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발주자 처벌 강화 필요 VS 책임 묻는 것 자체가 불합리”
건설업계 “품질 강화 측면에서 제도 개선돼야…중복 규제 우려”

지하주차장 붕괴사고가 발생한 LH 발주 인천 검단 아파트 / 뉴시스
지하주차장 붕괴사고가 발생한 LH 발주 인천 검단 아파트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지난 4월말 LH가 발주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한 이후 건설업계에서는 지금까지 ‘부실공사’ 이슈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 27일 인천 검단 아파트 시공 컨소시엄에 참여한 건설사를 상대로 최대 10개월간 영업정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국토부는 내달에는 전국 민간아파트의 무량판구조 전수조사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여기에 정치권도 ‘부실공사’ 차단을 위한 법 개정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서 이달 초 국민의힘 ‘아파트 무량판 부실공사 진상규명 및 국민안전 TF’는 부실공사 발생하면 회사 문을 닫는 수준의 법‧제도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처럼 ‘부실공사’가 연일 핫이슈로 떠오르면서 일각에서는 시공사 뿐만아니라 발주자에 대해서도 ‘부실공사’에 대한 책임 및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전문가‧건설업계에서는 ‘발주자 처벌강화가 필요하다’, ‘우선 하도급 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 LH ‘철근 누락’ 사태 이후 발주자 처벌 강화 주장 제기

LH ‘철근 누락’ 사태 조사과정에서 발주청인 LH의 설계·감리 업무에서도 설계 오류 및 감리 소홀 등의 문제가 드러나자 일각에서는 발주자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현행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술진흥법 등에서는 발주자의 의무 관련 규정은 존재하지만 의무 불이행시 처벌 등의 규정은 미흡한 실정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민간공사 발주사가 처벌 받은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이며 공공공사 발주처의 처벌은 책임자의 법정 징역형보다는 과징금 부과 등 행정처분에 그치고 있다.

이를 개선하고자 지난 2020년 9월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설안전특별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해당 법안은 현재까지 국회 계류 중인 상태다. 건설안전특별법의 핵심내용은 건설공사 과정에서 최상위층에 있는 발주자가 사업별 책임에 비례해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법안에 따르면 발주자는 설계·시공·감리자가 안전을 우선 고려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적정 기간과 비용을 제공해야 하고 민간공사는 공사기간·공사비용이 적정한지 인허가기관의 장 등에게 검토를 받아야 한다.

또한 발주자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는 원수급인이 해당 공사현장의 안전관리를 책임져야 한다. 만약 발주자를 포함해 설계·감리업자와 시공사가 이 법에 따른 안전관리의무를 소홀히 해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최근 ‘부실공사’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발주자 책임을 강화한 ‘건설안전특별법’이 국회에서 재논의될 지를 두고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021년 국토교통위원회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 뉴시스
지난 2021년 국토교통위원회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 뉴시스

◇ 전문가, ‘부실공사’ 방지 위한 발주자 처벌 강화 두고 의견 제각각

‘부실공사’시 발주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전문가간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연구실 실장은 “현행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술진흥법상 의무를 위반한 발주자의 처벌규정이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며 “건설사의 경우 등록면허제로 운영돼 부실공사 등이 적발되면 등록말소, 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내릴 수 있지만 발주자는 등록면허제가 아니기에 이같은 처분을 내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민간공사를 담당하는 발주자와 공공공사를 맡고 있는 발주청과의 처분도 차별화 필요가 있다”며 “공공공사를 진행하는 발주청(LH 등 공기업)의 경우 영업정지 등과 같은 직접적 처분은 어려운 반면 경영평가, 기관장 교체 등 간접적 처분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민간공사 발주자는 처벌 강화 위주로, 공공공사 발주청은 처분 내용에 대한 대국민 공개 강화하는 측면으로 제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부실공사 재발 등을 원천차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은형 대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발주자의 책임을 묻는 방안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이라며 “LH ‘철근 누락’ 사태는 공기업의 특수 사례로 민간공사에서는 개인·기업·조합 등 누구나 발주자가 될 수 있는 만큼 책임 소재를 따지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민간 발주자가 1억원을 들여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공사실무를 제대로 모르니 건설사에 공사 전반에 관한 업무를 맡기게 된다”면서 “허나 건설사 잘못으로 공사 중 사고가 발생했는데 발주자에게까지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라며 발주자 처벌 강화 주장에 반대했다.

‘부실공사’를 막으려면 현 하청 구조부터 선진화시켜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권대중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원청→하청→재하청’에 이어 불법적인 재재하청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부실공사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이 과정에서 서로 이윤만 얻으려고 하다보니 하위 재하청으로 갈수록 공사 대금이 싸지게 된다. 동시에 원청의 대금 미지급 및 지연 등의 부작용까지 발생하면서 결국 부실공사로 이어진다”고 문제삼았다.

그는 “결국 이같은 하청 구조를 선진적 구조로 개선해야 한다”며 “예를 들면 원청이 하도급업체에 하청을 줄 경우 원금 보장과 관련된 보증보험을 의무 가입토록 하고 법개정을 통해 ‘단가 후려치기’ 등 항목별 부실공사 원인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주자 처벌 강화에 대한 건설업계의 의견도 여러개로 나뉘었다. / 뉴시스
발주자 처벌 강화에 대한 건설업계의 의견도 여러개로 나뉘었다. / 뉴시스

◇ 건설업계, 엄벌 위주 제도개선 반대 등 다양한 목소리 나와 

건설업계 역시 의견이 분분했다. A건설사 관계자는 “시공 과정에서의 중대한 실수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시공사가 책임지고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이번 LH 사태는 발주청인 LH의 설계‧감리 업무 부실도 주요 사고 원인으로 나타났는데 설계 도면에 따라 공사를 진행한 시공사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민간공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주자가 외부기관에 맡긴 설계‧감리 업무에 오류가 발생해 부실시공으로 이어진다면 발주자에게도 처벌이 내려지는 것이 당연하다 판단된다”고 전했다.

처벌보단 품질 관리 강화 측면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B건설사 관계자는 “처벌기준 상향 등 엄벌 강화주의보다는 품질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현행 저가 입찰제 개선 △물가지수를 반영한 공사비 산정 △공사비에 안전 관련 비용 포함 △설계‧시공‧감리 관리 및 감독 강화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중복 규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C건설사 관계자는 “발주자의 책임을 강화해 적정한 공사기간 부여 및 공사비 산정 등을 통해 ‘부실공사’를 예방한다는 건설안전특별법 취지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면서도 “다만 중대재해법과 건설안전특별법 간 중복 규제 항목은 손볼 필요가 있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현재 건설업계는 집중 수사대상에 오른 상황”이라며 “재논의 과정 없이 건설안전특별법까지 시행된다면 건설업계는 중대재해법·건설안전특별법·부동산 경기 악화 등 삼중고에 시달리게 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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