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에스터 감독이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돌아왔다. / 싸이더스
아리 에스터 감독이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돌아왔다. / 싸이더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오늘(5일) 개봉한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하는 보(호아킨 피닉스 분)의 기억과 환상, 현실이 뒤섞인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 기이한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할리우드 제작사 A24가 역대 최고 제작비를 투입한 프로젝트로, 세계적인 연기파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불안과 편집증에 시달리면서 엄마에게 순종적인 아들 보로 분해 압도적인 열연을 펼친다. 

연출은 영화 ‘유전’ ‘미드소마’ 아리 에스터 감독이 맡았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첫 장편 영화 ‘유전’으로 현대 호러 영화계의 괴물 감독의 등장을 알린 뒤, 두 번째 작품 ‘미드소마’로 ‘유전’을 뛰어넘는 공포 걸작이라는 극찬과 함께 ‘현대 호러 마스터’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실력파다. 현대 호러의 흐름을 바꾼 뛰어난 작품으로 전 세계 영화 팬을 매료했다.  

세 번째 장편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더욱 견고하고 새롭게 확장된 아리 에스터 감독의 세계관을 마주할 수 있다. 초현실적이고 아트적인 세계관 안에서 공포와 유머, 그리고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부르는 다소 난해하고 복잡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깊은 곳엔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감성이 짙게 녹아있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아리 에스터 감독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작품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과 보편성, 두 가지를 모두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소개하며 “마음을 열고 봐야 영화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당부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확장된 세계관을 마주할 수 있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 / 싸이더스
아리 에스터 감독의 확장된 세계관을 마주할 수 있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 / 싸이더스

-영화를 만들 때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한다고. 이번 영화도 그런가. 어떤 경험이나 기억에서 출발했나. 또 이를 어떻게 보편적으로 녹여내고자 했나.   

“여행 계획을 세웠던 경험에서 출발했다. 개인적인 경험, 개인의 변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이 영화에는 다양한 전형이 나온다. 보와 엄마의 관계라든가, 보와 그의 아들 같은. 그런 전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보편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개인적인 경험과 보편성을 다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가지고 보편성을 반영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단편 ‘보(Beau)’와의 연관성은 얼마나 있나.  

“크게 있진 않다. 장편영화를 만드는 데 최초 아이디어를 제공한 작품이 단편 ‘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단편 ‘보’의 리메이크나 긴 버전은 아니다.”

-여러 형태의 모성이 나오는데, 어떤 의미를 전하고 싶었나. 

“한 가지로 정의하기엔 어려울 것 같다.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는 굉장히 강력하고 친밀한 유대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항상 좋기만 할 수 없다.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에 집중한 것과 물을 부정적인 요소로 사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선 죄책감이라는 부분도 한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죄책감이 있다는 사실 자체일 수도 있고 죄책감 그 자체에 대한 여러 질문이나 의문이 될 수도 있을 거다. 물에 대해서는 영화에서 중요하게 쓰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자세한 의미를 이야기하기보다 관객의 해석에 맡기고 싶다.”  

-엔딩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올 것 같은데.

“결말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미드소마’ 같은 경우는 긍정과 부정의 해석이 반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도를 갖고 엔딩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결말을 긍정적으로 본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꽤 단순한 이야기고 시작점에서 끝난다. 시작과 엔딩이 동일하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화면 배치나 카메라 앵글, 구도 등도 돋보였다. 연출 의도는.

“재밌고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려고 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3시간짜리 영화인데, 시각적 구성을 전략적으로 가져가기보다 스토리텔링 전체에 더 집중을 많이 했다. 영화를 보다가 너무 튀거나 역할 이상으로 눈에 띄면 굉장히 거슬리잖나. 어떻게 하면 장면을 구성할 때 스토리텔링에 기여하면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그러면서 흥미를 유발하고 재밌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다.”

아리 에스터 감독이 호아킨 피닉스(사진)와의 작업에 만족감을 표했다. / 싸이더스
아리 에스터 감독이 호아킨 피닉스(사진)와의 작업에 만족감을 표했다. / 싸이더스

-호아킨 피닉스와의 작업은 어땠나.  

“호아킨 피닉스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좋다고 했다. 질문은 많았으나 흥미를 느꼈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우선 유머 코드가 잘 맞았다. 시나리오를 줄 때 ‘재밌다, 웃기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하고 걱정했다. 이 작품은 코미디기 때문이다. 같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영화가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는데, 호아킨 피닉스가 보자마자 재밌고 웃기다고 공감해 줘서 촬영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고.

“한국 고전 영화들은 대부분 좋아한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나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은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한다. 이창동 감독 작품도 좋아한다. 소설가로도 유명한 분이라 그런지 영화도 문학적이다. 미스터리를 잘 활용한다. 미묘하게 표현하면서도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는 게 인상적이다. 봉준호 감독도 많은 사람이 현존하는 최고 감독이라고 평가하는데, 나도 인정한다. 그의 유머도 좋고 장르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스토리텔링 하는 것도 좋다. ‘살인의 추억’이나 ‘마더’나 하나하나 뛰어난 작품인데 늘 전작을 능가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대단하다. ‘기생충’도 그렇고. 나홍진 감독의 ‘곡성’도 재밌게 봤다. 유머와 공포가 있는 뛰어난 호러 영화라고 생각한다. 홍상수 감독도 좋아하는데 창의적인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내용인 것 같고 비슷하면 재미가 없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확대해 나간다는 게 놀랍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역시 빼어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아리 에스터 감독. / 싸이더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아리 에스터 감독. / 싸이더스

-본인의 작품을 두고 ‘호러 영화’라고 규정되는 것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감독 스스로도 호러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어왔나. 

“나도 호러 영화를 좋아하고 호러 영화를 만들었으니 그렇게 이야기되는 것은 좋다. 다만 ‘유전’은 호러지만 ‘미드소마’는 장르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 스릴러일 수 있고 블랙코미디일 수 있다. 이번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호러가 아니다. 코미디 영화에 가깝다. 커리어를 시작할 때 첫 영화에 따라 장르나 분류가 결정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호러 영화 감독으로 계속 남는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앞으로는 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다. 다음 영화는 서부극이 될 것 같다.”    

-감독의 작품을 보고 나면 자꾸 해석하고 의미를 찾게 된다. 이에 다소 어렵게 느끼는 관객도 있을 듯하다.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픈 마인드로 이야기에 몰입하고 캐릭터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의도하는 바를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다보면 오히려 영화가 어려워질 거다. 계속해서 영화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몰입해야 더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마음을 열고 봐야 누릴 수 있다. 영화를 충분히 느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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