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의 정당성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부당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강성태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언하는 모습. / 조윤찬 기자
노동계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의 정당성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부당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강성태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언하는 모습. / 조윤찬 기자

시사위크|국회=조윤찬 기자  사용자 정의를 넓히고 노동쟁의 시 손해배상 책임을 개별화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상태다. 해당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 “헌법 명시된 노동3권 존중돼야”

노동계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의 정당성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부당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공동주최한 토론회다.

조영선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대표는 노동 환경이 변해 현행 ‘노조법’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조영선 대표는 “노조법이 제정된 이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파견 계약직, 직접 임금을 지급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영향을 미치는 관계가 많이 생겼다. 간접고용,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헌법 33조에 따라 존중돼야 한다. 대통령이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노조법’은 △사용자 개념 확대 △쟁의행위 범위 확대 △손해배상 책임 개별화 등을 내용으로 한다. 현행법은 노동자들이 쟁의행위를 해 손해배상을 하게 되면 공동불법행위자 전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한다. 이번 ‘노조법’ 개정안은 노동자별로 귀책사유에 따라 손해배상이 달라지도록 했다.

현행법은 근로 계약관계를 기준으로 사용자를 판단했다. 이 때문에 하청업체와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자들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상태다. 노조법 개정안을 보면 2조 2호에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발제를 맡은 강성태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안에 대해 “원청이라도 하청업체 근로관계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이나 결정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은 현행법으로는 임금인상, 근로시간 변경 등의 이익분쟁에 한정해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노조법 개정안은 이익분쟁뿐만 아니라 단체협약 불이행 문제에 대해 쟁의행위를 하는 권리분쟁도 가능하게 한다. 강 교수는 “노동쟁의의 범위를 1997년 이전으로 복원하는 것”이라며 “개정안의 내용은 구 노동쟁의조정법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 인권위, ‘노조법’ 개정 통한 사용자 개념 확대 권고

토론회에선 여러 판례와 인권위 권고가 있음에도 여당이 법률안에 반대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9년, 2019년, 2022년에 ‘노조법’을 개정해 사용자 개념을 확대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고한 바 있다. 하청근로자의 노동조건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원청이 단체교섭을 할 의무가 없게 되면 노동3권을 통한 하청근로자의 노동조건 개선은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이 인권위의 의견이다.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사용자를 판단하는 것은 지난 2010년 현대중공업 사건 관련 대법원 판례에서도 나타난다. 재판부는 “근로자의 기본적인 근로조건 등에 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면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종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종철 교수는 거부권 행사는 부적절하지만 현실에서 거부권을 막는 것은 어렵다고 전했다.

김종철 교수는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을 탄핵의 사유로 삼는 등 다투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입법이 거부권에 의해 방해받지 않도록 부당성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헌법 53조에 따르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률안에 대해 대통령은 이견이 있으면 15일 이내에 재의 요구를 할 수 있다. 재의란 국회에서 재표결을 하는 것을 말한다. 대통령의 요구로 재의결하는 법률안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사실상 법안 통과가 어려워 대통령의 재의 요구 권한은 거부권이라고 불린다.

◇ “개정안, 국회 통과 위해 양보한 내용”

정영훈 부경대 법학과 교수는 토론회에서 “고용노동부는 사용자 개념 확대에 대해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다고 반응한다. 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이라는 요건이 추상적이어서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고 비판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법치주의는 원청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적 안정성을 요청하지만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것도 요청한다”며 “정부는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황희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의 개별 조항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 거부권에 관한 조항 역시 다른 조항을 고려해 이해돼야 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용하면 국회의 입법권에 대한 중대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법률안 제출권이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의 국회출석을 통해 국회를 설득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사내하청 방식의 간접고용이 거의 없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시스템이기 때문에 다른 회사 사람을 데려와서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원청의 법적 책임을 규정한 나라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노조법 개정안이 나오게 된 것은 한국의 간접고용이 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정흥준 교수는 “원청과의 교섭권이 보장되면 교섭을 통해 갈등이 해결되기 때문에 오히려 파업이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차동욱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재 국회에 부의된 노조법 개정안은 굉장히 후퇴한 내용이다. 국회 통과를 위해 당사자들이 양보한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차동욱 입법조사관은 “발의됐던 법안들 중에는 쟁의행위를 한 근로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개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되 법원이 최종 판단하도록 했다. 불법쟁의행위가 무분별하게 허용되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는 해당 개정안이 공동불법행위를 한 사람 모두에게 연대책임을 부여하도록 하는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법원행정처는 입법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토론회에 참석한 야당 의원들은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도록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원행정처 의견, 법원 판결 등을 보면 입법의 정당함이 드러난다.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다음 총선에서 패배할 것임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크고 올해 하반기 민주노총의 파업이 예정된 만큼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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