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과 긴 대기, 예약전쟁이 펼쳐지는 소아청소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과선언을 하고 대국민 작별인사를 건넨 소아청소년과의사회.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미래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지원율.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대란의 씁쓸한 풍경들이다. 이를 바라보는 일선 의료인의 마음과 생각은 어떨까. <시사위크>가 현직 소아청소년과 개원의이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이기도 한 A씨와 진솔한 인터뷰를 가졌다. 다만, 인터뷰 내용은 익명으로 공개하며 철저히 개인의 의견임을 밝혀둔다. <편집자주>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A씨는 소아청소년과 의료진들이 겪는 어려움이 비단 수익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A씨는 소아청소년과 의료진들이 겪는 어려움이 비단 수익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 소청과 의료계에서는 수익 문제와 함께 높은 진료업무 강도 문제도 꾸준히 거론된다. 다른 의사보다 더 힘들게 일하고도 돈은 더 못 번다는 건데.

"개인적으로 소청과를 선택한 건 아이들을 좋아하고, 또 아이들은 성인과 다르게 회복이 눈에 띄게 빠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처치하느냐에 따라 금방 반짝반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게 너무 좋다.

그래도 힘든 건 맞다. 다른 일도 다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다루다보니 책임감이 막중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정말 크다. 특히 소청과는 증상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더욱 긴장해서 봐야 한다. 더욱이 잘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어린 아기들은 기본적으로 울면서 시작한다. 그렇다보니 나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진료를 마치고 집에 가면 지쳐 쓰러져 눕는다. 솔직히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 소위 ‘진상 부모’ 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얼마 전엔 특정 부모를 지목하며 문을 닫은 소청과 의원도 있었다.

"그런 소식들을 접하면 내가 저런 일을 겪으면 어떨지 무척 슬프고 우울해진다. 또 저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고민이 들기도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이 일을 하면서 서비스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우리 병원에서 아무도 얼굴 찌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운영 중이다. 한편으론 나도 아이를 키우다보니 부모 입장도 이해한다. 아이가 아프니 민감할 수밖에 없고, 부작용 같은 게 발생하면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불친절한 의사들이 있는 것도 맞다.

그렇다 해도 소청과 의사들이 너무 과도한 요구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맘카페 등의 커뮤니티를 보면 다른 과에 비해 유독 소청과 의사들에 대한 평가나 비판이 많고, 내용도 신중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눈빛이 싸했다고, 말을 단답으로 했다고 불친절하다는 평가나 비판을 남긴다. 그런데 소청과는 다른 과에 비해 입소문이 중요해 그런 평가나 비판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떨 땐 마치 시장에 발가벗겨진 채 매달려 있는 그런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환자 부모들의 과도한 요구와 갑질, 소송 제기 등은 소아청소년과 대란 사태를 부른 또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환자 부모들의 과도한 요구와 갑질, 소송 제기 등은 소아청소년과 대란 사태를 부른 또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 직접적으로 ‘갑질’을 겪어본적은 없나.

"다행히 아직까진 크게 심각한 일을 당해본 적은 없다. 물론 상처가 되고 속상한 일, 난감한 일은 있었다.

한 번은 아이를 진료해 중이염 소견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곧장 다른 병원에 가서 중이염이 아니라는 소견을 받았다며 오진을 했다는 글을 맘카페에 올렸더라. 그걸 보고 참 마음이 안 좋았다. 반대로 또 한 번은 다른 병원에서 이런 소견을 받았는데 맞는지 물어보는 부모도 있었다. 이때도 역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난감했다.

현직 소청과 개원의로서 바라는 건 의사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적인 신뢰는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의사면허가 있다는 것에 큰 사명감을 갖고 있다. 아이가 꼭 나았으면 좋겠다, 나 때문에 아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가 아이를 아프게 하진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기본 바탕이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마치 내가 아이를 해할 것처럼 적대감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아이를 위해 하나 더 할 것도 머뭇하게 되고, 내가 하는 일에 회의감이 들곤 한다. 높은 서비스와 도덕적 기준을 요구받는 만큼, 적어도 기본적인 신뢰는 받고 싶다."

- 제도적 측면에서 보완할 부분은 없을지.

"의료인을 어느 정도 보호할 법적 장치, 제도가 필요하다. 수입 문제나 갑질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의료인을 힘들게 하는 게 소송이다. 의료인에게 무조건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다. 잘못할 때도 분명 있고, 그건 그것대로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의료행위 과정에서 정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까지 마구 소송이 제기되고, 몇 억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는 걸 보면 너무 위축되고 압박감이 느껴진다. 위급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고, 의도치 않은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책임을 의료인에게 물으면 정상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을까. 인기과였던 소청과의 위상이 추락하게 된 계기도 이대병원 사건이 컸다고 본다.

* ‘이대병원 사건’은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인큐베이터 치료를 받던 신생아 4명이 영양제를 맞은 이후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의료진 7명이 기소됐고 이 중 3명은 구속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재판에서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고,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와 의료현장의 괴리도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심평원은 의료 재정 낭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꼭 필요한 기관이다. 문제는 일선 의료인들의 목소리가 너무 반영되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정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약을 처방한 건데, 심평원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삭감 통지서가 날아온다. 그러면 그 약값을 토해내야 한다.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어도 그 약을 처방할 수가 없는 거다. 일개 의사 차원에서 소명하거나 이의를 제기해 개선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가뜩이나 진료보는 것도 바쁜데, 제출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그렇게 제출해도 열에 아홉은 반려다. 그렇다보니 의사들 사이에서는 소위 ‘심평의학’이란 말까지 있다. 심평원 기준에 맞게 진단명을 적고 처방을 내린다는 거다.

최선을 다해 진료와 처방을 하고도 심평원으로부터 삭감을 당하면 너무 씁쓸하고 답답하다. 일선 의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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