지금 대출을 받아서 빨리 사야 되나?“라는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정책과 이를 부추기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정의롭고 진실된 것인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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