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나서봅니다.

코스피 상장사 세원이앤씨는 최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그 결과를 공시했습니다. / 세원이앤씨 홈페이지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코스피 상장 화학플랜트·유압기기 전문 제조업체 세원이앤씨는 지난달 29일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고 그 결과를 공시했습니다. 세원이앤씨가 경영권 분쟁에 휩싸여 갈등과 혼란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상정된 모든 안건들이 부결됐는데요. 그 과정과 이유가 상당히 이례적이어서 눈길을 끕니다.

우선, 세원이앤씨는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까요?

세원이앤씨는 1971년 설립돼 4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중견기업입니다. 원래는 미원그룹(현 대상그룹) 소속이었는데, 2000년 세원그룹 분리 당시 함께 떨어져 나온 뒤 2005년 셀론텍에 매각됐습니다. 그리고 다시 2020년 10월부터 2022년 1월까지 매각 절차를 밟아 디지털킹덤홀딩스를 새 주인으로 맞았고, 이 과정에서 지금의 사명을 갖게 됐죠.

이렇게 새 주인을 맞은 뒤 세원이앤씨는 험로를 걷기 시작했는데요. 실적이 크게 흔들렸을 뿐 아니라 지난해 4월엔 외부감사인으로부터 투자활동 관련 거래 타당성과 특수관계자 거래 적정성을 이유로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폐지 위기를 마주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전·현직 경영진이 배임 혐의로 고발됐다가 취하되고, 투자자들에게 ‘강력매수’ 문자가 대량 유포된 것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의 압수수색을 받는 등 혼란이 거듭됐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세원이앤씨는 지난해 5월 또 다시 최대주주가 바뀌기에 이릅니다. 일련의 뒤숭숭한 행보로 인해 주가가 급락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디지털킹덤홀딩스가 세원이앤씨 지분을 담보로 받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반대매매가 이뤄진 거죠. 이에 따라 당시 4.88%의 지분을 보유 중이던 범한메카텍이 세원이앤씨의 새로운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이후 세원이앤씨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했고, 소송이 잇따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 결국 지난달 29일 임시주총을 통한 ‘격돌’이 이뤄지게 된 겁니다.

임시주총엔 어떤 안건들이 다뤄졌고 왜 모두 부결됐을까요?

이번 임시주총에 상정된 안건은 크게 정관 변경, 그리고 사내이사와 사외이사의 해임 및 선임이었습니다. 이사회에서 결의한 안건과 최대주주 측 주주제안 안건이 맞부딪혔죠.

결과는 모두 부결됐습니다. 이유는 의결정족수 미달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이유는 각각 조금 다릅니다. 이사회에서 내건 안건은 단순한 의결정족수 미달이지만, 주주제안 안건의 경우 ‘단서’가 붙습니다. 바로 ‘이사회에서 본 안건을 적대적 기업인수에 의한 이사 선임이라고 결의한 바, 정관 제27조 2항에 따른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입니다.

세원이앤씨의 정관을 살펴보겠습니다. 주주총회 결의방법을 규정하고 있는 제27조는 우선 1항이 ‘주주총회의 결의는 법령에 다른 정함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과반수로 하되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이상의 수로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있습니다. 일반적인 안건은 찬성이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주식총수의 25%만 넘으면 안건이 통과된다는 의미입니다. 통상적인 수준이거나 비교적 가벼운 조건이죠.

주목할 부분은 그 다음 2항입니다. 주주총회에 의한 이사 해임과 선임, 정관 변경 시, ‘기존의 이사회에서 적대적 기업인수 또는 합병에 의한 기존 이사의 해임이라고 결의하는 경우’엔 조건이 무척 까다로워집니다.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5분의 4,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되죠.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80%, 발행주식총수의 75%가 찬성해야 하는 겁니다.

이번 임시주총에서 주주제안 안건의 찬성률은 90%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행주식총수의 75%까지 넘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거죠. 이날 임시주총에 참가한 의결권은 약 53%였습니다.

주주제안을 가로막은 이 같은 정관을 가리켜 ‘초다수결의제’라고 하는데요. ‘황금낙하산’과 함께 적대적 인수합병을 차단하는 대표적인 방어책이죠.

아무래도 이러한 정관들은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일단, 각각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기업사냥에 맞선 정당한 방어권으로 볼 수도, 비정상적인 방탄책이자 주주권리 침해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결의방식들을 크게 넘어서는 이 같은 정관 내용이 합법적인지도 뜨거운 쟁점입니다. 실제 2020년에는 초다수결의제가 다수주주의 의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사법부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뜨거운 쟁점인 초다수결의제를 둘러싼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세원이앤씨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당분간 더욱 깊어지는 것이 불가피해보이네요.

 

근거자료 및 출처
세원이앤씨 ‘임시주주총회 결과’ 공시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40129801140
2024. 01. 29.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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