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에 대한 방위사업청의 제재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 뉴시스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방위사업청의 제재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과거 군사기밀 유출을 저질렀던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방위사업청의 제재 여부를 두고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양사의 신경전을 넘어 지역 간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어떤 결론을 내려지든 거센 후폭풍이 불가피해 보이는 가운데, 방사청을 향해 이목이 집중된다.

◇ 입찰 제한 제재 시 KDDX 사업 참여 물거품… 방사청 결정 주목

최근 호황기를 맞아 활기가 넘치는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방사청의 제재 여부가 화두로 떠오르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군사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드러나 큰 파문을 일으켰던 HD현대중공업에 대해 입찰 참가자격 제한 등의 제재를 내릴지 결정할 계약심의위원회가 임박하면서다.

당초 방사청은 계약심의위원회를 지난해 12월 열어 제재 여부와 수위 등을 결정할 계획이었다.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지난해 11월을 기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중 8명은 2022년 11월 1심 선고 후 항소를 포기해 유죄가 확정됐고,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나머지 1명도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선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방사청은 제3자 판결문 열람 금지 신청으로 인해 판결문을 확보하지 못했고, 제재 절차를 연기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 판결문을 확보하면서 관련 절차에 다시 나선 것이다.

방위사업법상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에 가할 수 있는 가장 큰 제재는 입찰 참여 5년 제한이다. 방산부문이 지닌 여러 중요성을 고려하면 상당히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기간도 기간이지만 입찰 참여 제한 결정이 내려지는 것 자체가 큰 악재다. 당장 규모가 7조8,000억원에 이르는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사업 수주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방사청의 입찰 참여 제한 결정은 곧 HD현대중공업이 KDDX 사업 수주전에 참가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HD현대중공업은 이미 지난해 기밀유출에 제대로 발목을 잡힌 바 있다. KDDX 사업 수주전의 전초전으로 여겨진 호위함 수주전에서 감점을 받으며 고배를 마신 것이다. 당시 HD현대중공업 측은 감점이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법적대응까지 나섰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 입찰 참여 제한 제재가 내려질 경우 HD현대중공업은 앞선 호위함 수주 실패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실적이나 기술력 입증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국내 조선업계 ‘맏형’으로서 재계 및 업계에서 새로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한화오션에 밀려 자존심을 구기게 된다.

이런 가운데, 각 지역 및 정치권에선 묘한 신경전이 나타나고 있다. 한화오션이 위치한 경남 거제시가 지역구인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KDDX 군사기밀 절도 사건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국가 방위산업은 국민의 생명과 대한민국 영토를 수호하는 엄중하고도 근본적인 책임과 의무가 있다. 국가 방위산업의 위상을 올리는 길은 방사청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심의가 첫 단추가 될 것이다. 방사청법에 따른 공정하고 엄격한 심의와 신속한 후속 조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같은 날, 같은 당 이채익·권명호 의원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기자회견을 통해 “HD현대중공업이 입찰에서 배제된다면 특수선 사업은 문을 닫으라는 소리와 같다.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사업부의 매출은 1조원, 고용 인원은 1,7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특수선 사업부가 위기에 빠져 울산 시민들이 많은 우려와 걱정을 하고 있다”면서 “방사청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10년 전 발생한 보안사고로, 이로 인해 HD현대중공업은 이미 1.8점의 감점을 적용받고 있다. 수주전 당락이 소수점 차이로 결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강력한 처분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방사청이 울산지역 경제는 물론 대한민국 안보 등을 고려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길 기원한다”며 “정부도 어떤 결과가 대한민국의 경제적 국익과 튼튼한 해양안보를 위한 것인지 국민 눈높이로 고심해 달라”고 촉구했다. 두 사람은 울산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당사자인 HD현대중공업, 경쟁사이자 군사기밀 유출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한화오션을 넘어 양측 지역 차원에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진 직접적으로 입장을 밝힐 상황이 아니지만,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역시 앞서 뜨거운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지난해 호위함 수주전 결과가 나온 이후 HD현대중공업은 기술점수에서 한화오션에 앞섰음에도 부당한 감점으로 인해 수주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한화오션 측은 기술력에 대한 HD현대중공업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정당한 입찰을 통한 결과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행위에 대한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방사청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상당한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방사청은 오는 27일 계약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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