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IT업계 역시 비상이 걸렸다. 스마트폰, TV 등 주요 러시아 시장 수출 품목에 타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통신시장 진출 역시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사진=뉴시스)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전 세계 경제·산업계에서 경제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금융 및 무역 제재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국제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정보통신(IT)업계에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사태로 인한 혼란이 큰 상황이다. 특히 스마트폰·통신장비업체들의 경우 러시아를 미래 주요 시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적잖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러시아 시장 1위인데”… 사태 장기화 조짐에 고민 깊어지는 삼성전자

먼저 우리나라 스마트폰 관련 업계 전체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삼성전자의 촉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태의 향방에 대해 곤두선 상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주요시장 중 한 곳이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7년부터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준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30%로 1위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시장조사업체 OMI(Online Market Intelligence)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0년 연속 ‘러시아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이렇게 삼성전자가 러시아 시장에서 사랑받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러시아 무역 제재는 삼성전자에겐 큰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서방 국가들에게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8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러시아 수출 제한을 무시할 수 있는 중국 기업에 대해 미국이 제품 생산에 필요한 미국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차단할 것”이라는 경고를 한 바 있다. 일단 중국 기업에 한해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다른 나라의 기업들 역시 러시아와의 협력을 이어갈 경우, 불이익을 볼 가능성은 충분히 내재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0일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5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는데, 해당 리스트에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LG전자도 포함돼 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공식 페이스북

우크라이나 측도 삼성전자 등 우리나라 IT기업들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해주기를 요청한 상태다. 10일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5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는데, 해당 리스트에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LG전자도 포함돼 있다.

아울러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IT기기들 제조에 필수적인 반도체 공급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주로 공급되는 나프타, 반도체용 천연가스, 니켈, 알루미늄, 네온 등의 자원들은 스마트폰에 필수적인 배터리와 반도체를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25일 ‘우크라이나 사태가 원자재 시장에 미치는 영향’ 리포트를 통해 “갈등이 심화되면서 미국 달러사용을 차단하거나 에너지 원자재 수출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며 “이는 곧 천연가스와 유가를 중심으로 가격 상승 압력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통신사는 KT다. KT는 지난 2018년부터 이미 러시아 기업들과의 다양한 업무협약 및 협력을 약속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 국내 통신업계도 러시아 통신시장 진출에 ‘제동’… KT, “상황 예의 주시 중”

이처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높은 현재 상황에 국내 통신업계 역시 우려가 큰 상황이다.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것으로 기대된 러시아 시장 진출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러시아 IT산업 발전과 한·러 협력: 러시아의 경제 구조전환을 중심으로(2020)’ 보고서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IT기술협력을 위한 경제적, 정책적 그리고 기술적 조건이 모두 완비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국내 통신업계의 러시아 시장 진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통신사는 KT다. KT는 지난 2018년부터 이미 러시아 기업들과의 다양한 업무협약 및 협력을 약속한 상태다.

실제로 KT는 2018년 9월 러시아 및 유럽지역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기업 어센드케어와 함께 ‘러시아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진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KT는 ICT기술이 집약된 모바일 건강진단 솔루션을 제공하고 현지 마케팅을 지원하고, 어센드케어는 KT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의 러시아 정부인증, 판매 및 A/S 채널을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당시 구현모 KT CEO 역시 “유라시아의 맹주이자 가장 큰 시장을 보유한 러시아에 디지털헬스케어를 공급할 기회를 마련했다”며 “KT는 본 업무협약을 바탕으로 러시아를 넘어 유라시아 진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며 러시아 시장 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KT의 러시아 시장 진출 노력은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가 발발하기 직전인 올해 초까지 이어갔다. 

지난달 9일에는 러시아 시장진출을 목표로 동유럽 대표 통신사업자 모바일텔레시스템즈(MTS)와 사업협력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유무선 최대 통신기업인 MTS는 러시아를 비롯해 아르메니아와 벨라루스 등에서 약 8,7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그 전달인 1월에도 러시아 얀덱스(Yandex)그룹의 자율주행 기술 전문회사 얀덱스SDG(Self Driving Group)와의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 상황에 대해 KT 측 역시 신중한 입장이다. KT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정확한 상황을 말씀드리긴 어려우나 러시아 시장 사업추진에 있어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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