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이 기밀유출을 저지른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제재로 행정지도를 결정한 가운데, 거센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 뉴시스
방위사업청이 기밀유출을 저지른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제재로 행정지도를 결정한 가운데, 거센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방위사업청의 제재 수위가 결정됐다. 기밀유출로 중대 제재 위기에 직면했던 HD현대중공업이 입찰 참여제한이란 최악의 상황을 가까스로 모면한 모습이다. 다만, 앞서도 발목을 잡았던 ‘감점’이 여전히 큰 부담으로 남아있고, 경쟁사이자 기밀유출 사건과도 밀접하게 얽힌 한화오션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상당한 후폭풍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방사청 ‘행정지도’ 결정에 엇갈린 표정

방사청은 지난달 27일 계약심의위원회를 열고 군사기밀 유출이란 중대 부정행위를 저지른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제재를 결정했다. 결과는 ‘행정지도’다. 이는 행정기관이 행정목적 실현을 위해 특정인에게 지도, 권고, 조언 등을 하는 것으로, 아주 가벼운 제재로 볼 수 있다.

방사청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 국가계약법 제27조 1항 1호 및 4호 상 계약이행시 설계서와 다른 부정시공, 금전적 손해 발생 등 부정한 행위에 해당되지 않고, 제척기간을 경과함에 따라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봤다. 또 방위사업법 59조에 따른 제재는 청렴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입찰 참여제한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했던 HD현대중공업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규모가 7조8,000억원에 달하는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사업 수주전에 참전조차 하지 못할 뻔했던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이에 HD현대중공업 측은 방사청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국내 함정산업 발전과 해외수출 증대를 통해 우리나라 방산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앞서 이중처벌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방사청에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입찰 참여 기회 제공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했던 울산상공회의소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경쟁사이자 HD현대중공업의 기밀유출 사건과도 밀접하게 얽혀있는 한화오션 측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방사청 결정 이후 입장문을 통해 “기밀 탈취는 방산 근간을 흔드는 중대 비위로 간주한다. 이에 따라 재심의와 감사 및 경찰의 엄중한 수사를 다시 촉구한다”고 밝혔다. 경남 거제시를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서일준 의원 역시 성명을 통해 “방산 카르텔, 방산 마피아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즉각적인 재심의를 요구하고 나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제재를 촉구하는 고발장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게 제출했다고 4일 밝혔다. 특히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고위 임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지시나 관여 없이 일련의 조직적인 범행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은 굳이 판결문 등이 아니더라도 상식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손쉽게 추론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하며 방사청이 내놓았던 설명에 물음표를 붙였다. 또한 그동안은 관계당국에서 적절한 처분을 내릴 것으로 기대해 차분하게 대처해왔으나, 최근 중대하고 명백한 범죄행위마저 HD현대중공업의 ‘꼬리 자르기’식 은폐 시도에 의해 가려질 수 있겠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게 됐다고 밝히며 향후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예고했다.

최악의 제재를 모면한 HD현대중공업 역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입찰 참여 제한은 피했지만, ‘감점’이란 중대 악재는 여전히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 입찰에서 보안사고에 따른 1.8점의 감점을 2022년 11월부터 적용받고 있으며, 이는 내년 11월까지 계속된다. 이로 인해 지난해 함정 수주전에서도 한화오션에 밀려 고배를 마신 바 있다. 한화오션과의 기술적 격차가 크지 않은 만큼, KDDX 사업 수주전에서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수주전에서 패배한 뒤 이의제기 절차 뿐 아니라 법적대응까지 밟은 바 있으며,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반발이 상당했다. 만약 이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KDDX 사업 수주전에서도 감점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수주에 실패하게 될 경우 더욱 거센 반발과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방사청 입찰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면서 향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KDDX 사업 수주전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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