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 제2차 라운드가 6일 마감된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추석 연휴 기간 유럽으로 이동해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막판지지 교섭 활동을 벌였다. 2차 라운드에서는 5명의 후보 중 최종 후보 2명을 가려낸다. 최종 라운드 진출자 2명은 이르면 8일쯤 발표될 것으로 전해진다. 유 본부장은 최종 2명에 진입할 수 있을까.
◇ “성별·지역보다 실력”… 다자무역주의 회복 기조
유명희 본부장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와 스웨덴 스톡홀름을 방문해 선거 활동을 펼쳤다. 유 본부장이 제네바를 방문한 것은 지난 6월 입후보 이후 세 번째로, 이곳에서 15개국 장관급 인사와 제네바 주재 WTO 대사들을 만났다. 상당수 회원국은 유 본부장의 WTO 개혁 방향에 대해 전반적인 지지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2차 라운드에 진출한 후보는 유 본부장, 응고지 오콘조이웰라(여·나이지리아) 전 세계은행(WB) 전무, 아미나 모하메드(여·케냐) 전 WTO 각료회의 의장, 모하마드 알 투와이즈리(남·사우디아라비아) 경제·기획부 장관, 리암 폭스(남·영국) 국제통상부 장관 등 5명이다. 2차 라운드 선출 협의는 164개 각 회원국별로 선호하는 1~2명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재 구도는 유 본부장을 포함한 여성 3파전으로 분석된다. 여기서 지지율이 낮은 후보 3명이 탈락하고, 남은 2명이 최종 라운드로 간다.
유 본부장은 앞서 지역, 성별 등의 정치적 고려보다 실력으로 대결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유 본부장은 지난 8월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유력 경쟁자로 꼽히는 오콘조이웰라 전무와 모하메드 의장 등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라 WTO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이므로 실제 WTO 개혁 성과를 낼 능력과 자질을 갖췄는지를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게 회원국들의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타 후보자는 출신 국가가 속한 지역에서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이에 유 본부장은 WTO 선거전을 위해 개설한 홈페이지에 ‘대한민국의 첫 여성 통상장관으로서 혁신가, 협상가, 전략가, 개척자’라고 소개했고, 25년간 통상분야에서 활동했다는 오랜 경험을 강조했다. 또 ▲시기적절한(relevant) ▲회복력(resilient) ▲대응력(responsive) 등 3R로 표현되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WTO에서 핵심가치로 삼는 다자무역체계를 겨냥해 현 상황에 가장 필요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즉 유 본부장이 강조하는 것은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손상된 WTO의 기능을 회복하고, 다자 무역시스템의 신뢰도 회복이다. 이를 위해서는 통상 전문가이자 오랜 협상 경험을 지닌 자신이 적임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 미국·중국·EU의 의중은 어디?
사실 이번 WTO 사무총장 선거는 그간 아프리카 출신 사무총장이 재임한 적 없다는 것 때문에 ‘아프리카 대세론’ 관측이 무성했다. 2라운드도 ‘여성 3파전’이라고 했지만, 이 중 2명은 나이지리아와 케냐 출신이다. 유 본부장은 나이지리아와 케냐 후보를 제쳐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아프리카 지역 회원국의 지지는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를 제외하면 중앙아시아와 독립국가연합(CSI)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며 유 본부장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바 있다.
세계무역에 큰 영향을 끼치는 미국과 중국의 의중은 WTO 사무총장 선출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2차 라운드에서는 이들은 어느 한쪽 후보를 지지하는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중국은 대외확장 프로젝트를 위해 아프리카 국가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으며, 미국은 WTO를 통한 무역통상규범의 수호를 중시해 유 본부장을 지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오는 11월 3일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데, 이는 WTO 사무총장 최종 선출이 끝나기 전이다. 미국 대선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든 후보는 다자무역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이며, WTO 개편을 통한 다자무역주의 재건을 주도할 확률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중 WTO와 지속적으로 마찰해온 이력이 있고, WTO 탈퇴도 시사한 바 있다. 이에 바이든이 당선되면 WTO 체제를 통한 중국 견제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유 본부장을 선택할 확률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U의 경우 사무총장 2차 라운드에서 한국과 나이지리아 후보를 지원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 블룸버그는 EU 회원국 대표들이 오는 유 본부장과 오콘조이웰라 전무를 WTO 사무총장 후보로 지지하는 계획을 승인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