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아과 대란’ 현상이 심화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소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소위 ‘오픈런’을 하거나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대란을 거쳐야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 뉴시스
최근 ‘소아과 대란’ 현상이 심화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소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소위 ‘오픈런’을 하거나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대란을 거쳐야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5월의 어느 날 아침 8시 58분.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A씨가 거실 소파에 앉아 긴장 역력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응시하고 있다. 이내 9시 정각. 그의 손길이 빨라진다. 하지만 분주한 그의 손길과 달리 스마트폰 화면은 잠시 멈춰있다. 그리고 예약완료. 대기번호는 21번이다. A씨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 소아과 예약·접수 전쟁… 지방에선 머나먼 원정까지

전날 저녁부터 설사를 하기 시작한 A씨의 세 살 난 아이는 아침에도 설사를 했다. 급한 대로 비상용 약을 먹여왔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맞벌이부부인 A씨 집은 평소 아내가 어린이집 차량에 아이를 태워 등원시킨 뒤 출근하곤 했다. 그런데 이날은 어쩔 수 없이 남편인 A씨가 오전 반차를 내고 아이를 소아과에 데려간 뒤 등원시키기로 했다.

여기서 최대 관건은 소아과 예약에 성공하느냐였다. 행여 예약에 실패하거나 대기번호가 늦을 경우 낭패였기 때문이다. 잠시 주춤한 탓에 대기번호가 뒤로 밀린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소아과 진료를 보고 등원시킨 뒤 출근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다행이었다.

같은 날,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B씨도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가야했다. 하지만 B씨에게선 A씨와 같은 초조함이나 긴장감이 묻어나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오후 4시 30분쯤 아이를 하원시킨 뒤 소아과로 향했다. 대기인원은 3~4명 남짓이었다.

A씨가 찾은 소아과는 규모나 시설 면에서는 다소 떨어지지만, 인근 지역에서 인기가 많은 곳으로 꼽힌다.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진료를 받기 어렵고 예약 또한 무척 치열하다. A씨는 종종 다른 소아과도 이용해봤지만, 증상이 호전되는 체감속도나 의사의 친절한 응대 측면에서 만족도가 높다보니 이제는 완전한 단골로 자리매김했다.

접수가 마감된 서울의 한 소아과 모습. / 권정두 기자
접수가 마감된 서울의 한 소아과 모습. / 권정두 기자

반면, B씨가 찾은 소아과는 비교적 최근에 문을 열어 시설 면에서 뛰어나고 규모도 큰 편이다. 다만, 주변의 다른 인기 소아과에 비하면 아직 단골이 많지 않다보니 상대적으로 덜 붐빈다. B씨도 이전엔 지역에서 인기가 많은 소아과를 주로 찾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아파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기가 많은 소아과 두 곳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때 처음 찾게 된 곳이 바로 지금의 소아과다. 진료 측면에서 만족할 뿐 아니라 사람이 많지 않고 치열하게 예약을 할 필요도 없어 이후 주로 이 소아과를 이용 중이다.

또 다른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C씨의 상황은 또 다르다. 단골로 찾는 소아과에 아직 스마트폰 앱을 통한 예약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아 실시간 현장 접수 전쟁을 치러야한다. 그렇지 않아도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해 나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보니 소아과 한 번 다녀오면 진이 빠진다.

도시가 아닌 지방에 거주하는 D씨와 E씨는 뉴스를 통해 접하는 소아과 ‘오픈런 대란’이 차라리 부럽다.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엔 소아과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플 땐 급한 대로 진료과목에 소아과가 포함돼있는 의원을 찾거나 다른 지역에 있는 소아과로 원정을 떠나야 한다.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먼 길을 떠나 찾은 소아과 역시 대체로 오래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 ‘폐과’ 선언한 소청과의사회… 사라지는 ‘미래의 소아과 전문의’

지난 3월 29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이하 소청과의사회) 회장은 기자회견장 마이크 앞에서 눈물을 훔쳤다. 이날 소청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열고 폐과를 선언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3월 기자회견을 열고 폐과를 선언했다. / 뉴시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3월 기자회견을 열고 폐과를 선언했다. / 뉴시스

임현택 회장은 “지금 상태로는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가 없다. 지난 5년간 662개가 폐업했다”며 “복지부, 질병청, 기재부가 아이들을 살리는 대책이 아니라 이에 반하는 대책들만 양산하고 있다면 소아청소년과에 더 이상 희망은 없다는 데 의사들이 의견의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정부가 내놓았던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폐과’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소청과의사회의 이 같은 선언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특히 아이를 둔 부모들의 많은 우려를 샀다.

다음날인 3월 30일, 이번엔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이하 소청과학회)에서 성명서가 발표됐다. 소청과의사회가 개원 의사 중심의 단체라면, 소청과학회는 학술단체다.

소청과학회는 성명서에서 우선 소청과의사회의 폐과 선언에 대해 유감과 우려를 표했다. “1차진료 개원가의 어려움이 얼마나 심각하면 평생의 업으로 해오던 전문의로서 소아청소년 전문진료를 포기하고 일반진료로 살 길을 찾아 각자도생을 전환하려고 하겠는가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도 “소청과의사회가 권한 밖인 ‘소아청소년과 전문과목 폐지’를 시사하는 ‘폐과’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소아청소년과 자체의 존립 문제로 잘못 비춰지고, 국민적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소청과학회는 유감과 우려를 표하는 바”라고 밝힌 것이다. 

아울러 소청과학회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아청소년과 전문과목을 끝까지 사수하며, 소아청소년과 국민 건강권 유지, 의료시스템 정상화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소청과학회 역시 우리나라 소아과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소청과학회는 “현재 우리나라의 소아청소년 의료체계는 1차 진료와 상급병원 모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며 “정부 당국은 미래를 이끌어갈 소아청소년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위해, 희생의 골든타임이 지나기 전 소아청소년 의료시스템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소아과 전문의라 할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최근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미래의 소아과 전문의라 할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최근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이후 소청과의사회는 지난 11일 ‘소아청소년과 탈출(No Kids Zone)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에 이어 대안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성인 만성질환 및 피부·미용 시술 관련 강연으로 구성됐으며, 500여명의 의사가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한편으론, 소아청소년과의 미래를 더욱 걱정하게 하는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까지만 해도 101%였던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20년 78.5% △2021년 37.3% △2022년 27.5%에 이어 올해 상반기 25.5%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2018년 850명이었던 1~4년차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현재 304명으로 5년 새 절반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정부 및 정치권이 외면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부는 지난 1월과 2월 연이어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내놓았으며, 대책 발표 이후에도 우려 및 논란이 확산하자 3월말 ‘소아의료 정책점검 추진단’에 이어 이달 초 ‘필수의료 지원 정부-지자체 협의체’를 발족했다. 또한 지난 19일 소청과학회와의 간담회를 시작으로 의료계와의 소통에도 나선 상태다.

여기까지, 2023년 대한민국에서 ‘소아과 대란’을 마주하고 있는 각 주체들의 모습이다. <시사위크>는 이번 <우리 아이 단골집, 소아과가 사라지다> 기획을 통해 소아과를 둘러싼 ‘비상사태’를 심도 깊게 분석해 보다 신속하고 적절한 해결 방안 모색을 도모해보고자 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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