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국가시스템엔 등록되지 않은 존재. 첩보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엔 태어났음에도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가 학대피해를 통해서야 뒤늦게 확인되는 일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으론, 출생신고를 하고 싶어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존재한다. 2022년,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출생신고 제도 이대로 괜찮을까.

세이브더칠드런은 최근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하기 위한 서명운동 캠페인에 돌입했다. / 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더칠드런은 최근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하기 위한 서명운동 캠페인에 돌입했다. / 세이브더칠드런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국가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 중에서도 아주 깊은 사각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제도적 개선에 앞서 다른 차원에서 개개인이 이들을 돕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물론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이들에게 주변 이웃의 적극적인 관심과 도움은 무척 절실하다. 실제 2020년 냉장고에서 2개월 된 영아의 시체가 2년여가 지나서야 발견된 것도 주변 이웃의 관심이 그 시발점 역할을 했다. 다만,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거나 후원을 하는 등의 일반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존재 자체가 가려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인류 최초로 ‘아동 권리’를 주창하기 시작해 100년 넘게 이와 관련된 활동을 이어온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최근 출생통보제 도입 촉구 캠페인에 돌입했다. 배우 천정명이 함께 하는 이번 캠페인은 ‘당신의 이름을 보태주세요’라는 제목의 서명운동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OECD 국가 중 부모에게만 출생통보 의무를 두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뿐”이라고 지적하며 “현재 대한민국 아동의 99%가 의료기관에서 태어나고 있다. 의료기관을 통해 태어난 아동의 출생 사실이 즉시 국가에 통보된다면 우리는 한 아이의 삶을 지킬 수 있다. 출생통보제는 아동의 존엄성과 권리 보장을 위한 삶의 첫 단추”라고 강조한다.

또한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아닌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 사실을 국가기관에 우선적으로 알리는 제도로, 부모의 출생신고가 없으면 국가가 아동의 출생을 확인할 수 없는 현행 제도를 보완하는 조치”라고 설명하며 “우리 정부는 2019년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통해 누락 없는 출생등록을 위한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으로 위기아동 발굴 및 보호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2020년 제2차 아동정책 기본계획과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2021년 제4차 건강가족기본계획, 2022년 출생 미신고아동 보호대책 등 출생통보제 도입 계획을 발표했지만 해당 법안은 해를 넘긴 지금까지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캠페인에 돌입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캠페인으로 모은 서명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해 제도 개선을 촉구하겠다는 게 세이브더칠드런의 계획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2020년 ‘아동의 등록될 권리 보장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후 이와 관련된 실태조사와 간담회, 기자회견 등을 진행하는 등 최근 들어 보다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또 다른 아동권리옹호 NGO 초록우산 어린이재단도 지난해 10월부터 ‘나를 기록해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또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역시 간담회 등 이와 관련된 활동을 적극 전개해오고 있다.

캠페인에 동참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각 단체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온라인을 통해 간단하게 참여 가능하다. 이렇게 서명에 참여하면, 출생통보제 도입과 관련된 최신 소식도 받아볼 수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출생통보제는 모든 아동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안전하게 성장하기 위한 제도”라며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동이 차별 받지 않기 위한 첫 단계가 바로 출생신고다. 아이들의 부모가 누구든지 태어난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관심을 모아 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우리 사회에 태어났지만, 국가시스템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사회·제도적 측면에서의 개선이 시급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개인 차원에서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는 게 현실이다. 다만, 각 개인이 뜻을 모으고 목소리를 키우면, 사회·제도적 개선을 실현하는데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 공식적인 이름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내 이름을 보태주는 것, 우리 사회의 깊은 사각지대를 해소시키는 작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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