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영아 살해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정치권이 대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미등록 아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출생통보제를 비롯해 보호출산제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뉴시스
미등록 영아 살해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정치권이 대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미등록 아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출생통보제를 비롯해 보호출산제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미등록 영아 살해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정치권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정치권은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민의힘은 이와 관련 태스크포스(TF) 구성 등 조속한 논의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역시 정치권의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한 만큼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미등록 영아 문제는 감사원이 지난 22일 보건복지부에 대한 정기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아동 중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등록 아동은 2,236명으로 나타났다. 조사 과정 중 수원시에서 친모에 의해 살해된 아동 2명의 시신이 집 냉장고에 보관돼 온 사실도 알려졌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미등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는 ‘참담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영아 살해 사건은 미등록 영유아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며 “기본적인 시스템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야당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정치인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여야는 이번 미등록 영아 살해 사건의 궁극적 원인이 ‘제도적 허점’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현행법상 출생신고의 경우 부모의 의무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출생통보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병원 등 의료기관이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여당은 이와 관련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발 빠른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당정 협의를 통해 출산통보제·보호출산제 등의 법제화에 속도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법제화 이전까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임시 신생아 번호와 출생 신고를 연동하는 행정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 의료계 부담 해소 과제도

민주당 역시 해당 법안을 추진하는 데 긍정적이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강릉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에서 “민주당은 이런 끔찍한 일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한규 대변인은 “미등록 영유아 문제에 온 국민이 집중하고 있는 만큼, 여야가 손잡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국민께 보여드리자”고 했다.

여야가 큰 틀에서 관련법 제정에 뜻을 모은 만큼 제도 정비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의료계가 ‘책임 떠넘기기’ ‘과도한 부담’ 등을 이유로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해 온 만큼, 논의 과정 중 잡음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이에 윤 원내대표는 “반대하는 입장에서 주장하는 것들을 해소해 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민주당 의원은 구체적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스템’을 활용해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신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료기관이 정기적으로 심평원에 청구하는 시스템을 통해 진료기록도 같이 공유된다”며 “이런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현장의 행정적 부담도 줄이고 그 정보를 활용해 지자체에 통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능할 것이란 의료계 나름의 공감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출생통보제가 오히려 의료기관 밖 출산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산 기록이 남겨지는 것을 꺼리는 산모일 경우 의료기관이 아닌 개별적 출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제도 도입 후 사각지대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생명에 직접적이고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 발생했다면 출생통보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당연한 문제”라며 “(이후) 그러한 사각지대를 어떻게 보듬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우려를 해소할 방안으로 ‘보호출산제’가 대두된다. 보호출산제의 경우 산모가 신원을 숨길 수 있도록 조치를 한 뒤 출생한 아동을 지방자치단체가 보호하는 개념이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출생통보제가 필요하고 익명으로 아기를 낳는 상황이 있을 때 어떻게 법적 절차를 마련할 것인가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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