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10만㎢ 남짓의 국토에서 극명하게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람들이 너무 밀집한데 따른 각종 도시문제가 넘쳐난다. 반면 지방은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따른 농촌문제가 심각하다. 모두 해결이 쉽지 않은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청년들의 귀농이다. 하지만 이 역시 농사는 물론, 여러 사람 사는 문제와 얽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사위크>는 청년 귀농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기, 그 험로를 걷고 있는 용감한 90년대생 동갑내기 부부의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편집자주]

귀농 이후 맞는 추석 명절은 도시에서 살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청양=박우주
귀농 이후 맞는 추석 명절은 도시에서 살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청양=박우주

시사위크|청양=박우주  내가 귀농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명절을 보낼 수 있었을까? 나는 귀농을 하고 가족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가까워진 거 같다. 그리고 우리 양가 부모님들은 ‘대한민국 1% 사돈’이라 해도 될 정도로 가까워졌다. 오늘은 추석을 맞아 귀농 전과 후 우리의 명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귀농하기 전, 우리의 명절은 지극히 도시적이고 형식적이었다. 오전과 오후로 나눠 양가 부모님 집에 가 식사를 하며 잠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곤 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 좋긴 했지만 특별한 건 없었고, 명절이니까 의무적으로 만나는 것에 가까웠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들이 많아졌고, 예전만큼 명절이라는 의미가 와 닿지도 않는다. 솔직한 내 생각은 명절에 굳이 차도 막히는데 힘들게 왔다갔다할 필요가 있나 싶다. 차라리 생일이나 다른 특별한 날에 만나는 게 더 효율적인 거 같다. 

특히 요즘 명절은 예전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간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하던 때에는 명절이 오랜만에 길게 쉬는 휴가인 만큼 힐링하러 여행을 다녔다. 내가 부모님 나이대가 되면, 명절은 제사를 지내는 일부 집을 빼고 휴가 개념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귀농을 한 뒤 명절의 개념이 도시에서 살 때와 확 달라졌다. 먼저, ‘모처럼 만의 연휴’라는 달콤함이 없어졌다. 우리에게 연휴는 택배를 안 보내는 날, 즉 돈을 못 버는 날이 됐다. 귀농은 자영업이기 때문에 휴일이 길면 별로 좋지 않다. 그렇다고 어디 놀러가자니 연휴엔 차가 많이 막힌다. 우리는 비교적 한적한 평일에 놀러가곤 한다. 

우리는 매년 추석연휴에 양가 부모님들이 찾아오셔서 일손을 거들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 / 청양=박우주
우리는 매년 추석연휴에 양가 부모님들이 찾아오셔서 일손을 거들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 / 청양=박우주

무엇보다 우리는 귀농한 뒤엔 추석에 꼼짝 못한다. 8월부터 12월까진 수확과 농장 정리를 하는 가장 바쁜 시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든 시간을 내면 부모님 댁에 다녀올 수 있지만, 양가 부모님 모두 절대 오지 말라고 하신다. 대신 매년 추석이 되면 양가 부모님이 우리 집으로 오셔서 일도 도와주시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특히 우리 집은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30년 동안 큰집에 가서 제사를 지냈고 어머니가 많은 일을 하셔야 했는데, 이제는 우리 집에 다녀와야 한다는 핑계거리가 생겨 더 좋아하시는 거 같다.

도시에서 살 때 명절은 직장생활에 지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다면, 귀농 후 시골에서의 명절은 똑같은 일상 속에 가족들과 함께 해 특별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추석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구기자를 수확하거나 다른 일거리를 함께 한다. 고구마를 심었을 때는 다 같이 고구마를 캐기도 했고, 농장 정리를 도와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같이 점심도 먹고, 저녁에는 밖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양가 어머님들이 준비하신 음식들도 잔뜩 있어서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명절 때마다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양가 부모님들은 이제 친구가 됐다. 우리 없이도 따로 만나 식사를 하시거나 놀러 다니시곤 한다. 지난해 겨울엔 양가 어머님들과 함께 두 번째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사돈이 따로 만나 식사도 하고, 놀러 다니고, 함께 해외여행도 가는 가족은 대한민국 1%이지 않을까?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우선 우리를 도와주고자 하는 양가 부모님의 마음이 같고, 또 같은 일을 도와주고 고생하면서 공감대가 더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만든 규칙이 있다. 정치·종교 이야기 금지다. 이런 것들이 분란을 만들고 좋은 자리를 망친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규칙을 만들어 놓았다.

매년 명절을 함께하며 가까워진 양가 부모님들은 이제 따로 만나 시간을 보내고, 함께 해외여행도 갈만큼 친해졌다. / 청양=박우주
매년 명절을 함께하며 가까워진 양가 부모님들은 이제 따로 만나 시간을 보내고, 함께 해외여행도 갈만큼 친해졌다. / 청양=박우주

그리고 우리가 명절에 꼭 하는 일과가 있다. 귀농하면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이장님과 유 선생님 댁에 찾아뵙고 선물을 드리는 거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렇게 정착하고 성장하지 못했을 거라 감사한 마음으로 찾아뵙는다.

이사하기 전엔 집이 가깝기도 하고 궁금한 것들도 많다 보니 이장님 댁과 자주 왕래를 했었다. 덕분에 이장님 댁 자녀분들은 물론 손자·손녀까지 다 알고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이제는 같은 청양이지만 차로 15분 정도 걸리고, 농사일이 익숙해진 만큼 여쭤볼 것도 별로 없다보니 은근히 왕래가 쉽지 않다. 그래서 1년에 두 번 명절엔 꼭 찾아뵙는다.

항상 느끼지만 그분들을 뵈러 가면 편안하다. 정말 시골 할머니·할아버지 댁처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마음이 좋아진다. 특히 이장님네 쌀은 정말 맛이 좋아서 우리 부모님들도 명절에 오시면 꼭 사가신다. 부모님들도 그분들이 우리에게 정말 잘해주신걸 알기 때문에 옷 같은 걸 선물로 드리기도 한다.

여담으로 귀농초기에 시골 빈집에서 살 때 보증금과 임대료를 싸게 해주는 대신 하나의 조건이 있었다. 바로 그 집안 산소를 벌초하는 것이었다. 주변에선 어린애들한테 이런 것까지 시키냐고 뭐라 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돈을 아끼는 게 훨씬 이득이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4년 동안 산소 벌초를 했다. 처음엔 잘 못했지만 이장님께서 기술을 알려주신 덕에 2년차부턴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었다. 그때 벌초 실력이 쌓여 지금은 예초를 꽤 잘하는 편이다. 살면서 예초할 일이 군대 때 빼고 없었는데 나름 좋은 경험이었다. 시골에 살면 무조건 꼭 필요한 예초 기술을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다.

추석연휴에 양가 부모님들이 오시면 6명이 함께 하니 훨씬 빠르고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부모님들이 가시면 우리만의 진짜 휴일도 즐길 수 있다. 택배도 못 보내고 할 일도 많이 처리했으니 하루 정도는 아무것도 안하면서 쉬고 놀러간다.

추석이 끝나고 선선해지는 10월 초 중순에는 친척들이 다함께 오시기도 한다. 8~9월 수확철엔 너무 더워 오셔도 집에서 쉴 수밖에 없는데, 가을엔 날씨도 선선하고 일을 도와주는 재미도 있어서다. 그때는 정말 명절 같다. 오시면 항상 귀농하길 잘했다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시고 많이 도움을 주고 가신다.

도시의 명절은 정이 없어졌지만, 시골의 명절은 따뜻하다.        

 

박우주·유지현 부부

 

-1990년생 동갑내기

-2018년 서울생활을 접고 결혼과 동시에 청양군으로 귀농

-현재 고추와 구기자를 재배하며 ‘참동애농원’ 운영 중

blog.naver.com/foreveru2u

-유튜브 청양농부참동TV 운영 중 (구독자수 4만)

www.youtube.com/channel/UCx2DtLtS29H4t_FvhAa-v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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