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우)과 하태경 의원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뉴시스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우)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또 한번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유승민 전 의원은 이번에도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역시 ‘젠더갈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여가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판이 쏟아졌는데, 왜 이들은 해묵은 논쟁을 들고온 것일까. 

◇ 여야, “극우 표퓰리즘” 맹폭

유 전 의원은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가 있다”며 “제가 대통령이 되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대통령 직속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해 각 부처들이 양성평등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도록 조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가부 장관은 대선승리의 ‘전리품’이라고 깎아내렸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한 하 의원은 국민의힘 청년문제 해결모임인 ‘요즘것들연구소’ 시즌2 출범식에서 여가부 폐지론을 꺼냈다. 하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남녀평등 화합으로 가기보다 젠더갈등을 부추겨 왔다”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여가부를 폐지하고 젠더갈등 해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당 대표까지 가세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7일 SBS 인터뷰에서 “여성가족부는 빈약한 부서를 갖고 캠페인을 하는 역할로 전락해 버렸다”며 “대통령 후보가 되실 분은 (여가부) 폐지 공약은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여야 모두 이들의 주장을 비판했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지층 확보에만 혈안이 돼 있다. 여가부 폐지 공약은 양성평등 폐지 공약”이라고 맹비난했고,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남녀갈등과 분열을 먹이 삼아 정치적 생명력을 지속하는 것은 극우 포퓰리즘을 스스로 자처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국민의힘 인사들도 비판했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윤희숙 의원은 “여가부의 기능 공백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구상이 따라야 한다”고 했고, 조수진 의원은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또 다른 ‘분열의 정치’라고 지적했다. 원희룡·홍준표 등 다른 대권주자들도 여가부 폐지 공약과 당론 채택에 반발했다. 

여가부 존치 이슈는 정치권에서도 해묵은 논쟁이다. /여성가족부
여가부 존치 이슈는 정치권에서도 해묵은 논쟁이다. /여성가족부

◇ ‘해묵은’ 폐지 논쟁… 선거 의식했나

여가부 존치와 관련한 논란은 ‘해묵은’ 이슈로 볼 수 있다. 여가부는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여성특별위원회로 시작됐다. 그리고 2001년 1월 여성부로 신설됐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가부 존치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설전이 벌어졌다. 2008년 1월 당선인 신분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작고 유능한 실용정부’를 표방하며,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 당시에도 여가부는 통폐합 1순위로 꼽히면서 여성계가 반발했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당선인 시절에 민주당 대표 및 최고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부처 통폐합을 논의하며 “여성부는 여성 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같은달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여가부를 보건복지부와 합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의했지만, 야당과 여성계의 반발로 저지된 바 있다. 

여가부 폐지론자들은 여가부가 젠더갈등을 유발하고, 예산이 배정되는 부서임에도 다른 부처와 겹치는 업무가 있다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여가부가 적은 권한과 예산을 갖고 노력해왔다고 말한다. 

실제로 여가부는 2019년도에 처음으로 연 예산이 1조원을 넘었다. 우리나라의 한 해 예산은 약 500조 정도다. 성폭력 대응과 성평등을 위한 정책 수립 등의 고유한 역할이 있음에도, 부처 창설 20년이 되서야 1조원의 예산을 따낸 것이다. 최근 개정안이 통과된 양육비 이행법 역시 여가부가 전담했다. 또한 지난해 유엔여성기구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여성과 성평등 정책을 담당하는 장관급 부처가 있는 국가는 100여곳에 이른다. 

김경선 여가부 차관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여가부는 지난 20년간 성평등 가치를 확산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며 “여가부가 없다면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어디에서 도움을 받겠느냐”고 폐지론에 반박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8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최근 성비위 문제를 높은 수준의 성인지 감수성을 갖고 바라보게 된 것은 여가부가 노력한 덕분“이라며 ”폐지론 중 상당부분은 오해에 기초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옹호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대선을 의식해서 해묵은 의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역차별’을 주장하는 2030 보수층 남성이 국민의힘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에 영향을 받은 셈이다. 이에 대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아무리 이 대표가 청년층 젠더 갈등을 이용해 재미를 보았다고 해도 중진까지 편승하는 모습, 참 보기 흉하다”고 비꼬았다. 

같은당 오현주 대변인은 “유 전 의원은 여가부를 없애고 그 돈으로 의무 복무를 마친 청년들을 지원하겠다면서 대놓고 남녀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8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에서 “(여가부 폐지론은) 2030 중에서도 보수인 남성 지지자를 타깃으로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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