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비정규직 증가와 중대재해간 연결고리 無
늘어난 국내 주택사업 등 여러요인 복합 작용”

지난 18일 이정식 고용부 장관(좌측)이 15개 대형건설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향후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해 엄중조치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 뉴시스
지난 18일 이정식 고용부 장관(좌측)이 15개 대형건설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향후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해 엄중조치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중대재해법(2022년 1월 27일 시행)이 시행된지 1년 7개월여간의 기간이 지났지만 전국 각 건설현장에서의 중대재해 발생 건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실제 올 상반기(1~6월)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은 근로자는 모두 118명인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0명(10.3%↑) 증가한 규모다.

이 중 올 2분기(4~6월)의 경우 사망한 근로자수는 63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1명(21.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중대재해 발생 건수가 계속 증가하자 일각에서는 건설사들이 정규직 근로자보다는 전문성·숙련도가 부족한 비정규직 근로자만 늘렸기 때문이라며 건설사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업계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목소리라고 반박했다. 또한 중대재해의 경우 여러 복합적인 상황이 맞물려 발생하기에 예방·예측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 이정식 고용부 장관 경고 “중대재해 증가 건설사 엄중 조치할 것” 

지난 7월말 국토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건설사고 사망자 63명 중 시공능력평가순위 100대 건설사 현장에서 숨진 근로자는 13명(11개사)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3명 늘어난 수치다.

민간 및 공공공사 현장별로 구분하면 민간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수는 43명으로 전년보다 1명 증가했다. 공공공사 현장에서는 전년보다 10명이나 많은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한 대형건설사에서는 작년 1월말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올해 8월까지 총 8명의 근로자가 건설현장에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결국 해당 대형건설사는 최근 고용노동부로부터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건설현장에서의 중대재해 사고가 잇따르자 급기야 지난 18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5개 대형건설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정부는 중대재해 반복 발생 기업을 상대로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책임소재를 철저히 규명한 뒤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엄중 조치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최근 중대재해 증가 추세를 바라본 시민단체 등은 정부가 중대재해 발생 건설사 대표 등을 상대로 처벌규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건설사들이 비용 등을 이유로 숙련도가 부족한 비정규직 고용을 늘린 결과 중대재해가 급증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위권 건설사들의 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작년 상반기 1만5,451명에서 올 상반기 1만7,234명으로 11.5% 늘어난 것에 비해 동시기 정규직 인력은 3만3,865명에서 3만3,242명으로 소폭 감소한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지난해 중대재해 사고 발생으로 작업중지 처분을 받는 제주 내 한 건설현장 / 뉴시스
지난해 중대재해 사고 발생으로 작업중지 처분을 받는 제주 내 한 건설현장 / 뉴시스

◇ 건설업계 “비정규직 증가 중대재해 발생과 연관성 없어… 여러 복합 요인 작용”

건설사들은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자수 증가에 책임을 느끼면서도 비정규직 증가와 중대재해간 연관성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A건설사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건설업 자체가 타 제조업에 비해 말그대로 인력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 교육‧처벌을 아무리 강화한다고 해도 근로자들의 안전의식을 빠른 시일 내 개선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여기에 명확한 인과관계를 살펴봐야 하겠지만 최근 외국인노동자가 늘어난 것도 중대재해가 늘어난 한 요소인 것 같다. 아무래도 외국인노동자의 경우 가장 위험하고 힘든 작업에 노출돼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비정규직 인원이 늘었다고 중대재해가 급증했다고 보기엔 무리수가 있다”며 “실제 그간 비정규직이었던 안전관리직의 경우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오히려 정규직화가 가장 많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B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중대재해법이 엄벌만능주의에만 치중돼 있어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건설업의 경우 적정 공사비 및 공사기간 보장이 사고예방‧안전관리의 핵심이다. 아울러 도급작업 규정 개선을 통해 발주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실효성을 높여야 건설업 전반에서 안전의식이 제고될 것으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이어 “비정규직 인원 증가와 중대재해간 연관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주택사업‧플랜트사업 등 각각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업계 특성상 사업마다 정규직 채용을 통한 운영은 현실상 불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최근 중대재해 증가가 국내 경기 상황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존재했다.

C건설사 관계자는 “과거 문재인 정부 당시 부동산 활황기를 맞게 되자 건설사 대부분은 해외사업 및 SOC사업 등을 줄이고 국내 주택사업 비중을 늘렸다. 이에 따라 과거 대비 건설현장도 급증했다”며 “결국 단순 통계만으로 볼 때 중대재해 사고 또한 이전보다 늘어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발생한 물류파업, 건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공사비 분쟁 등에 따른 공사기간 축소, 현장 근로자의 고령화, 업무 숙련도가 낮은 외국인근로자 증가, 고령 숙련근로자의 안전불감증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 작용하면서 중대재해는 좀처럼 줄어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비정규직 대다수는 협력업체 직원으로 현장 내 공정별 모든 업무를 건설사가 정규직을 통해 운영한다는 것은 비용적‧운영적 측면에서도 불가능하다”면서 “다만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안전관리직의 경우 오히려 정규직 전환이 크게 늘었다”며 비정규직과 중대재해간 연관성을 부인했다.

중소‧중견건설사의 경우 중대재해 방지를 위해 정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견건설업체인 D건설사 관계자는 “많은 중소‧중견건설사들도 근로자 사고를 막기 위한 중대재해법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며 “허나 대형건설사에 비해 인력난‧자금난 등에 시달리는 중소‧중견건설사는 중대재해법상 의무사항을 준수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뒤이어 “당장 내년 1월 말부터는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게도 확대 적용되는데 이때 가장 큰 애로사항이 안전‧보건 관리 인력 현장 배치”라며 “대형건설사의 경우 안전‧보건 관리 인력을 정규직화해 각 현장에 배치하는 것이 수월하겠지만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중견건설사는 이마저도 버거운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또한 그는 “정부는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해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유예하거나 안전‧보건 관리 인력 배치를 지원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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