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14일 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지난해 실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뉴시스
이소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14일 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지난해 실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보건복지부가 2017년 한 해 동안 이뤄진 인공임신중절수술 실태를 조사한 결과 12년 전보다 85% 줄어든 약 5만 건으로 추정됐다. 2005년 조사에선 34만 건, 2010년 당시 17만 건으로 집계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해 임신중절이 줄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단, 현행 법률상 임신중절이 불법이기 때문에 음성적인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부분까지는 측정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보건복지부 의뢰로 지난해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14일 공개했다. 보사연은 지난해 9~10월 만 15~44세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에서 임신중절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한 여성들의 전체 건수는 1,084건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한 2017년 여성의 임신중절률(1,000명당 임신중절 건수)은 4.8%로, 한 해 동안 시행된 임신중절은 약 4만 9,746건이라는 추정이다.

임신중절을 한 여성의 혼인상태는 미혼(46.9%)이 가장 많았고 법률혼(37.9%)이 그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사실혼·동거(13.0%), 별거·이혼·사별(2.2%) 순이었다. 임신중절을 고려하게 된 이유(복수응답)로는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가 33.4%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가 32.9%, ‘자녀계획’이 31.2%로 주된 이유로 꼽혔다.

이는 정부가 앞서 두 차례 실시했던 임신중절 추정 건수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정부는 지난 2005년과 2011년에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2005년에는 34만 2,000여 건, 2010년에는 16만 8,000여 건으로 발표됐다. 이번 조사로 집계된 ‘5만 건’ 수치는 2010년에 비하면 3분의 1, 2005년 조사에 비하면 7분의 1 가량으로 줄어든 것이다.

다만 임신중절 건수의 감소가 단순히 ‘임신중절을 하는 여성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피임의 중요성을 인지한 여성이 증가했고 가임기 여성의 절대적 수가 감소했다는 사회문화적 원인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보사연은 임신중절 감소의 원인으로 ▲피임실천의 증가 ▲응급(사후)피임약 처방 건수 증가 ▲만 15~44세 여성의 지속적 감소 등을 꼽았다. 조사를 담당한 이소영 보사연 연구위원은 “피임실천율과 가임여성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성관계시 피임을 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이 2011년 19.7%에서 이번 조사에선 7.3%로 줄었고, 15세~44세 이하 여성의 수가 2010년 1,123만명에서 1,027만명으로 8.5% 감소했다”고 말했다.

◇ “낙태죄 합헌”이라던 헌재 입장에 영향 미칠까

이번 조사는 ‘낙태죄’ 위헌 여부 판단을 앞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낙태’라는 사회적 쟁점에 대한 심리에선 헌재도 여론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헌재는 4월 중순이면 서기석·조용호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만큼, 3월 마지막 주께 ‘낙태죄’ 위헌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보사연 실태조사에서 임신중절을 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96조와 270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한 여성은 75.4%였다. 제한적인 임신중절 허용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14조 및 시행령 제15조 개정에 대해서는 48.9%가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40.4%는 ‘잘 모름’, 10.7%는 ‘개정 불필요’ 순으로 답했다.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해온 여성단체 ‘비웨이브’(BWAVE)는 이날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임신중단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임신중단을 막지 못한다. 그것은 임신중단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 뿐”이라며 “낙태죄는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박탈한다. 가부장제의 동력원인 낙태죄가 존속하는 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영위할 수 없다. 낙태죄 폐지는 여성해방을 위해 거쳐야 할 필연적인 경로”라고 주장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치부해 법적 강제와 현실을 무시한 윤리적 의료를 강요하겠다는 발상은 구시대적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 및 국민들에게 돌아갈 게 명백하다”면서 “하루빨리 우리나라 여성들과 산부인과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는 모자보건법과 형법 규정들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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