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전무한 충북 단양군은 지난 6월부터 단양군보건소를 통해 충주의료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순회 진료를 시행 중이다. /단양=권정두 기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전무한 충북 단양군은 지난 6월부터 단양군보건소를 통해 충주의료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순회 진료를 시행 중이다. /단양=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남한강이 굽이치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충북 단양군은 관광으로 유명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지만, 전국에서 인구가 적은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체 인구는 2만7,000여명이고, 소아청소년과 핵심수요 인구(만 0세~9세)는 지난 5월 기준 938명에 불과하다. 전국 군단위 행정구역 중에선 11번째로 적고, 충북지역 내에서는 가장 적다.

이러한 단양군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전무하다. 병원·종합병원급은 물론 일반적으로 ‘소아과’라 여겨지는 의원급 의료기관 소속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도 없고, 심지어 보건의료원이나 보건소 등 공공의료기관에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아청소년과 의료 인프라가 완전히 공백인 지역이다. 아이가 아파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기 위해선 인근 제천시나 영주시 등으로 가야 한다.

민간 의료기관 차원에서 이를 해소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인구가 적어 의원급 소아청소년과는 자생을 기대하기 어렵다. 병원·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은 아예 없어 재정지원을 통해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다행히 지난 7월부터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같은 도내 충주의료원에서 순회 진료를 시작한 것이다. 진료는 매주 목요일 단양군보건소에서 이뤄진다. 단양군과 같은 사정인 괴산군 역시 오는 10월부터 청주의료원에서 주 1회 소아청소년과 순회 진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단양군의 한 주민은 “일주일에 한 번이긴 해도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고 마음도 놓인다”며 “다만, 아이들은 어른보다 자주 아픈 편이고 변화도 빨라서 여전히 다른 지역까지 가야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여건이 점점 더 나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단양군보건소와 괴산군보건소는 향후 순회 진료 횟수를 주 2회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5월 군내 유일의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폐원한 가평군은 지난 6월부터 가평군보건소를 통해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 / 가평=권정두 기자
지난해 5월 군내 유일의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폐원한 가평군은 지난 6월부터 가평군보건소를 통해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 / 가평=권정두 기자

수도권에서 가까워 역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경기 가평군 역시 공공의료기관을 통해 소아청소년과 공백을 메우고 있다.

가평군은 이전까지 20여년간 진료를 해온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경영난으로 인해 지난해 5월 폐원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의료공백이 발생했다. 가평군은 지난 5월 기준 소아청소년과 핵심 수요인구 수가 2,810명으로 적지 않은 곳이다. 이에 가평군보건소는 지난 6월부터 소아전문 공중보건의를 배치 받아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하고 있다. 공중보건의란, 군복무 대신 공중보건업무에 종사하는 것이다.

의원·병원·종합병원급 의료기관 소속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전무한 경북 군위군 역시 지난 5월부터 보건소 차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진료를 시작했다. 경북 지역에선 처음으로 보건소에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개시한 것이다.

다만, 이 역시 완벽한 의료공백 해소로 보기엔 한계가 있다. 가평군보건소의 소아청소년과 진료는 평일 오전에만 운영된다. 또한 해당 공중보건의의 복무기간이 끝난 뒤 다시 소아전문 공중보건의를 배치 받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군위군보건소 역시 소아청소년과 진료는 주 2회만 운영된다.

경기도 유일의 보건의료원인 연천군 보건의료원은 2020년 1월부터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이어오고 있다. / 연천=권정두 기자
경기도 유일의 보건의료원인 연천군 보건의료원은 2020년 1월부터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이어오고 있다. / 연천=권정두 기자

보건소의 상위개념인 보건의료원을 통해 소아청소년과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있는 지역은 상황이 한결 낫다. 보건의료원은 2차 의료기관급(병원급) 진료 기능과 보건소의 보건행정 업무를 함께 수행한다.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군은 지난 5월 기준 소아청소년과 핵심 수요인구가 2,187명이다. 경기도내 시군 중 가장 인구가 적은 곳이지만, 접경지역으로 젊은 직업군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특성상 소아청소년과 핵심 수요인구가 적지 않다.

이러한 연천군에도 의원·병원·종합병원급 소속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연천군 보건의료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료를 하고 있다. 경기도내 유일한 보건의료원인 이곳은 2020년 1월부터 도비 예산을 확보해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시작했다.

연천군 보건의료원 소아청소년과는 대체로 한산하면서도 소아 환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 연천=권정두 기자
연천군 보건의료원 소아청소년과는 대체로 한산하면서도 소아 환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 연천=권정두 기자

지난 8월 찾은 연천군 보건의료원의 소아청소년과는 대체로 한산하면서도 소아 환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환자들이 붐비지 않는 만큼, 여유 있게 시간을 할애해 진료하고,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연천군 보건의료원에서 소아청소년과를 맡고 있는 박현수 전문의는 “예전 이 지역은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멀리 의정부 등으로 가야했는데, 보건의료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시작하면서 많이 편리해졌다”며 “아직은 여건 상 입원 진료는 어렵지만, 중환인 경우에도 이곳에서 보다 전문적인 판단을 통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50여년 전 군의관 생활을 했던 곳으로 돌아와 연천군 보건의료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맡고 있는 박현수 전문의는 지방의 소아청소년과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연천=권정두 기자
50여년 전 군의관 생활을 했던 곳으로 돌아와 연천군 보건의료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맡고 있는 박현수 전문의는 지방의 소아청소년과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연천=권정두 기자

도시지역에서 의사생활을 하다 은퇴한 그가 연천군에서 다시 의사가운을 입은 데에는 50여년 전 인연이 작용했다. 50여년 전 이곳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그가 이제는 베테랑 의사가 돼 소아청소년과 의료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박현수 전문의는 "지방의 소아청소년과 의료공백 문제가 심각하고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하며 "그 공백을 공공의료기관 차원에서 메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 어느 정도 시설 및 재정을 확충하면 전문의를 확보해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젊은 의사들이야 수도권이나 도시를 선호하겠지만, 우리처럼 나이가 들고 은퇴한 경우엔 지역 의료현장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수요가 있다”며 “이러한 의료 인력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건의료원 차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있는 곳은 연천군만이 아니다. 강원 화천군의 화천군 보건의료원은 2017년 11월부터 일찌감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배치해 저출산 우수시책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충남 청양군과 태안군, 전북 무주군과 순창군, 임실군, 장수군, 전남 곡성군과 구례군, 경남 청송군과 울릉군 등도 보건의료원이 군내 유일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진료를 운영 중이다. 이 중 순창군 보건의료원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출신이 원장을 맡고 있으며, 무주군 보건의료원은 소아치과 진료도 시행하고 있다.

강원도가 설립한 영월의료원은 군내에서 유일하게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시행할 뿐 아니라 야간진료까지 운영하며 지역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 영월=권정두 기자
강원도가 설립한 영월의료원은 군내에서 유일하게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시행할 뿐 아니라 야간진료까지 운영하며 지역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 영월=권정두 기자

한편, 지자체에서 출연해 설립한 지방의료원 역시 소아청소년과 의료공백을 해소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강원 영월군에 위치한 영월의료원은 군내에서 유일하게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야간진료를 통해 인근 지역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경북 울진군의 울진군의료원 역시 지난 5월부터 응급실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2명을 교대로 상주시키며 야간진료를 제공 중이다.

이처럼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 운영 중인 공공의료기관은 소아청소년과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서 ‘최후의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지방인구가 영유아를 중심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소아청소년과 의료 인프라 문제 또한 점점 더 심각해지는 흐름 속에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은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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