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국가시스템엔 등록되지 않은 존재. 첩보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엔 태어났음에도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가 학대피해를 통해서야 뒤늦게 확인되는 일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으론, 출생신고를 하고 싶어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존재한다. 2022년,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출생신고 제도 이대로 괜찮을까.

의료기관 또는 의료인이 출생 사실을 국가에 알리도록 하는 출생통보제의 도입은 현행 출생신고 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첫 걸음이다. / 뉴시스
의료기관 또는 의료인이 출생 사실을 국가에 알리도록 하는 출생통보제의 도입은 현행 출생신고 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첫 걸음이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세상에 태어났지만, 국가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출생신고가 ‘부모’에 의해서만 이뤄지도록 규정돼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신고할 수 없는 경우엔 동거하는 친족이나 분만에 관여한 의료인이 출생신고를 하는 것도 규정상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모가 신고할 수 없는 경우’, 즉 사실상 부모가 모두 사망한 아주 이례적인 경우에만 해당한다.

이처럼 출생신고를 부모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는 이유는 부모가 출산의 주체인데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부모의 책임을 신뢰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 그리고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못하는 부모의 경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된다는 점이다.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가 뚜렷한 만큼, 이를 방지할 방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출생신고 권한이 부모에게만 맡겨져 있는 출생신고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출생통보제’가 대표적인 해법으로 꼽힌다.

출생통보제는 아이가 태어난 의료기관이나 분만에 관여한 의료인이 국가에 출생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제도다. 따라서 부모의 출생신고 없이도 국가는 아이의 출생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대신 출생신고를 해 국가 시스템에 등록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같은 제도의 도입 사례는 주요 선진국을 통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경우,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는 등록시스템을 통해 바로 의료보장 번호를 발급받는다. 독일은 부모와 병원 모두 출생등록을 하도록 하고 있고, 캐나다 역시 부모에겐 출생신고 의무를, 의료인 등에겐 출생통보 의무를 각각 부여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의료기관 및 의료인이 출생등록의 의무를 갖는다. 부모에 의한 출생신고 없이도 국가가 아이의 출생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국내외에서 이어져오고 있다. UN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우리나라의 UN아동권리협약 3·4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권고사항에서 “대한민국의 현 법률 및 관습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물학적 부모가 보편적으로 출생신고를 하도록 규정하는 데 있어 불충분하다는 것을 우려한다”며 “협약 7조에 따라, 위원회는 대한민국이 부모의 법적 지위 및 출신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출생이 신고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명시했다.

이후에도 2012년 UN 국가별 정례인권검토, 2015년 UN자유권규약위원회, 2017년 UN사회권규약위원회 및 UN 국가별 정례인권검토, 2018년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 및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 2019년 UN아동권리위원회에서 모든 출생 아동의 출생신고가 이뤄지도록 하라는 권고가 이어졌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도 아동단체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 및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월엔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동이 학대로 사망한 것과 관련해 국가인원위원회 위원장이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물론 출생통보제가 태어난 모든 아이의 등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의료인 없이 출산하고 이를 철저히 은폐하는 경우, 출생통보제가 있어도 국가가 모르는 아이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한편으론 출생통보제가 혼외자녀의 출산 등을 더욱 음지로 내모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다만, 출생통보제는 태어난 모든 아이가 국가 시스템에 등록돼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장치임이 분명하다. 적어도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 의해 태어나는 전체의 99.6%에 달하는 아이들의 누락은 막을 수 있다. 출생통보제를 근간으로 다양한 차원의 보완 대책들이 마련돼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모르는 아이들이 또 어디선가 고통 받고 있을 지금, 이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 될 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근거자료 및 출처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2022. 12. 28. 현재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4차 국가보고서 및 권고사항 자료집
2011. 4. 보건복지부 한국아동권리모니터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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