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전관업체 배제에 따른 공사기간 연장 등 피해 입주예정자에 돌아가”
전문가 “전관업체, 만악 아냐… ‘철근 누락‘ 주 원인 파악 및 관리‧감독 강화 필요”

지난 20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LH 용역 전관 카르텔 관련 긴급회의’를 열고 LH 전관업체와의 용역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 뉴시스
지난 20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LH 용역 전관 카르텔 관련 긴급회의’를 열고 LH 전관업체와의 용역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철근 누락’ 아파트로 실추된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기존 설계·감리 등 용역에서 체결한 전관업체와의 계약을 전면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LH는 향후 용역 계약 과정에서도 전관업체를 배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전문가 및 건설업계 등 일각에서는 이번 LH 조치가 ‘철근 누락’ 사태의 본질적인 해결보다는 국민적 공분을 잠재우려는 단기적 조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설계 및 시공 과정에서 왜 ‘철근 누락’이 발생했는지 근본 원인을 찾기보다는 전관업체와의 계약 사실에만 초점을 뒀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이미 계약한 설계·감리 용역 계약을 LH가 일방 해지함에 따라 앞으로 LH와 전관업체간 법정소송이 잦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법정소송으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결국 입주예정자에게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 LH, 648억원 규모 기존 전관업체와의 용역 계약 해지

지난 20일 LH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주재하에 열린 ‘LH 용역 전관 카르텔 관련 긴급회의’에서 전관업체와 체결한 설계공모·감리용역 계약 11건(약 648억원 규모)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또 LH는 지난 7월 31일 이후 입찰 공고와 심사가 진행 중인 용역 23건(약 892억원)의 후속 조치도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LH는 전관업체와의 용역 계약 취소와 향후 발주할 용역의 후속 조치 중단은 계약‧심사 관련 자체 내규를 근시일 내 개정한 뒤 추진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LH는 설계‧감리 용역 업체 선정 과정에서 각 업체별로 LH 퇴직자 명단을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하고 퇴직자가 없는 업체에게는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을 적용할 예정이다.

아울러 최근 5년 동안 LH와 설계‧감리 용역 계약을 체결한 업체를 전수조사해 LH 퇴직자 및 전관 업체 DB(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추후 진행하는 설계‧감리 참여자의 DB도 수시로 갱신할 계획이다.

또한 LH 퇴직자들이 자본금 10억원 이상, 매출 100억원 이상인 기업에 취업할 때만 취업심사를 받도록 하는 현행 취업심사 기준도 손보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LH와의 협의 과정을 거쳐 이같은 내용이 담긴 ‘건설 분야 이권 카르텔 혁파 방안’을 오는 10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LH의 전관업체 배제로 인해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됐다. / 뉴시스
LH의 전관업체 배제로 인해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됐다. / 뉴시스

◇ 건설업계 “전관업체와 LH간 법적소송 예상… 입주예정자만 피해 입어”

건설업계는 이번 LH의 전관업체 배제 조치에 대해 공감은 하면서도 다소 현실성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견건설업체인 A사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전관업체 배제라는 고강도 조치를 택한 LH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된다”면서도 “다만 다음 정권 교체기까지 2~3년 정도만 효과가 먹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관업체가 설계‧감리 업무에서 갑자기 배제됨에 따라 기존 계획됐던 LH의 공공주택 공급 일정은 차질이 발생할 것이 뻔하다. 당장 올 하반기 공급 일정은 당초보다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며 “지금은 전관업체에 초점이 집중됐지만 실제로는 설계‧감리에 대한 감독 절차를 더 깐깐하게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LH의 이번 조치로 피해를 본 전관업체가 향후 LH를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이에 따른 공사 기간 및 입주시기 증가 등으로 결국 입주예정자만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B건설사 관계자는 “정당한 절차로 이미 계약을 체결한 전관업체들까지 단순 전관업체라는 이유만으로 계약 해지를 당하면서 LH 상대로 법적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들 전관업체 대부분은 소규모 업체로 계약 해지로 인해 입는 피해액은 회사의 명운을 결정할 수준이다. 따라서 이미 법적 소송을 검토 중인 회사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전관업체와 LH간 법정 다툼이 벌어지면 당장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공사비 등 각종 비용도 덩달아 증가한다. 결국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예정자에게 돌아간다”며 “여기에 개인의 직업 선택을 강제하는 퇴직자 취업 제한 기준도 애매하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결국 LH의 전관업체 배제 조치는 당장 소나기만 피하려다 태풍을 맞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LH의 전관업체 배제 이후 더욱 새로운 꼼수가 나올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C건설사 관계자는 “‘전관예우’라는 악습을 끊겠다는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편법이 나올 수 있다”며 “퇴직자가 페이퍼컴퍼니를 차린 후 설계‧감리업체와 LH를 연결해주는 브로커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이번 조치로 인해 수주 방식에 따라 일부 시공사의 피해도 우려된다”며 “LH가 모든 것을 검토해 사업을 진행하는 ‘종합심사제’는 시공사에게 별다른 피해가 없지만 시공사가 공사를 책임지는 ‘턴키수주제’의 경우 전관업체 배제로 인해 늘어나는 공사기간‧비용 모두 시공사에게 부담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LH가 전관업체 배제보다는 설계 시공 등의 과정에서 ‘철근 누락‘ 주 원인을 밝히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무량판구조 보강 중인 LH 발주 한 아파트 / 뉴시스
전문가들은 LH가 전관업체 배제보다는 설계 시공 등의 과정에서 ‘철근 누락‘ 주 원인을 밝히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무량판구조 보강 중인 LH 발주 한 아파트 / 뉴시스

◇ 전문가 “전관업체 만악의 근원 아냐… ‘철근 누락’ 주 원인 찾아야” 

전문가 역시 LH의 전관업체 배제 조치가 실효성이 없다고 문제삼았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현 ‘철근누락’ 사태는 전관업체가 주된 문제라기보단 △사업 관리·감독 과정의 안일함 △안전불감증 △적발시 낮은 처벌 강도 △문제 해결에 대한 눈치보기 등이 복합 작용된 탓이 크다”며 “전관업체라는 이유만으로 전문성을 배제한 채 사업을 진행하면 향후 현장에서는 혼선만 가져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뒤이어 “단순한 전관업체 배제보다는 일선 현장에서의 전문성‧현실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공공성‧윤리의식 강화와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처벌 규정 마련 등이 시급하다”고 피력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직원 수 1만여명이 넘는 공룡기업 LH의 경우 매년 퇴직자 수만 수백여명이 넘는다”며 “따라서 대부분의 설계‧감리 업체에는 LH 퇴직자 출신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단순히 LH 출신 퇴직자만 없으면 끝인가, 관리‧감독 강화가 우선시 돼야 하지 않겠냐”며 “LH 퇴직자는 전관예우 폐해가 큰 판‧검사가 아니다. 전관업체를 만악의 근원으로 모는 것만으로는 부실공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최은영 소장은 “LH는 지금이라도 ‘전관업체’와 같은 이슈 하나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설계‧감리‧시공 등 공사 과정 전반에 걸쳐 ‘철근 누락’이 발생하게된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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