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공시 일타강사’로 나서봅니다.

GKL은 지난 12일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했습니다. 하지만 안건으로 상정된 신임 상임이사 선임은 부결됐습니다. /그래픽=권정두 기자
GKL은 지난 12일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했습니다. 하지만 안건으로 상정된 신임 상임이사 선임은 부결됐습니다. /그래픽=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외국인 대상 카지노를 운영하는 공기업 그랜드코리아레저(GKL)는 지난 12일 임시주주총회 결과를 공시했습니다. 임시주주총회는 주주들이 모여 회사의 중대 사항을 결정하는 최고의결기구인 주주총회 중 사안에 따라 수시로 개최되는 것인데요. 눈길을 끄는 건 이번 임시주주총회에 부쳐졌던 2개의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는 겁니다.

어떤 안건이, 어떻게 부결됐을까요?

GKL이 이번 임시주주총회에 상정한 안건은 1명의 신임 상임이사 선임입니다. GKL은 지난 5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전병극 전 혁신경영본부장이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에 선임되면서 상임이사 자리가 하나 비어있었죠.

후보로는 GKL 내부 출신이자 얼마 전까지 GKL 자회사 GKL WITH를 이끌었던 문태금 전 대표와 문화체육관광부 출신의 우상일 전 국장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 중 1명을 선임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임시주주총회 결과 두 후보자 모두 부결됐습니다. 이에 대해 GKL 측은 “보통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원안 부결됐습니다”라고 밝혔는데요. 상법상 보통결의 요건은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 찬성 및 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 찬성입니다. 주주총회의 결의방법을 명시한 GKL 정관 제21조 역시 같은 내용을 담고 있죠. 

즉, 두 후보자 모두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건데요. 이는 상당히 보기 드문 일입니다. GKL이 공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실제 GKL의 대표이사·상임이사·비상임이사(사외이사)·감사 선임이 주주총회에서 부결돼 무산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GKL이 그동안 숱한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주주총회를 넘지 못하는 일은 없었죠.

이 같은 초유의 상황을 이끌어낸 것은 바로 한국관광공사입니다. 한국관광공사는 GKL의 최대주주로, 과반이 넘는 5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른 주주의 뜻과 무관하게 GKL의 보통결의 사안을 가결 또는 부결시킬 수 있는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죠.

한국관광공사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사실, GKL의 이번 상임이사 선임 추진은 임시주주총회 소집결의가 공시돼 후보자가 공식 발표되기 전부터 뒷말이 나왔습니다. 우상일 전 국장 내정설이 불거지면서인데요. 이후 우상일 전 국장이 실제 후보자로 이름을 올리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습니다.

논란이 불거진 이유는 우상일 전 국장의 과거 전력 때문입니다. 우상일 전 국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주요 인물 중 하나였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핵심참모로 알려졌던 인물입니다. 한양대 박사과정을 밟을 당시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김종 전 차관과 지도교수-제자의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특히 우상일 전 국장은 2014년 12월 ‘비선실세’ 파문에 휩싸였던 정윤회 씨의 승마협회 인사개입 문제를 다룬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로부터 추궁을 받던 김종 전 차관에게 “여야 싸움으로 몰고가야”라고 적힌 쪽지를 건넨 것이 들통 난 바 있습니다. 이는 당시 상당히 큰 파장을 일으켰었죠.

이에 GKL 노조는 성명을 통해 반대의 뜻을 밝히며 우상일 전 국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문제제기가 이어졌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 인사의 귀환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며 “국정농단 핵심 인사이자 국회 모독의 당사자를 GKL의 중요 직책에 임명한다면 이는 현 정부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활동을 정당화하는 것이고 국회 모독을 묵인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대주주인 한국관광공사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한다”고 촉구하기도 했고요.

즉, 이 같은 반대 여론이 한국관광공사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면서 GKL의 이사 선임 안건이 주주총회에서 부결되는 초유의 상황을 낳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 한국관광공사 측은 “두 후보자 중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외에 세부적인 판단 배경이나 야당 성명을 고려한 것인지 등에 대해선 말을 아꼈지만요.

그렇다면, 향후 절차는 어떻게 될까요?

우선 회사의 최고의결기구인 주주총회에서 부결된 만큼, GKL의 이번 상임이사 선임 추진은 무산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처음부터 새롭게 선임 절차를 진행해야 하죠. 

GKL의 상임이사 선임 절차는 먼저 공모를 통해 지원자를 모집한 뒤 임원추천위원회 차원의 서류심사 및 면접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된 후보자를 주주총회에 상정시키는 것으로 이뤄집니다. 상임이사의 경우 대표이사나 비상임이사, 감사와 달리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으며 임명권자도 GKL 사장이죠. GKL은 조만간 상임이사 모집공고를 다시 낼 예정입니다.

다만, GKL은 부적절한 인물을 상임이사 최종 후보자로 선정해 논란을 야기했다는 싸늘한 시선을 피하기 어렵게 된 모습입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 GKL ‘임시주주총회 결과’ 보고서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2022년 10월 12일 

 

- 정윤회 딸 ‘판정 시비’부터 박 대통령 “나쁜 사람”까지 [더(The)친절한 기자들] / 한겨레, 2014년 12월 10일
https://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6684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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