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약품의 어준선 회장(왼쪽)과 어진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전격 물러났다. /사진=안국약품 홈페이지 /그래픽=권정두 기자
안국약품의 어준선 회장(왼쪽)과 어진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전격 물러났다. /사진=안국약품 홈페이지, 그래픽=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안국약품이 53년에 걸친 오너경영 체제에 마침표를 찍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격 전환했다. 불법 임상시험, 리베이트 등 연이은 불미스런 사건으로 뒤숭숭한 시기에 커다란 변화를 맞은 모습이다. 이 같은 변화가 극약처방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준비된 전환? 전문경영인 체제로 제 궤도 찾을까

지난 3일, 안국약품은 대표이사 변경을 공시했다. 기존에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구축해온 창업주 부자 어준선 회장 및 어진 부회장이 물러나고, 원덕권 사장이 새롭게 단독 대표이사에 오른 것이다. 

이는 무려 53년 만의 변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어준선 회장은 1995년에 설립된 근화항생약품을 전신으로 하는 안국약품을 1969년 인수했고, 이때부터 반세기 넘게 대표이사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준선 회장의 장남인 어진 부회장 역시 30대의 젊은 시절이던 1998년 대표이사에 올라 24년간 자리를 지켜왔다.

80대 중반을 넘긴 고령의 어준선 회장은 사내이사 임기가 이달 말까지였으며,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어진 부회장의 경우 지난해 사내이사로 재선임돼 임기가 2년 더 남아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오너경영 체제가 2대에 걸쳐 오랜 세월 이어져온 점, 그리고 최근 수년간 불미스런 사건들에 휩싸였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변화는 ‘극약처방’이란 평가가 무색하지 않다.

안국약품은 2019년 대규모 리베이트 혐의가 드러나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어진 부회장은 물론,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의사 85명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는 불법 임상시험 혐의 또한 드러났다. 이 역시 개발 중인 약품을 관계당국의 승인 등의 절차 없이 중앙연구소 직원들에게 투약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엔 불법 임상시험에 가담했던 안국약품 전 중양연구소장이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안국약품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보건소 의사 5명이 징역 2년 6개월~3년 6개월, 벌금 7,000만원~1억5,000만원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어진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그 사이 안국약품은 실적 또한 맥을 추지 못했다. 2018년 1,857억원이었던 안국약품의 연결기준 연간 매출액은 △2019년 1,558억원 △2020년 1,433억원으로 내려앉았다. 또한 2018년 153억원이었던 연결기준 연간 영업이익도 2019년 24억원으로 감소하더니 2020년엔 6,000만원의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했다. 지난해에는 1,635억원의 매출액과 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회복세를 보였으나, 여전히 제 궤도를 찾지 못한 모습이다.

한편으론 안국약품의 이번 체제 전환이 오너일가의 철저한 계산 및 계획 하에 이뤄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국약품은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임원 퇴직금 규정을 제정한 바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임원 퇴직금은 기준금액(퇴임일로부터 소급해 3년 간 지급받은 급여의 연 평균 환산액)에 0.1과 재임기간을 곱한 뒤 마지막으로 지급률을 곱해 책정된다. 이때 회장 및 부회장의 퇴직금 지급률은 4로 설정됐다. 사장은 2, 부사장은 1.8%, 전무와 상무는 1.5다. 

공교롭게도 이 규정이 제정된 지 1년 만에 어준선 회장과 어진 부회장은 경영일선에서 전격 물러났다. 더욱이 어진 부회장의 경우 2년 넘게 진행 중인 재판의 선고가 멀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시사위크>는 어진 부회장의 구체적인 향후 거취 등에 대한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안국약품 측 담당자와 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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